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WAVVE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

지난 3월 3일부터 4월 14일까지 매주 금요일 웨이브(WAVVE)에서 수사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가 방영됐다. 50분짜리 다큐멘터리 13부작인 <국가수사본부>는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같은 탐사·시사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제작한 SBS 배정훈 PD가 제작했다. SBS 배 PD의 첫 OTT 프로그램이다.

<국가수사본부>는 사건 발생부터 범인 검거까지 강력계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는 데 집중했다. 주인공인 경찰의 희로애락을 담아 사건을 파헤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반작용으로 <국가수사본부>를 만들게 되었다는 배정훈 PD는 강력반 형사들이 못하는 것만 지적하던 기존 방송과 달리 이들이 하는 수고로운 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국가수사본부>는 공개 직후 웨이브 전체 타이틀 중 신규 유료 가입 견인 1위 콘텐츠에 등극하며 주목받았다.

‘끝을 보는 사람들의 100% 리얼 수사 다큐멘터리’인 13부작 가 웨이브에서 방영됐다. ‘국가수사본부’ 유튜브 갈무리
‘끝을 보는 사람들의 100% 리얼 수사 다큐멘터리’인 13부작 가 웨이브에서 방영됐다. ‘국가수사본부’ 유튜브 갈무리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과 맞아떨어진 지상파 PD의 니즈

<국가수사본부>는 OTT에서 방영했기에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강력계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담는 게 핵심이었다. 사건 접수부터 피의자 검거까지 촬영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찍으려면 사건이 일어나기를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사건을 담으려면 제작진도 많이 필요했다. 6~7명으로 구성된 7개 팀이 길게는 6개월간 경찰서 근처에서 지내며 촬영했다. 기존 방송사에서 TV 파일럿을 찍을 때 3개월이 걸렸다면 <국가수사본부>는 기획부터 방영까지 1년이 소요됐다. 지상파의 편성 시간 제약이 없었기에 제작할 수 있었던 아이템이었다. 유연한 편성으로 당초 10회 분량이었지만 3회가 더 늘어나 13부작이 되었다.

배정훈 PD가 SBS가 아닌 웨이브를 선택한 것도 기획 의도와 맞닿아 있다. 배 PD는 WAVVE 국가수사본부 쇼케이스 현장 인터뷰에서 방송국과 OTT 제작환경의 차이는 ‘기다림’이라고 전했다. OTT에서는 사전 제작으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기에 제작자를 위해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 덕에 사건의 시작부터 결말까지 담을 수 있었다. 기존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새롭게 내레이션이나 프리젠터 없이 오디오와 음성만으로 만들어서 매화를 짧은 영화처럼 구성했다. 신선한 구성으로 4K의 고퀄리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제작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3화 ’평택 강도 마약사건‘에서 강력한 형사들이 도주 중인 피의자를 모텔에서 긴급 검거하고 있다. 사건 접수부터 제작진이 경찰을 따라다녔기에, 피의자 검거의 순간도 포착할 수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수사본부' 유튜브 갈무리
3화 ’평택 강도 마약사건‘에서 강력한 형사들이 도주 중인 피의자를 모텔에서 긴급 검거하고 있다. 사건 접수부터 제작진이 경찰을 따라다녔기에, 피의자 검거의 순간도 포착할 수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가수사본부' 유튜브 갈무리

앞으로 배 PD와 같이 지상파 방송사 PD가 OTT와 협업하는 일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태현 웨이브 대표는 ’2023 콘텐츠 라인업 설명회‘에서 <국가수사본부>의 성과가 좋다고 언급했다. 지상파 피디들이 OTT와 협업하는 트렌드에 대해서는 “지상파 PD들이 역량을 어디서든 발휘해야 제작 산업이 커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5월호 월간<신문과 방송>에서는 OTT 저널리즘을 표지이야기로 다루며 이런 트렌드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국가수사본부’를 두고 “공영방송의 탐사보도는 쇠락하는 국면에서 ‘국가수사본부’와 ‘나는 신이다’와 같은 다큐멘터리가 저널리즘 본연의 기능도 수행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면서 OTT 저널리즘이라는 용어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아직 OTT 저널리즘에 대한 분명한 정의는 없지만, OTT 플랫폼을 활용해 공중에게 공적 관심을 알리고 확산하는 행위라고 조작적 정의를 내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 '신문과방송' 5월호의 표지이야기는 ‘OTT 저널리즘’이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 '신문과방송' 5월호의 표지이야기는 ‘OTT 저널리즘’이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OTT에서 다큐멘터리는 콘텐츠 자체의 시간 분량이 자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방영 시간의 자유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시사교양, 다큐멘터리는 지상파에서 심야시간대에 편성되는 등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OTT 플랫폼의 스트리밍 환경이 TV 편성과 영화관 상영시간 불편한 제약을 없애면서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OTT에서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탄생하며 시사교양과 다큐멘터리의 저변 확대가 가능해졌다는 기대감이 쏟아졌다. 더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바라는 제작자와 방송사의 인적 자원을 통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필요한 OTT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적극적인 협업이 이루어졌다.

