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해요."

2008년,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지역에서 GM 자동차 공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1만 여명의 미국 노동자들이 한순간에 실업자가 됐다. 지역경제 역시 활기를 잃었다.

그렇게 6년이 흐른 후, 중국의 자동차 유리 생산업체 푸야오(FUYAO)가 GM의 옛 공장을 인수했다.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다시 일자리를 얻었다. 데이턴에는 '푸야오'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푸야오 애비뉴’라는 거리가 생기고, 채용 설명회에는 포드 자동차공장 노동자 출신뿐만 아니라 기계공학 석사 학위 소유자, 인사업무 경력자들이 몰려들었다. 미국 땅에서 시도되는 중국 자본, 중국인의 경영방식과 미국 노동자의 조합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푸야오 공장의 중국인 경영진과 미국인 노동자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협력할 수 있을까?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평범한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존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에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봐오던 평범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 내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스티븐 보그너, 줄리아 레이처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의 뒷이야기를 담은 영상 <오바마 부부와의 대화>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감독 부부는 제작 현장에서 자신들의 개입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각본을 짜기 위해 책상에 앉는 대신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만나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었다. 부부는 3년간 공장 주변에 기거하며 이런 방식으로 푸야오 공장에서 벌어지는 중국 자본과 미국 노동자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총 촬영 분량은 1200시간에 달했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화면 캡처. 출처 넷플릭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화면 캡처. 출처 넷플릭스

생각보다 깊고 넓었던 문화의 간극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데이턴의 주민들은 안정적 일자리만 확보되면 다시 중산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푸야오의 차오 회장도 새로운 공장이 미국 땅에 세워진 "푸야오 글래스 아메리카" 라는 것을 강조하며, 지역사회와의 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새 직장의 근로조건이 GM 자동차 시절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중산층의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낮은 임금 (푸야오의 임금은 GM시절에 비해 절반 정도였다), 30분에 불과한 점심시간, 하루 두 번 주어지는 15분씩의 짧은 휴식시간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문화차이도 장벽으로 다가왔다. 개인의 이익과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개인보다 회사를 중시하며 전근대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중국 경영진들의 기업문화는 이해하기엔 너무 이질적인 것이었다.

중국에서 파견 나온 중간관리자들도 미국인 노동자들의 낮은 생산성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한 중국인 관리자는 ‘미국 노동자들은 손이 느리고 천성이 여유로워 일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기질’이라고 말한다. 일에 목숨을 걸지 않고, 개인의 여가 활동과 쾌적한 삶만을 중시하는 게으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푸젠성 푸칭의 푸야오 본사를 견학한 미국인들이 바라본 중국의 기업 현장은 이러한 문화 충돌을 가장 잘 요약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군대식 점호, 안전도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행해지는 위험한 작업들, 회사에서 진행된 직원들의 집단 결혼식, 복도에 걸린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초상화 등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두 집단 간의 간극을 감독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화면 캡처. 출처 넷플릭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화면 캡처. 출처 넷플릭스

중국 경영진과 미국인 노동자 간의 충돌은 노동조합 설립 문제를 두고 절정에 이른다. 차오 회장은 처음부터 푸야오 글라스 아메리카에서 노동조합의 설립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 문제가 속출하면서 미국인 노동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식 시간은 단축됐으며, 휴식공간은 더 많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생산공간으로 바뀌었다. 안전 대책은 미비했고, 안전사고로 3000명 이상이 퇴사했거나 해고됐다. 불만이 쌓인 미국인 노동자들은 하나 둘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영진은 노동조합 설립방해 전문 컨설팅업체에 막대한 돈을 지급하며 저지에 나섰다. 시급을 올려주겠다는 당근과 함께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에 가담할 경우 해고할 수 있다는 압력도 가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기업 폐쇄로 응수해 결국 모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협박도 있었다. 찬반 투표를 거쳐 푸야오에서의 노조설립은 결국 무산됐다. 중국경영진의 승리였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화면 캡처. 출처 넷플릭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 화면 캡처. 출처 넷플릭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미래는?

노동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영진은 우수 사원의 중국 본사 견학 프로그램과 시급 인상 방침을 제시하며 남은 미국인 노동자 달래기에 나선다. 이후 영화는 성급하게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중국인 간부가 회장에게 ‘실험동, 전자동에서 각각 4명씩을 해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동화는 표준화를 말하기 때문에 업무의 정확도가 더 높다’는 등 기계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고, 곧이어 미국과 중국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며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최대 3억 7500만 명의 노동자가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 예측을 담은 자막과 함께 다큐멘터리는 끝을 맺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가 만들어진 2019년 이후, 미국과 중국 간에는 안보 외교 갈등이 급격하게 발생한다. 미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고 국제사회로부터 봉쇄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나라가 상대국에 설립한 기업들의 분위기도 영화가 제작된 시점인 2019년과는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마도 푸야오 글라스 아메리카의 중국인 경영진과 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도 새로운 형태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감독은 어쩌면 중국인 노동자와 미국인 노동자 사이의 생산성 차이도, 문화 차이도, 노사갈등도, 변화하는 국제관계조차도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를 더 커다란 환경변화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를 말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생산성과 이익만이 모든 것이라 말하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작은 부품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영화는 ‘노동의 의미와 미래는 무엇이냐’고 질문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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