[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392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동아일보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응급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을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라고 부른다. 구급차가 환자를 태우고 응급실 앞까지 갔지만 받아주지 않아 돌아선 사례를 집계한 소방청의 통계를 보면, 2021년에만 해도 ‘응급실 재이송’ 사례는 7634건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겪은 ‘표류’의 극히 일부만 보여준다. 직접 응급실로 가기 전에 전화 문의를 했으나 거절당한 경우, 응급실에 도착한 후에도 수술 의사를 찾지 못해 병원을 옮긴 경우 등은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건희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 기자는 그 실태를 제대로 보도하고 싶었다. 다만 언론에서 자주 다뤘던 주제인 만큼, 이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조 기자는 응급환자, 소방대원, 의료진 등과 동행해 현장 상황을 보여주는 ‘밀착 관찰’ 방식을 떠올렸다.

취재 과정이 쉽진 않았다. 응급의료 현장을 섭외하는 일은 예상보다 더 고됐다. 조 기자를 포함한 4명의 취재팀이 병원을 섭외하기까지 1~2개월이 걸렸다. 구급차를 섭외하는 데는 3개월이 꼬박 걸렸다. 그래도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결국 취재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월에 걸쳐 37일 동안 응급실과 구급차에서 26명의 환자와 그 가족을 만나 인터뷰했다.

취재 내용을 담은 기사는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라는 제목으로 연속 보도됐다. 5편에 걸친 글 기사와 함께 3편의 인터랙티브 기사도 곁들였다. 이 기사는 제392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곳곳이 병원인 서울에서조차 ‘뺑뺑이’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림으로써 큰 울림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기획보도 첫 편이 실린 동아일보의 지난 3월 28일 지면.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기획보도 첫 편이 실린 동아일보의 지난 3월 28일 지면.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밀착 관찰로 생생한 현실을 드러낸 보도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1편에서는 지난 1월 밀착 관찰한 구급차와 응급실의 상황을 담았다.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가는 과정, 응급실에서 치료받을 병원으로 가는 과정에서 표류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줬다.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60대 남성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15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구급대원은 26곳의 병원에 환자 수용을 문의했다. 응급 혈액투석이 필요했던 70대 남성 환자는 응급실에 도착한 뒤, 그곳의 의사가 다른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환자의 이동 거리는 152km였고, 그가 표류한 시간은 3시간 30분이었다.

2편과 3편에서는 지난해 10월과 12월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채 표류하던 두 인물의 시간을 1분 단위로 복기해 따라갔다. 지게차 사고로 다리 혈관을 다쳤던 박종열 씨(39)는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260km를 이동하여, 6시간 18분 만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뇌출혈 증상을 보인 이준규 군(13)은 소아과 의사가 있는 응급실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어 3시간 48분 만에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4편에서는 표류의 주된 원인인 ‘수술 의사 부족’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했다. 2011년 신경외과를 택했던 전공의 111명이 12년이 지난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수 조사했다. 조사 결과, 현재 응급 개두술을 담당하는 의사는 111명 가운데 10명뿐이었다.

마지막 편에서는 표류를 겪은 이후 달라진 종열 씨와 준규 군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경고와 해법을 전한다. 응급환자가 치료받지 못한 채 무력하게 떠도는 표류가 일상이 됐고, 이를 초래하는 원인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도 구급차에서, 응급실에서 표류하다 누군가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기자들은 지적했다.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했다.

지난 1월 서울시 송파 잠실 구급대 소속의 최경환 반장이 환자를 이송할 응급실을 찾기 위해 병원에 전화하고 있다.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1월 서울시 송파 잠실 구급대 소속의 최경환 반장이 환자를 이송할 응급실을 찾기 위해 병원에 전화하고 있다.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스토리텔링과 인터랙티브 방식으로 몰입을 높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취재는 응급환자와 동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을 이송했던 구급대원과 진료했던 응급실 의사 등 총 31명을 인터뷰했다.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벌어졌던 일을 추적하기 위해 119종합상황실과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의 통화기록, 미공개 자료 등 모두 1300쪽이 넘는 기록도 검토했다.

이런 취재를 통해, 직접 보고 들은 현장 상황에 인터뷰와 자료 분석으로 파악한 사실을 모아 한 편의 이야기로 엮은 스토리텔링 방식은 독자가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몰입과 공감을 이끈다.

‘그들이 구급차를 탔던 날’, ‘강남에 응급실이 없었다’, ‘표류 속으로’ 등 3회에 걸친 인터랙티브 기사는 현장의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준다. 1회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의 사례에 관한 질문에 독자가 답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길 위에서 겪는 표류의 심각성을 전달한다. 2회에서는 구급대원이 병원에 전화했던 녹취를 차례로 담은 화면 구성으로, 3회에서는 119종합상황실과 구급차, 응급실, 닥터헬기의 모습을 담은 360° 영상으로 현장감과 몰입감을 높였다.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기획보도의 인터랙티브 기사 3편.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기획보도의 인터랙티브 기사 3편.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길 위에서의 표류를 끝내기 위해선

취재팀은 얼마나 많은 응급환자가 ‘골든 타임’을 흘려보내 생명이 위태로워졌는지, 가려진 죽음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응급실에서 병원 몇 곳에 전화를 돌렸는지, 전원을 결정한 후 몇 분 만에 환자가 최종 치료 병원으로 옮겨졌는지는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류를 끝내기 위해선 수술 의사가 지금보다 많아야 하고, 그 의사와 환자를 이어줄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취재팀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첫째, 수술 의사를 늘리기 위해 응급 수술에 관한 보상을 대폭 올리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 119-응급실-수술실이 실시간으로 소통해야 한다. 셋째,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중증-경증 응급실을 나눠야 한다.

보도 이후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응급실 표류 현상에 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에서 “<동아일보>의 응급의료 탐사기획 보도는 말이 없는 환자와 유족을 대신해 그 울분을 세상에 외쳐줬고 정부에 해결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한국기자협회 사이트에 실린 이달의 기자상 수상 소감에서 “큰 고통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취재에 응해준 이유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 바람이 이뤄질 때까지 후속 보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난 11일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주는 ‘2023 상반기 과학취재상(머크의학기사상)’도 수상했다.

*<동아일보>의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연재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을 생생히 담은 인터랙티브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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