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2년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 수상작 – 교통 단속 받던 운전자 400명이 죽은 이유

2021년 4월 미국 미니애폴리스, 흑인 남성 던트 라이트(Daunte Wright, 당시 20세)가 형 이름으로 등록된 차를 몰고 있었다. 그는 좌회전 차선에 차를 세우고 우회전 신호를 켰다. 현장을 목격한 경찰관이 즉시 차를 세웠다. 차량을 조회하자 허가 없이 총을 소지해 발부됐던 체포 영장이 나왔다. 라이트에겐 운전 면허증도 없었다. 라이트가 차를 몰고 도주하려고 하자 경찰관은 테이저건 대신 실탄을 쐈다. 라이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라이트의 죽음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했다. 그러나 경찰이 왜 총을 쐈는지를 깊이 파고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해, <뉴욕타임스> 탐사보도팀이 경찰 폭력의 배경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경쟁사와 지역언론을 길잡이 삼은 보도

던트 라이트의 죽음은 고지서로 끝날 수도 있었다. 교통 법규를 어겼으니 차를 갓길에 세우고 경찰이 발부한 벌금 고지서를 받으면 됐다. 딘 바켓(Dean Baquet, 67) 당시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이 탐사보도팀 회의를 소집했다. 간단한 상황이 죽음으로 번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바켓 국장은 기자들에게 물었다.

탐사 보도 전문인 스티브 에더(Steve Eder) 기자는 다른 언론의 기사를 벤치마킹했다. 오랜 경쟁사인 <워싱턴 포스트>는 2015년 이후 5년여 동안 경찰의 총격으로 민간인이 사망한 8000여 건의 사건을 분석하고, 사망자의 인종이나 무장 여부, 총격 상황을 정리하여 독자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에더 기자가 이끄는 <뉴욕타임스>의 취재팀은 이 자료를 활용해 지난 5년 동안 총이나 칼로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운전자 400명 이상이 경찰의 명령으로 정차했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5년 1월 1일부터 경찰의 총격으로 사람이 사망한 모든 사고를 기록하고 있다. 원자료는 개발 플랫폼인 깃허브에 모두 공개한다. 워싱턴 포스트 갈무리
워싱턴 포스트는 2015년 1월 1일부터 경찰의 총격으로 사람이 사망한 모든 사고를 기록하고 있다. 원자료는 개발 플랫폼인 깃허브에 모두 공개한다. 워싱턴 포스트 갈무리

이후 취재팀은 사건 현장의 영상과 녹취 180건을 확보했다. 정보공개 청구로 150건의 민사 재판 기록을 열람하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 사건을 다룬 검사 등 수십 명의 관련자도 만났다. 이 과정에서 지역 현안을 주로 보도하는 지역 신문의 보도를 활용했다. 취재팀은 지역 언론의 기사를 통해 사건 당시의 세부 사항을 파악했다. 사건 현장에서 촬영된 경찰의 보디캠 영상이나 녹취 파일이 기사에 첨부된 경우도 있었다.

취재팀은 이렇게 취재한 방대한 정보를 3편의 글 기사와 한 개의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구성했다. 그 제목은 ‘차를 세우다’(Pulled over)였다. 글 기사를 보면, 취재팀이 참고한 <워싱턴 포스트>와 지역 신문의 기사가 일일이 링크로 연결돼 있다.

취재 결과, 정차 중에 사망한 400명 이상의 운전자 모두 경찰의 총격에 의해 죽었지만, 그 책임을 물어 경찰이 처벌받은 경우는 5건에 그쳤다. 그나마 유죄 판결을 받은 5명 가운데 1명은 집행 유예로 풀려났고, 1명은 7개월 형에 그쳤다. 취재팀이 입수한 재판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경찰은 ‘목숨의 위협을 느껴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경찰의 정당 방위권을 옹호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이 자료를 살펴본 취재팀은 하나의 질문을 품었다. ‘경찰은 정말 발포할 수밖에 없었을까?’

시각탐사보도로 밝혔다…“운전자 아닌 경찰이 위험 상황 자초”

경찰이 반드시 발포해야 할 만큼 위험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취재팀은 미 법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검사와 배심원들은 경찰관이 발포하는 순간 촬영된 2~3초 남짓의 영상이나 사진을 참고해 경찰관의 잘잘못을 가렸다. 경찰관은 순간적인 판단을 내려 발포하므로, 그 순간이 얼마나 긴박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 소속 로빈 스테인(Robin Stein) 수석 영상 기자는 마지막 몇 초에 국한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경찰 발포 약 1분 전의 영상을 분석했다. 경찰차와 운전자 차량의 블랙박스, 그리고 경찰의 몸에 부착된 보디캠 영상을 활용했다.

