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EBS 다큐멘터리 5부작 '교육격차'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말이었다. 수능성적과 가장 비슷하다는 6월 모의고사 성적을 받자 잔뜩 긴장 상태였던 교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일찍이 포기한 아이들로 나뉘었다.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담임선생님이 반장이던 내게 점심시간에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실 안에서 조용한 자습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요구했다. 꽤 더운 여름날이었기에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친구들과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며 놀고 싶은 아이들과 조용히 공부하려는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수능이 다가오는 시기라 내 공부도 바쁜데 교실 사정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는 게 싫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서울에서도 명문대 진학률이 5순위 내에는 늘 들던 곳이었다. 대체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비수능 교과목의 수업 시간이면 옆자리 친구는 이어폰을 끼고 수학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반장은 수업 때도 모범을 보이라는 말에 교과서를 꺼내놓고 수업을 듣긴 하는데,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자퇴’였다. 자퇴를 하면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게 고등학교 교과과정은 대입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많은 수험생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대입 위주로 흘러간 공교육의 문제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4월 19일부터 5월 3일까지 매주 수, 목 방영한 EBS '교육격차' 다큐멘터리 5부작 포스터. EBS 제공
지난 4월 19일부터 5월 3일까지 매주 수, 목 방영한 EBS '교육격차' 다큐멘터리 5부작 포스터. EBS 제공

최근 방영한 EBS의 <교육격차> 다큐멘터리에서 자퇴를 선택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자퇴’를 생각했던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학생들의 자퇴 사유는 다양했다. 이미 망친 고등학교 내신으로는 대학에 가지 못하니 전략적으로 정시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를 한 학생도 있었다. 학원에서 이미 다 배웠을 것이라 생각하고 진행되는 수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한 학생은 ‘수학’은 좋아했지만 ‘수학 시간’이 싫어져 학교를 나와 혼자 공부하길 택했다. 자퇴를 선택한 학생들이 늘어나며 학교는 꼭 필요한 곳이 아닌, 대학 가기 전에 거쳐 가는 곳으로 그 의미가 퇴색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교육의 권리’는 안녕한가

다큐멘터리는 과연 대학에 가는 것이 교육의 제1 목표인가 질문을 남긴다. 대입에 매몰된 학교 교육의 현주소와 공교육이 잊은 교육의 진짜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 지난 2년간 제작한 EBS의 5부작 다큐멘터리 <교육격차>이다. 다큐멘터리는 오프닝에서 ‘교육격차’를 (1) 지역과 제도적 요인, (2) 학교 특성, (3) 개인의 지적 능력, (4) 사회경제적 배경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육적 수준 차이라고 정의한다. EBS는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를 넘어서 학생이 처한 사회경제적 배경이 대입의 결과와 이후의 사회적 지위 형성에 더 큰 격차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짚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공영방송 EBS는 교육의 종착점이 ‘대입’으로 변질되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지 못하는 수험생들과 전문가, 학부모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교육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로 지역과 제도적 요건, 학교 특성, 개인의 지적 능력,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는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교육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교육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로 지역과 제도적 요건, 학교 특성, 개인의 지적 능력,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꼽았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는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교육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지난 4월부터 EBS에서 방영한 <교육격차> 5부작은 다양한 교육 주체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현장취재,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 문제를 심층 해부했다. 1부 ‘격차의 조건’은 무엇이 교육격차를 만드는가를 보여준다.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사교육 시장을 누비는 아이들과 홀로 고립된 아이들을 담았다. 2부 ‘나의 자퇴기’에서는 자퇴를 선택하게 된 다양한 이유를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학교의 쓸모’를 느끼지 못한 아이들을 통해 학교가 다시 되새겨야 할 교육의 이유를 찾고자 했다. 3부 ‘인(in)서울이 뭐길래’는 수험생, 지방대학 학생, 학부모의 입장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는 것이 갖는 함의를 담았다. ‘서울’과 ‘서울 아닌 곳’과의 격차를 보여주기 위해 부산을 조명한다. 4부 ‘현수는 행복할 수 있을까’는 공교육의 시작인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격차를 7명의 초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본다. 5부 ‘스포일러’는 5개국 20대 청년 2,800명을 대상으로 ‘교육격차와 공정성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해 서로 다른 사회경제, 문화적 배경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느끼는 교육격차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교육격차를 유발하는 선행학습과 입시교육의 문제점을 고찰했다.

