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년 피버디 상 뉴스 부문 수상작 – 분노의 날

2021년 1월 6일, 수천 명의 사람이 미국 워싱턴에 모였다. 분노에 찬 이들이 외쳤다.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었다. 트럼프는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백악관 남쪽 공원에서 “우리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죽도록 싸우라”고 연설하며 시위대를 자극했다. 흥분한 사람들은 의사당으로 몰려갔다. 의사당에선 새로 선출된 대통령의 승인 절차를 밟고 있었다. 시위대는 의회를 지키는 경찰을 제압하고 의사당에 난입했다. 미 의회 폭동 사건의 시작이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의 보도는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썸네일 갈무리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의 보도는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썸네일 갈무리

이날 경찰과 민간인을 포함해 5명이 죽고 경찰 140명이 다쳤다. 미 의사당이 훼손된 것은 1814년 미·영 전쟁 때 불탄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인은 혼돈과 실망에 빠졌다.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이 유린당한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기자들이 움직였다.

역사의 초고를 기록하는 언론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더 정확한 취재 보도가 필요하다. 미 의회 폭동 사건 이후 다양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visual investigation)의 ‘분노의 날: 트럼프 지지자들은 어떻게 미국 의사당을 차지했나’ 보도는 2021년 제82회 ‘피버디 어워즈’(Peabody Awards) 뉴스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압도적인 보도란 평을 들었다. 미국방송협회(NAB)와 조지아대학교가 주최하는 피버디 어워즈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고 불린다.

이 보도를 위해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은 폭동 현장에서 찍힌 수천 개의 영상을 모았다. 시위대가 직접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경찰의 바디캠(옷에 붙여 상황을 기록하는 카메라) 영상, 무전 기록 등이 수집 대상이었다. 모든 영상은 소유자에게 일일이 사용 허가를 받았다.

영상을 비롯한 수집 정보를 ‘타임스탬프’(time stamp·데이터가 기록된 시간)를 맞춰 시간순으로 재구성했다. 여기에 그래픽 디자인과 텍스트 기사를 덧붙여, 40분 분량의 뉴스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영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3분 남짓한 오프닝에선 미 의회 폭동을 둘러싼 배경과 정치인들의 말에 주목한다. 트럼프가 어떻게 지지자들을 선동했는지,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며 상황을 악화시켰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21년 1월 6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국회 의사당 안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난입하고 있다. SBS
2021년 1월 6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국회 의사당 안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난입하고 있다. SBS

오프닝 후 18분까지 진행되는 전반부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들어가기 이전의 상황을 담았다. 처음에는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위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돌변했는지 찬찬히 짚는다. 같은 시간, 다른 각도에서 찍힌 영상을 모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종합해서 보여준다. 시청자는 마치 직접 들어간 것처럼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의 다른 기사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다. ‘시각’(visual)을 통해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돕는 것이 이 팀의 보도 전략이다.

현미경으로 낱낱이 분석하는 듯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모습을 상세하게 보여준 뒤에는 잠시 현장에서 물러나와 전체 그림을 보여준다. 이때 3차원(3D) 모델링이 활용되었다. 의사당 건물을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활용해, 각 지점마다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설명했다. 가령 동쪽 경찰 저지선을 뚫고 시위대가 진입하던 상황에서 몇 명의 경찰관들이 동쪽에 있었는지, 동시에 서쪽 저지선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보여준다.

'분노의 날’ 보도는 3D 그래픽과 현장 영상을 교차하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진은 의사당 경내에 들어온 트럼프 지지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서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뉴욕타임스 ‘분노의 날’ 보도 갈무리
'분노의 날’ 보도는 3D 그래픽과 현장 영상을 교차하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진은 의사당 경내에 들어온 트럼프 지지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서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뉴욕타임스 ‘분노의 날’ 보도 갈무리

후반부에서는 의사당 난입 이후를 보여주었다. 이때는 의사당 내부의 폐쇄회로영상(CCTV)도 활용했다. 최초로 진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총에 맞아 사망했는지 화면을 정지해 보여준다. 또한, 3D 모델링을 활용해 의원들이 어떤 경로로 탈출했는지를 설명한다.

기술의 진화와 어우러진 새로운 저널리즘

이 보도를 내놓은 시각탐사보도팀은 2017년 만들어졌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디지털 전략으로 뉴스의 시각화를 추진했다. 새로운 전략에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 전략의 핵심이 시각탐사보도팀이었다. 시각탐사보도팀은 주로 ‘오픈 소스 저널리즘’(Open Source Journalism)을 활용했다. 오픈 소스 저널리즘이란 ‘공개 출처 정보’(OSINT)를 활용하는 취재방법인데, 특히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에 나도는 정보를 수집하여 보도하는 것을 뜻한다.

시각탐사보도팀은 처음부터 오픈소스 저널리즘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 팀의 설립 주역 가운데 하나인 말라키 브라운(Malachy Browne) 기자는 오픈 소스 저널리즘을 표방한 매체 <스토리풀>(Stroyful)에서 일했다. 2019년에는 오픈 소스 저널리즘을 통한 탐사보도로 명성이 높은 영국의 매체 <벨링캣>(Bellingcat)에서 일하던 기자도 영입했다. 이들 외에도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영상 편집자, 국제엠네스티에서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하던 기자, 3D 모델링을 하는 디자이너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10명 안팎의 팀원들이 시각탐사보도팀에 소속되어있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이 어떻게 시각 탐사 보도를 하는지 유튜브에서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 팀의 리더 격인 말라키 브라운이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갈무리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이 어떻게 시각 탐사 보도를 하는지 유튜브에서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 팀의 리더 격인 말라키 브라운이다. 뉴욕타임스 유튜브 갈무리

이들의 목적은 입체적 시각 자료로 실체적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 대상은 영상이다. 이 과정에 꼭 돈을 들일 필요는 없다. 소셜미디어의 수많은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영상의 대부분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무료 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Google Earth)도 시각탐사보도팀의 주요한 도구다. 구글 어스는 세계 곳곳의 지형과 건물에 대한 위성 사진을 제공한다. 가령 시리아의 어느 건물에서 폭탄이 터진 영상을 소셜미디어에서 확보했다면, 그 건물을 구글 어스로 찾아내 각도를 교차검증하는 식이다.

다만, 그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취재 보도 과정에 보통 2~3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전략이 중요하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지, 어떤 각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어떤 점이 새로운지가 주요한 고려 사항이다. ‘분노의 날’ 보도에 쓰인 수천 개의 영상과 무전 기록을 모으고 동기화하는 일은 6개월이 걸렸다.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은 주로 국제 이슈를 다뤄왔다. 2017년 팀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보도한 70건의 기사 중 44건이 국제 이슈에 관한 보도였다. ‘왓츠앱’(WhatsAPP), ‘디스코드’(Discord)와 같은 통신 앱으로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제보를 받아 보도한 사례도 있다.

국제 문제 가운데는 3개월 이상 지속되는 장기 이슈가 적지 않다. 대다수 언론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단발 보도에 그친다. <뉴욕타임스> 시각탐사보도팀은 그 틈새를 파고든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한 국제 문제를 보도하되, 생생한 시각 정보를 통해 독자에게 강력한 체험을 제공한다. 이 팀은 그 성취를 인정받아 2020년과 2023년 퓰리처 국제보도 부문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전통적 보도 영역을 새로운 방법과 형식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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