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3년 피버디 상 뉴스 부문 수상작 –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을 위한 정의는 없다’

2021년 8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2001년 9·11 테러의 배후인 탈레반을 응징하겠다며 시작한 20년의 전쟁이 끝났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은 대공세를 펼쳐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다시 정권을 찾은 탈레반은 카불 점령 뒤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을 거론하면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 허용을 ‘샤리아’(이슬람 성법)에 근거해 검토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 직후인 2021년 8월 말,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아프간에서 민간인 즉결 처형과 여성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유엔 인권이사회에 보고했다.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바이스 미디어>의 이소벨 영 기자는 직접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탈레반 치하 6개월 동안 변화한 여성들의 삶을 상영시간 50분짜리 다큐멘터리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을 위한 정의는 없다’에 담았다. 다큐는 2022년 2월 방영됐다. 2023년 제83회 ‘피버디 어워즈’(Peabody Awards) 뉴스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미국방송협회(NAB)와 조지아대학교가 주최하는 피버디 어워즈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고 불린다.

2023 피바디 뉴스 부문 수상작인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을 위한 정의는 없다’는 2022년 2월 방영됐다. 이사벨 영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방문해 탈레반 대변인과 시민들을 만나는 다큐멘터리이다. 바이스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출처 피버디 트위터 갈무리
2023 피바디 뉴스 부문 수상작인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을 위한 정의는 없다’는 2022년 2월 방영됐다. 이사벨 영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방문해 탈레반 대변인과 시민들을 만나는 다큐멘터리이다. 바이스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출처 피버디 트위터 갈무리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된 스타 저널리스트, 이소벨 영

이소벨 영 기자가 탈레반 법정에서 카메라를 향해 속삭이듯 비밀스럽게 현장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이소벨 영 기자가 탈레반 법정에서 카메라를 향해 속삭이듯 비밀스럽게 현장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서사를 끌고 가는 건 이소벨 영(Isobel Yeung) 기자다. <바이스 미디어>의 장편 다큐멘터리 수석 전문 기자(correspondent)인 그는 분쟁지역에 직접 찾아가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취재 방식으로 유명하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다룬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을 계기로 <바이스 미디어>의 전업 기자가 됐다. 이후 외국 기자 가운데 처음으로 리비아 수용소에 투옥된 이민자들을 직접 취재했고, 2019년과 2021년에는 예멘을 다룬 보도로 각각 에미상을 받았다.

해외 언론 기자에 대한 탈레반의 ‘양해’를 얻은 이소벨 영 기자는 여느 여성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직접 취재했다. 그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의 모순적인 현실을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아프간이 더 안전해졌다”고 인터뷰하는 시민 뒤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아이들, 가정에서 탈출한 여성에게 판결하는 지역 법원의 판사, 살기 위해 아프간 국경에 모였지만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피난민 등이 다큐에 생생하게 등장한다.

12세 이상의 여성 교육을 금지하는 등 아프간 여성 인권이 국제적으로 최악의 수준이라고 영 기자는 탈레반 대변인에게 묻는다. 단독 인터뷰에 응한 대변인은 근거 없는 낙관과 현실 모순적 답변을 돌려준다. 탈레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태어난 두 여아를 받은 산파가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는 장면으로 다큐는 끝난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기자가 폭력 피해를 본 여성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기자가 폭력 피해를 본 여성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이소벨 영 기자는 이 다큐에 적용한 취재 방식 덕분에 <바이스 미디어>의 대표 저널리스트가 됐다. <바이스 미디어>의 특징은 ‘곤조(gonzo) 저널리즘’에 있다. 이탈리아어 ‘바보(gónzo)’, 스페인어 ‘미련하다(ganso)’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곤조 저널리즘은 취재를 위해 무모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공격적으로 취재하여 노골적인 현장을 보도하는 취재 보도 방식을 뜻한다. 이를 영상에서 적나라하게 구현한 것은 <바이스 미디어>가 처음이었다. 신생 매체인 <바이스 미디어>가 급속한 인기를 얻은 비결이기도 하다.

곤조 저널리즘은 독자의 감정적 공감을 촉발하여, 이슈를 몰입하여 읽거나 보게 만든다. 이를 위해 기자는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이 다큐에서 영 기자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시청자는 기자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생생하게 감각하면서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곤조 저널리즘은 여러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독자의 몰입을 돕겠다며 기자의 주관을 앞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탈레반 정부의 교육기관 담당자는 이소벨 영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여성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바닥을 응시하며 답했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탈레반 정부의 교육기관 담당자는 이소벨 영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여성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바닥을 응시하며 답했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상황을 전달하되 폭력을 재현하지 않기

다만 이 다큐는 절제의 덕목도 발휘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전달하는 곤조 저널리즘의 특성상 자극적 장면을 포함하려는 유혹에 이끌릴 수 있는데, 이 다큐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겪는 폭력의 실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전달했다. 다큐에서 애니메이션은 구체적인 증거와 증언을 활용하되 피해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아프간 여성이 탈레반에 의해 심하게 폭력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올 때는 애니메이션으로 헝클어진 선을 보여줬다.

어린 나이에 늙은 탈레반 남자에게 돈을 받고 시집간 아프간 여성이 가정에서 무참히 폭력 당했다고 증언을 할 때, 다큐에서는 마구 헝클어진 선이 나타난다. 폭력을 재현하지 않기 위한 연출이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어린 나이에 늙은 탈레반 남자에게 돈을 받고 시집간 아프간 여성이 가정에서 무참히 폭력 당했다고 증언을 할 때, 다큐에서는 마구 헝클어진 선이 나타난다. 폭력을 재현하지 않기 위한 연출이다. 바이스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밀레니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이스 미디어>의 도전과 실패

바이스는 퀴어, 정신건강, 대마, 문화, 사진, 케이팝 등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이스 누리집 갈무리
바이스는 퀴어, 정신건강, 대마, 문화, 사진, 케이팝 등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이스 누리집 갈무리

이 다큐를 제작한 <바이스 미디어>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특화된 영상물로 성공을 거뒀다. 기성 언론의 엄숙주의 또는 객관주의를 벗어나 논쟁적 이슈를 공격적으로 다뤘다. 영화제작사인 ‘21세기 폭스사’ 등의 투자를 받는 등 21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라는 찬사를 들었다. 6월 16일 현재 <바이스 미디어>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680만 명에 이른다. 아시아판, 인터내셔널판 바이스와 더불어 한국어 서비스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CNBC 방송에 따르면, <바이스 미디어>는 지난달 14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고 회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기성 언론을 위협하던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이 몰락하는 징후라고 평가했다. <바이스 미디어>가 파산에 이른 핵심 이유로 ‘수익 창출 실패’가 꼽힌다. 뉴욕시 퀸즈에서 지역 온라인 매체를 운영하는 미트라 칼리타는 “회사 성장과 독자 확보를 소셜미디어에만 의존한 브랜드는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 모두가 알게 됐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새로운 <바이스 미디어>가 등장하려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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