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2년 퓰리처상 지역보도 부문 수상작 – 화재 이전의 실패

목조 주택에서 불이 나 어린이와 청소년 10명이 숨졌다. 여름날 밤샘 파티를 하러 모인 아이들이었다. 어른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숨진 이 가운데는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기도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화재 원인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소방 당국은 폐허 안에서 이미 작동을 멈춘 화재경보기를 찾았다. 20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역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화재경보기를 제대로 갖췄다면 아이들이 살 수 있었을 거라고 건물주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언론도 관련 보도를 내놓았다. 이 주택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을 시 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러나 여론과 언론은 이내 잠잠해졌다. 오직 두 명의 기자는 의문을 놓치지 않았다.

CNN을 통해 보도된 시카고 화재 사고 현장. 사고 직후 한국 언론도 해외 뉴스로 다룰 정도로 충격이 컸다. 화재경보기에는 배터리가 없었다는 설명이 영상 가운데 들어가 있다. CNN 갈무리
CNN을 통해 보도된 시카고 화재 사고 현장. 사고 직후 한국 언론도 해외 뉴스로 다룰 정도로 충격이 컸다. 화재경보기에는 배터리가 없었다는 설명이 영상 가운데 들어가 있다. CNN 갈무리

탐사보도로 규명한 ‘얼마나’의 문제

비영리법인 ‘더나은 정부를 위한 협의회’(BGA, Better Government Association)가 운영하는 매체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Illinois Answers Project)의 매디슨 홉킨스 기자와 이 지역 유력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의 세실리아 리예스 기자가 품은 의문은 간명했다. ‘당국이 화재 안전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런 사고가 얼마나 더 있었을까? 미리 조처했더라면 지금껏 불필요한 희생을 얼마나 막을 수 있었을까?’

두 기자는 협업 보도에 나섰다. 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의 전모를 확인하려 했다. 좋은 발상이 언제나 보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추정과 의견이 아니라 사실을 확보해야 한다. 여러 탐사보도가 그렇듯, 건물주와 시 당국을 고발할 물적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취재팀은 시와 카운티, 주 정부에 각각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획득한 문서들의 아귀를 맞춰봤다. 소방 당국이 작성한 화재조사서, 시카고시가 접수한 주택 불만 신고 내용과 처리 보고서, 지역 법원의 재판 기록까지 살폈다.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됐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다가 결국 화재가 발생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그 결과, 사전에 화재 취약 문제가 파악됐음에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다가 결국 심각한 사고로 이어진 주택 화재 42건을 찾아냈다. 2014년 이후 6년 동안 발생한 42건의 화재로 61명이 숨졌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 기간 시카고 전체의 화재 사고 사망자는 170명이었다. 화재에 취약한 주택의 문제를 미리 해결했다면, 전체 화재 사망자 가운데 3분의 1 정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일련의 자료 및 데이터 분석에 기초하여, 취재팀은 피해자 가족과 안전 전문가, 소방관과 시 관계자 등 100여 명을 직접 만나 숫자 이면의 이야기를 촘촘히 취재했다.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와 시카고 트리뷴의 협업으로 보도된 ‘화재 이전의 실패’(The Failures Before the Fires)는 두 언론에 동시에 게재됐다. 편집이나 사진 구성은 조금 다르지만 기사 본문의 내용은 서로 같다.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와 시카고 트리뷴의 협업으로 보도된 ‘화재 이전의 실패’(The Failures Before the Fires)는 두 언론에 동시에 게재됐다. 편집이나 사진 구성은 조금 다르지만 기사 본문의 내용은 서로 같다.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사회과학 조사를 닮은 보도

2021년 4월 첫 기사가 나온 뒤 보도는 7개월에 걸쳐 모두 다섯 차례 이어졌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법을 만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규제를 완화하거나 사문화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첫 보도 열흘 뒤 다뤘다. 뒤이어, 시민들의 요구와 시 당국의 반응을 담은 기사, 다른 도시 20곳을 취재해 화재 안전에 대한 해법을 탐구한 기사, 시카고시장이 문제를 보완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을 검증한 기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취재팀은 첫 보도를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기사 한 편을 따로 할애해 자세히 설명했다. 취재 방법은 사회과학 연구와 비슷했다. 우선 조사 대상을 명확히 한정했다. 화재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된 사고만 추려냈다. ‘안전 문제’의 정의도 세웠다. 비상구가 막혀 있거나, 스프링클러 없는 건물 등 사전 예방 조처 미비로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가려내고 유형별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단열이 불량한 주택에 살던 빈곤 가정이 가스레인지를 틀어 난방을 하다가 화재를 난 경우가 있었다. 화재경보기가 아예 없어 대피하지 못한 경우, 지나치게 많은 인원을 수용하도록 건물을 불법 개조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제때 철거하지 않은 노후한 건물에서 불을 피우다 쓰레기 더미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경우 등이 이런 분석 과정에서 발견됐다. 엄밀히 정의하고 명확히 기준을 세워 사건을 추려내고 이를 유형에 따라 분류하여, 그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낸 것이다.

