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jtbc '피크타임'

너무 예상 밖이라 ‘이상한 시도’라고 불리는 방송이 있다. jtbc가 처음으로 선보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피크타임> 이야기다. 이 프로그램은 아직 절정을 맞이하지 못한 아이돌들이 주인공이다. 오디션 사상 최초 팀 단위 대결 방식이며 이미 데뷔한 아이돌이 연차, 팬덤, 소속사, 팀명까지 전부 내려놓고 경연을 펼치는 서바이벌이다. ‘절정을 맞이할 시간’, ‘우리를 보여줄 시간’이라는 슬로건은 프로그램 제목 <피크타임>과 꽤 잘 어울린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이미 이전 작품인 <싱어게인>에서 이상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싱어게인>은 긴 시간 무명으로 지낸 가수,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가수, 재야의 실력있는 가수들을 무대에 세워 대중에게 다시 선보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과 '피크타임' 포스터 출처 jtbc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과 '피크타임' 포스터 출처 jtbc

느슨해도 공평하다면 괜찮다

‘인기가 없는 연예인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시청자 입장에서 <싱어게인>의 느슨한 구성과 연출은 단번에 시선을 끌기에 부족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간섭이 최소화된 무대에서 출연자들은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실력과 매력을 맘껏 펼쳤다. 시청자들도 점차 <싱어게인>만의 특별함을 즐기기 시작했고 첫 시즌의 성공으로 시즌2까지 제작되었다.

<싱어게인>의 남자 아이돌 버전이 바로 <피크타임>이다. 오랜 기간 활동했으나 인지도가 없는 팀, 더 높은 도약을 위한 발판이 필요한 신인 팀, 소속사와의 갈등이나 계약 문제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팀 이렇게 세 부문으로 나누어 모두 24팀을 선발해 본선 무대에 세웠다.

<피크타임> 제작진의 ‘이상한 시도’는 첫 방송에서부터 드러났다. 반복적인 편집으로 긴장감을 조성하지도 않고, 시청자가 상황을 오해하게 만드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도 없다. 오히려 단조로운 카메라 움직임과 어두운 조명 때문에 무대가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영상을 보면 아이돌 무대가 아닌 뉴스 자료화면을 보는듯한 기분마저 든다. 이름 대신 ‘몇 호’로 불렸던 <싱어게인> 출연자와 마찬가지로 <피크타임>에서는 각 아이돌 그룹의 팀명이 공개되지 않는다. 대신 1시부터 24시까지, 피크타임이라는 컨셉에 맞춰 ‘몇 시’로 불린다.

시리즈로 제작되는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은 첫 편이 가장 중요하다. 후속편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와 관심을 유도하고 유지하기 위해 인기 연예인 참가자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내용의 밀도를 높이려고 엄청난 노력을 투여한다. 그러나 <피크타임>은 첫 방송에 참가팀 모두를 등장시키면서 편성 시간이 무려 3시간이 넘었다. 제작진은 이에 대해 프로그램에 공평함을 가져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의 최종 우승팀은 심사위원단의 평가와 시청자 투표로 결정되는데 24개의 팀을 첫 방송에서 같이 보여주지 않고 2주에 걸쳐 나눠서 내보내는 경우, 2주 차 출연팀은 시청자 투표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투표가 반영되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특정 출연자에게 분량을 몰아주거나, 오디션 종목과 상관없는 사연을 부각시키는 등 제작진의 개입이 공공연했다. 피크타임의 제작진은 투표 결과에 출연자의 실력과 매력 외에 다른 요인이 개입하지 않도록 고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3년 2월 첫 방송한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피크타임'  출처 1화 방송화면 갈무리
2023년 2월 첫 방송한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피크타임' 출처 1화 방송화면 갈무리

<피크타임> 제작진은 왜 시청률 경쟁에서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이상한 시도를 하는 것일까? 출연자간의 숨막히는 경쟁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큰 재미 요소 중 하나인데 공평함을 애써 강조하는 제작진이라니. 마건영PD는 <피크타임> 제작발표회에서 기회라는 키워드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뛰어난 실력에도 기회가 없어 무대에 서지 못한 이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제작진의 기획의도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었다. MC를 맡은 이승기도 ‘경쟁 구도 속에서도 따뜻함과 감동을 놓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고집이 느껴져’ 섭외에 응했다고 답했다.