국내 OTT 사업자들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핵심 자원으로 인식하고 자체적으로 제작 역량을 강화하는데 나섰다.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유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이용자들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여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요 전략이다. 그 결과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중요해졌다. 아직 국내 OTT 시장은 아직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의 초기 단계다. 각 장르별로 전문 제작 인력의 확보가 선행과제가 됐다. 기존 방송사 제작진의 제작 경험에 관심을 두고 접촉을 늘려가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역량에 대한 투자가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 OTT와 지상파 PD들의 협업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OTT 다큐멘터리의 선정성 논란

OTT에서 만드는 콘텐츠는 방송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표현에서도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다. ‘국가수사본부’는 방영과 동시에 논란이 되었다. 우선은 콘텐츠 수위가 논란이 됐다. 공중파에 비해 훨씬 적나라한 현장이 화면에 담겼다. 1, 2화에서는 2022년 발생한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칼에 찔린 엄마의 혈흔이 남은 거실과 안면이 불에 그을린 채 사망한 딸 방의 모습이 강력반 형사 인칭 시점으로 전달됐다. 생존자인 어린 아들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담긴 경찰서 CCTV 화면도 여과 없이 방송됐다. 해당 사건의 현장은 피가 낭자했다. 배 PD는 모자이크 대신 피 색깔을 아예 지우는 방법을 택해서 덜 선정적으로 보이는 방향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배 PD 말대로 혈흔은 검고 흐릿하게 처리됐지만, 현장의 참담함은 그대로 보였다.

<국가수사본부>에서 생생하게 사건을 전달한다는 목적으로 범죄 수법까지 자세하기 설명하면서 모방범죄가 가능하지 않냐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배 PD는 "국민이 알아야 할, 공익적인 목적이 있는 사건을 다루길 바랐다“면서 ”모방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이런 범죄 수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OTT에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는 조건 하에 마약을 제조하고 숨기고 유통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던가, 포르노 산업의 현재를 파헤친다면서 포르노 제작 현장을 그대로 담는 등 논란을 일으킨 경우가 있었다. 리얼리티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금기의 영역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를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국가수사본부> 매 화 마무리에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본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사건의 피의자들은 재판을 통한 유죄 확정 전까지 무죄로 추정함을 밝힙니다.” 유죄 확정이 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르는 게 우선이다. 문제는 방송일 기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들도 다루었다는 점이다. 피의자의 신상 공개도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특히 형사사건 피의자들의 신문(조사) 영상이 문제가 됐다. 경찰이 피의자를 어떻게 신문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해당 영상을 활용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언론에 피의자 촬영을 허용한 경찰의 조치가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1화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의 피해현장. 혈흔은 검고 흐릿하게 편집됐지만 살인사건 현장이 그대로 담겼다. '국가수사본부' 유튜브 갈무리
1화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의 피해현장. 혈흔은 검고 흐릿하게 편집됐지만 살인사건 현장이 그대로 담겼다. '국가수사본부' 유튜브 갈무리

OTT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장이 될 수 있을까

<국가수사본부>는 엄밀히 말해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경찰의 수사 과정을 농밀하게 보여주는 휴먼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범죄는 다큐 주인공의 업적을 보여주는 배경에 그쳤다. 리얼리티는 사안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극적인 장치로 활용됐다. 또 예능에서 등장할 법한 효과음, 액션영화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경음악을 활용해 강력범죄를 가볍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사안을 왜곡되게 바라보게 될 우려가 있다.

OTT 플랫폼이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저변 확대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새롭고 감각적인 표현 기법이 정작 다큐멘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가치를 저해할까 우려된다. 배정훈 PD는 한 인터뷰에서 “실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두고 찬반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합의를 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다큐멘터리에 찾아온 전에 없는 기회를 활용하면서도 더불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집중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OTT 플랫폼이 가진 한계도 인식해야 한다. OTT는 추천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장르와 소재 편중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사용자 시청 기록에 따라 비슷한 작품의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주기 위해서다. 휴먼, 사회문화, 자연과학, 범죄 등 비교 시청자의 관심이 많은 작품군을 중심으로 소재가 단순화되었다. 살인자나 범죄 실화 중심의 자극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눈길을 끄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OTT에서 추천하는 다큐멘터리가 온전히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OTT 저널리즘은 과연 다가올 미래일까 헛된 환상일까. 다큐멘터리가 추구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공익성’, ‘진실 추구’가 사용자를 유치하고 구독을 유지해야 한다는 상업적 목적 아래 훼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국가수사본부 포스터. 출처 웨이브
국가수사본부 포스터. 출처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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