두 언론의 보도는 피해 양상을 되도록 다양하게 범주화했다. 주거 지역, 연령 등에 따라 화재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달라졌다.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두 언론의 보도는 피해 양상을 되도록 다양하게 범주화했다. 주거 지역, 연령 등에 따라 화재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달라졌다.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온라인 보도 장점 살린 구성

기사를 보면, 방대한 취재 내용을 간명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본문에서는 유족의 감정과 참사 현장을 묘사하는 데 집중하고, 사고 경위 설명은 그래픽으로 대신했다. 특히 <시카고 트리뷴>은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했다.

첫 기사에 등장한 주요 사례를 설명한 그래픽. 주방 뒤로 이어지는 비상 탈출구 입구가 좁아 어머니는 지상 3층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고 자녀 4명을 잃었다.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사진, 동영상, 하이퍼링크, 반응형 지도, 그래픽, 정부 보고서 등 원자료가 여러 번 교차하며 본문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다. 사진을 하나씩 넘겨 가며 볼 수 있는, 32장과 78장짜리 사진 슬라이드를 편집해 기사 중간에 배치했다. 반응형 지도에 마우스를 올리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피해자의 사진을 비롯한 간단한 인적 사항과 사고 개요, 당국의 보고서, 화재 현장 사진, 911 신고 음성 등을 스크롤을 내려가며 하나씩 살펴볼 수도 있다. 종이 지면으로 구현할 수 없는 형식과 분량을 디지털 플랫폼에서 구현한 것이다.

독자가 사건을 선택하면 피해자 61명의 인적 사항과 화재 상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다.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독자가 사건을 선택하면 피해자 61명의 인적 사항과 화재 상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다. 시카고 트리뷴 갈무리

코로나19로 2년 동안 이어진 취재

해외 언론에서 협업은 일반적인 보도 방법이다. 전 세계 언론사들을 상대로 심사하는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Online Journalism Awards, OJAs)는 협업 분야를 따로 시상하기도 한다. <시카고 트리뷴>과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가 협업한 이 기사도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의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협업 분야 수상작과 최종 후보작들. 오른쪽에 'The Failures Before The Fires'가 있다. 가운데 한국의 뉴스타파가 참여한 협업 보도물도 있다.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웹페이지 갈무리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협업 분야 수상작과 최종 후보작들. 오른쪽에 'The Failures Before The Fires'가 있다. 가운데 한국의 뉴스타파가 참여한 협업 보도물도 있다.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웹페이지 갈무리

두 언론은 2019년 11월부터 이 기사의 취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염병 취재에 탐사보도 팀 기자들이 투입되는 바람에 취재가 중단됐다. 한 해가 꼬박 지나서야 취재를 다시 시작했다. 이 때문에 첫 보도까지 걸린 준비 기간은 2년으로 늘었다. 보도 계기가 된, 10명의 아이들이 숨진 화재 사고가 발생한 때로부터 3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기사의 ‘시의성’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6년에 걸친 화재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보도에는 기자 개인의 관심과 특기도 투영됐다. <시카고 트리뷴>의 리예스 기자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이 기사에 데이터 분석의 방법이 적용된 이유다. 그는 멕시코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출신이다. 빈곤 문제, 그리고 빈곤과 관련한 주택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문제의식이 이번 기사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리노이앤서프로젝트>의 홉킨스 기자는 노스웨스턴대학교 메딜저널리즘스쿨 출신이다. 저널리즘스쿨 재학 시절, <시카고 트리뷴> 탐사보도 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탐사보도에서 기자 이력을 개척해온 것이다.

30살 언저리의 두 기자는 이 보도 이후 각자 둥지를 바꿨다. 탁월한 기사를 보도한 이력을 성과로 삼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옮겨 다니는 일이 미국 언론계에서는 당연하고도 일반적이다. 이제 리예스는 <비지니스 인사이더>의 탐사보도 기자로, 홉킨스는 <캔자스 시티 비컨>(Kansas City Beacon)의 보건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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