코로나 이후 공교육 안팎의 현실을 아우른 다큐멘터리

선생님이 코로나19 시기 아이들의 선택이 아닌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이 각자 상황에 따라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아이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결승점까지 달리기를 한다. 교육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선생님이 코로나19 시기 아이들의 선택이 아닌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이 각자 상황에 따라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아이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결승점까지 달리기를 한다. 교육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교육격차>는 한국 교육 현실이 공정하다는 것이 착각임을 보여주기 위해 성남시 오리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오리 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달리기를 한다. 평범한 달리기는 아니다. 선생님이 코로나 시기 아이들이 처했던 학교 밖 일상에 대한 질문을 한다.

“‘나는 코로나19로 학교에 오지 못하는 기간에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해당하는 사람 한 발 앞으로”

“‘나는 코로나 때 더 많이 학원에 다녔다’ 해당하는 사람 한 발 앞으로”

“‘엄마 아빠가 모두 출근해서 집에 홀로 있었던 적이 많다’ 해당하는 사람 한 발 뒤로”

“‘나는 등교하지 않을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지낸 적이 많다’ 해당하는 사람 한 발 뒤로”

“‘학교에 오지 않을 때 점심을 스스로 해결하거나 굶은 적이 많다’ 해당하는 사람 한 발 뒤로”

앞으로 가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뒤에 서게 된다. 그래서 생기는 차이만큼 출발점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각자 선 출발점에서부터 달리기를 한다. 선생님이 질문을 거듭할수록 계속 뒤로 물러났던 한 초등학생은 “힘들었어요. 출발 지점이 바뀌는 것 같아서 짜증 났어요”라고 말했다.

달리기 게임에서 출발선은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받는 학생은 사교육을 받고 수월하게 명문 대학을 진학하지만,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학생들은 점점 처질 수밖에 없다. 타고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가정 배경에 따른 연령별 아동기 인지능력 격차’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소득 하위 20% 아동과 소득 상위 20% 아동은 3~7세부터 인지능력에서 차이가 시작되어 그 격차는 10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벌어진다. 인지능력은 개인의 선천적 능력보다 타고난 환경에서 좌우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방학마다 서울로 올라와 기숙형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시간표. 호텔과 연계된 학원은 월 1000만 원이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방학마다 서울로 올라와 기숙형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시간표. 호텔과 연계된 학원은 월 1000만 원이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부산 해운대구의 한 학원 상가. 상가 전체가 학원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부산 지역 수험생들은 서울 학생들만큼 입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부산 해운대구의 한 학원 상가. 상가 전체가 학원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부산 지역 수험생들은 서울 학생들만큼 입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EBS '교육격차' 화면캡처

다큐는 서울과 지방의 다른 여건도 교육격차를 만든다고 말한다. 방학마다 서울로 유학 오는 지방 수험생들의 사례를 통해 지역 간 교육격차의 현실을 짚었다. 호텔과 연계된 기숙형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역 학생들은 대치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가늠해 보고 싶어 서울에 오게 됐다고 말한다. 진즉에 서울 학원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알았더라면 더 제대로 효율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표했다. 숙박과 학원이 모두 가능한 기숙형 학원은 월 1000만 원 정도다.