스테인 기자는 120개 영상에서 패턴을 찾아냈다. 발포하기 전, 경찰은 운전자의 움직이는 차에 매달리거나 움직이는 차 앞을 가로막는 등 스스로 위험한 위치로 향했다. 전문가들은 “경찰 스스로 만든 위험”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은 경찰 총기 사망 사건을 기록한 서로 다른 영상을 종합적으로 교차분석해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소개했다. 2018년 발생한 사건을 분석한 위 영상 갈무리 화면을 보면, 브레이크를 밟고 신분증을 찾는 척하는 운전자, 도주를 위해 기어를 변경하는 운전자, 차가 출발하자 차 문을 붙잡고 매달린 경찰, 총을 꺼낸 경찰 등을 확인할 수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은 경찰 총기 사망 사건을 기록한 서로 다른 영상을 종합적으로 교차분석해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소개했다. 2018년 발생한 사건을 분석한 위 영상 갈무리 화면을 보면, 브레이크를 밟고 신분증을 찾는 척하는 운전자, 도주를 위해 기어를 변경하는 운전자, 차가 출발하자 차 문을 붙잡고 매달린 경찰, 총을 꺼낸 경찰 등을 확인할 수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예를 들어, 어느 분석 화면을 보면, 경관이 운전자의 차를 경찰차로 막는다. 경관은 차에서 내려 총을 겨냥한 채 운전자의 차에 바싹 다가선다. 경관은 계속 손을 들고 내리라고 외친다. 운전자가 차를 세운 이유를 묻지만 답하지 않는다. 운전자가 자신 쪽으로 차를 돌리자 즉각 발포한다. 애초에 경관이 차 가까이 서지 않았다면 큰 위협을 느낄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해당 경관은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 스스로 움직이는 차 앞에 서지 말라는 규정을 어겨 해고됐고, 이의를 제기해 소송 중이다.

경찰차에 부착된 카메라에 녹화된 경찰의 발포 직전 순간. 두 경관 모두 움직이는 차 앞으로 먼저 다가가서 발포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경찰차에 부착된 카메라에 녹화된 경찰의 발포 직전 순간. 두 경관 모두 움직이는 차 앞으로 먼저 다가가서 발포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사건 이후 경찰들이 증언한 영상도 기사에 담았다. 경찰들이 발포 순간 느꼈다는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어느 경관은 “당시 운전자의 총을 보지 못했지만, 운전자가 반격하려고 총을 찾는 것 같아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운전자의 총은 운전석에서 손이 닿지 않는 조수석 바닥에서 발견됐다. 움직이는 운전자의 차에 매달린 채 발포한 또 다른 경관은 “쏘지 않으면 운전자가 다른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사건 분석을 위해 법의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2017년 앨라배마주 피닉스 시티에서 벌어진 사건의 경우, 경찰은 보디캠과 블랙박스 영상 공개를 거부했다. 취재팀은 총알이 박힌 피해자의 차량을 직접 찾아내고 주정부 조사 보고서도 확보하여, 법의학 전문가인 제레미 바우어(Jeremy Bauer) 박사와 함께 분석했다. 당시 경찰의 변호인은 운전자가 차량을 무기 삼아 경찰 쪽으로 돌진했다고 주장했지만, 취재팀의 분석 결과는 달랐다. 탄탄한 증거로 당시 현장을 재현한 영상까지 보도한 취재팀은 이 사건의 재수사를 주정부에 권했다.

보도팀이 재구성한 2017년 사건 영상. 운전자의 차가 발포하는 경찰을 가운데 두고 빙 돌아 도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보도팀이 재구성한 2017년 사건 영상. 운전자의 차가 발포하는 경찰을 가운데 두고 빙 돌아 도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죽음을 묵인하는 구조를 찾다

<뉴욕타임스>의 취재팀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중대 범죄도 아닌데, 교통 법규를 어긴 사람들의 차를 일일이 도로에 세우고 위험한 상황을 감수해야 할까? 경찰들이 자주 차를 세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취재팀은 교통 법규를 위반한 사람들이 내는 벌금이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했다. 전국 단위의 지방자치단체 감사 보고서와 시 예산안을 검토해 교통 법규 위반 벌금이 주된 예산 수입원인 지역을 찾아냈다. 미국 전역 2만 개에 달하는 마을 가운데 최소 730개 마을이 지자체 수입의 10% 이상을 벌금에 의존하고 있었다.

2017년 연간 주정부 재정 보고서에 따라 지방 정부 수입의 10% 이상을 교통 법규 위반 벌금이 차지하는 지역을 나타낸 지도.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2017년 연간 주정부 재정 보고서에 따라 지방 정부 수입의 10% 이상을 교통 법규 위반 벌금이 차지하는 지역을 나타낸 지도.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이 지도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교통법규 위반 고지서가 많이 발급되는 특정 지역 또는 특정 도로를 찾아냈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시의 뉴버그 하이츠 마을을 가로지르는 77번 고속도로에서 2019년에만 40억 원 가까운 벌금이 징수됐다. 이 마을의 주민은 2000여 명에 불과했다.

77번 고속도로에서 발부된 모든 교통 법규 위반 고지서는 뉴버그 하이츠 마을 법원에서 처리됐다. 그 벌금은 마을 재정의 원천이 됐다. 이 마을의 시장은 비슷한 규모의 소도시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경찰을 배치해 교통 정지를 북돋고 있는데, 이런 조치가 “실제 수입에 필요하다”고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을 전체가 벌금 수입에 의존하면, 경찰은 중대한 범죄를 단속하는 대신 사소한 교통 법규 위반을 샅샅이 찾으며 과도한 교통 정지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오클라호마주 밸리 브룩 지역에서 한 경찰관이 교통정지한 차량을 수색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오클라호마주 밸리 브룩 지역에서 한 경찰관이 교통정지한 차량을 수색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뉴욕타임스>의 이 보도는 2022년 퓰리처상 국내 부문을 수상했다. 보도 이후, 만료된 번호판, 꺼진 자동차 전조등 같은 사소한 이유로 운전자를 연행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몇몇 주에서 통과됐다. 운전자를 연행할 필요가 없다면 차에서 내리게 해 제압할 필요도 줄어든다. 지난달에는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버지니아 주정부도 같은 법을 통과시켰다. <뉴욕타임스>는 최근까지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연재물에 덧붙이고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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