‘이건 아니다’라고 느끼기까지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어째서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고 ‘공평함’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선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6년 1월 음악전문 채널 엠넷은 <프로듀스101>이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101명의 여자 아이돌 연습생이 방송사가 그룹 데뷔를 보증하는 11명에 선발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데뷔조’는 매주 진행한 시청자의 투표 점수를 합산해 결정되었다. 연습생들은 투표하는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고 칭하며 프로그램 주제곡 ‘pick me’ 부르고 자신을 뽑아달라고 외쳤다.

101명의 연습생들은 자신들의 춤과 노래를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받는다. A부터 F까지 심사위원들이 부여한 등급은 프로그램속에서 참가자들의 신분이 되었다. A등급은 무대의 중앙에 위치해 가장 오랜 시간 TV 화면에 비춰지지만 등급이 내려갈수록 연습생들은 무대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처지가 된다. 노래의 후반부에 겨우 몇 초 얼굴을 보여주거나 아예 무대 아래 바닥에서 노래는 한 소절도 못 부른 채 춤만 추기도 한다. 독특하고 자극적인 방식의 진행과 편집은 시청자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방송은 최고 시청률 4.4%를 기록했고 시즌4까지 제작되었다. 특히 남자 아이돌 연습생이 출연한 시즌2는 마지막 방송 시청률이 5.2%였으며 방송 내내 ‘콘텐츠 영향력지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화제성이 뛰어났다.

그러나 2019년 7월 네 번째 시즌 <프로듀스 X 101>이 시청자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고, 수사 결과 전 시즌 모두 제작진의 조작으로 억울하게 탈락한 연습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책임자는 구속되었고 엠넷은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피해 연습생에게는 어떤 보상도 돌아가지 않았다. 케이팝 산업이 거대해지면서 당연히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중이다. 간신히 데뷔하더라도 활동이 가능한 팀으로 살아남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린 연습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의 해법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였던 어른들은 어린 출연자들을 데리고 과도한 경쟁에 몰아넣고 속이기 바빴다.

<프로듀스 101> 충격의 여파였는지 이후 한동안 이렇다할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등장하지 않았다. <LOUD(라우드)>, <극한데뷔 야생돌>, <디 오리진> 등 아이돌 연습생 대상 프로그램은 모두 화제를 끌지 못한 채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하는 포맷이 아닌 듯 보였다.

2023년 2월 첫 방송한 엠넷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보이즈플래닛' 출처 1화 방송화면 갈무리
2023년 2월 첫 방송한 엠넷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보이즈플래닛' 출처 1화 방송화면 갈무리

기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두 프로그램

그런데 2023년 2월, 우연의 일치인지 정반대 성격을 지닌 두 프로그램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왔다. <프로듀스101>의 복제품이나 다름없는 엠넷의 <보이즈플래닛>과 jtbc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 <피크타임>이다. 시청률과 영상 조회수 등 객관적 지표에서 현재 <보이즈플래닛>이 앞서고 있는 듯 보인다. 시청률은 0.4%에서 0.9%로 완만하지만 상승세이고 영상 조회수는 기본적으로 100만회를 웃돈다. <피크타임>의 시청률은 1.3%에서 0.6%로 하락세이다. 영상 조회는 한 편 당 10만회를 가까스로 넘기는 상태다.

엠넷의 ‘악마의 편집’과 달리 <피크타임> 제작진이 ‘천사의 편집’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방송 산업 내에서 지난 시간 벌어졌던 잘못에 대한 일종의 반성과 책임감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크타임> 제작진은 인기를 끌기 위해선 자극적인 요소를 주저 없이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가치가 훼손되더라도 개의치 않고 넘어가는 일반적인 제작 풍토에 반대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수를 쓰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굳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익적 메시지를 강조해야 하냐고 묻는다. 좋은 의도를 가졌어도 프로그램의 재미가 떨어져 시청자로부터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면, 결국 제작진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해 소용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크타임>이 당장 예능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 만연한, 인간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풍토를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돌이켜봤을 때 부디 작지만 유의미한 시도로 기록되길 바란다. 아이돌 소비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이상한 시도’로 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