자연스럽게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격차를 만든다는 점도 강조한다.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에게 월 1000만 원의 사교육비 지원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인터뷰에 응한 한 차상위 계층 학생은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으로 교재를 샀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부모의 소득이 얼마인지와 같은 요소들이 어떤 대학에 가게 될 지로 이어진다. 개인 능력의 차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역격차, 소득격차가 복합적으로 얽혀 교육격차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안감 조성이 아닌 해결책 제시할 수 있어야

EBS의 <교육격차>는 대학 입시를 제1 목표로 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교육격차를 만드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진단했다. 소득, 환경, 지역의 차이를 조명해 한국 사회에 퍼진 능력주의의 허점을 전문가와의 조사를 통해 정확히 짚었다. 개개인의 능력이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외적인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정량화된 수치를 자료에 근거해 강조했다.

다양한 개별 사례를 꼼꼼히 취재해 보여주면서 교육격차를 만들어 내는 사회 구조를 명료히 그려내기도 했다. 지역에서 서울로 유학 오는 학생들이 호텔에서 머무르며 보내는 하루를 브이로그 형식으로 보여주거나, 과소학교에서 매일 아이들을 마중하는 오리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하루를 보여준다. 교육격차라는 거대담론 속에 담긴 다양하고 구체적인 교육 현장의 모습을 기록 함으로써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대학 입시를 경험하고 있는 수험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육일선에 있는 공립학교 교사와 사교육 입시 컨설턴트 등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교육문제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주체들의 입을 빌려 설명해 현실감을 높였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개인의 능력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사회경제적 격차만을 나열해 강조하는 데 그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교육격차>는 대학 입시에 매몰된 학교 교육의 현주소와 공교육이 잊은 교육의 진짜 의미를 담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점들은 구체적으로 짚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떻게 우리 공교육에서 잊혀진 교육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대안은 도출하지 못했다. 다양한 현실 사례를 제시한 것은 교육이 이러한 사회적 격차를 줄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자칫 열악한 여건에 있는 학생, 학부모들의 불안감만 조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지역몰락이 지방대학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담은 제3부 ‘인서울이 뭐길래’에서도 대안 제시가 부족했다.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서울 중심주의가 팽배해지며 지방 대학을 소외하는 경향이 두드려졌다고 강조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지역에 있는 대학에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30’과 같이 지역 격차를 해소한다는 목적의 다양한 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다큐에서 이런 현 정부의 정책 실효성과 보완점을 짚는다면 구체적인 대안 제시까지 한 프로그램이 되었을 것이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에서 나온다

곽영신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이 2년간 단비뉴스에 연재한 지방대 위기와 혁신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시몬 기자
곽영신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이 2년간 단비뉴스에 연재한 지방대 위기와 혁신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시몬 기자

2021년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를 출간하고 EBS 교육격차에 자문으로 참여한 단비뉴스 지방대 위기와 혁신팀의 곽영신 연구원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육격차를 주제로 5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은 상당히 큰 규모로 교육격차의 현실을 깊게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다. 5부작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난 교육격차를 다루다 보니 상징적인 사례 위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곽 연구원은 “지방 대학의 어려움을 담기 위해 부산대 사례를 (3부에서) 다루었다.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지방대학의 위기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라도, 현실에서는 부산대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지방대학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공영방송 EBS는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평생교육을 진흥하고, 민주적 교육 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진 교육방송이다. EBS 시청자위원회에서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할 때 제일 먼저 평가하는 기준은 ‘EBS다운 프로그램입니까?’이다. EBS 프로그램이 학교 교육을 보완하고 국민의 평생교육에 도움을 주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5부작 <교육격차> 다큐멘터리는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 학교 교육의 공백을 진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우리 공교육의 부족한 점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교육을 대학 입시 교육으로 축소하여 보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EBS다운 프로그램이라 평가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EBS의 교육진단 프로그램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길잃은 공교육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어서,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서 자퇴를 떠올리는 학생들에게 이제는 학교가 나서서 학교의 의미를 전달해 주어야 할 때라고 <교육격차> 다큐는 경고하고 있다. 향후 EBS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 입시에 매몰된 교육이 아닌,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전달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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