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런던 프라이드'

1969년 6월 28일 새벽, 뉴욕의 크리스토퍼 가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 성소수자들과 경찰의 대치였다. 성소수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술집 스톤월인(Stonewall Inn)을 급습한 경찰이 주류 판매를 문제 삼으며 과잉 단속을 하고 이에 어느 레즈비언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 경찰은 끝내 무력을 동원해 사태를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다쳤다. 사태는 점차 항쟁의 성격을 띠며 7월 3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모습이 달라졌다. 억압을 견디고, 참는 방식 대신, 하나둘 모여 목소리를 내고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2016년 6월 2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톤월 인을 국가 기념물로 지정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2016년 6월 2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톤월 인을 국가 기념물로 지정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자긍심의 달, 6월

성소수자들은 이를 기념해 ‘스톤월항쟁’이라 불렀다. 매년 6월을 프라이드먼스(Pride Month)라 부르는 것도 스톤월항쟁에서 유래했다. 스톤월항쟁의 영향으로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진단및통계편람(DSM)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한다. 그리고 2019년 6월, 뉴욕 경찰은 마침내 과거 스톤월항쟁 당시의 폭력적 대응에 대해 공식 사과한다.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는 6월 말이면 퀴어퍼레이드를 개최한다.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기 위해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1984년 6월 30일 오전, 런던 시내가 성소수자로서 자긍심을 드러내는 퀴어들의 퍼레이드로 북적거린다. 60년대처럼 더 이상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회는 그들을 온전히 포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느 가정집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으로 기록된 광부 대파업 관련 소식이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대표적 신자유주의자였다. 그는 가장 이윤이 적게 남고 노조가 강성인 곳, 탄광을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거실에서 이 뉴스를 보던 청년 ‘마크 애쉬튼’은 무언가 결심한 듯 거리로 뛰쳐나간다. 마크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시작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광부들과 그 가족을 도와주세요!

마크는 런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사회주의자’라 불릴 만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는 런던 퀴어퍼레이드에서 친구들과 함께 현수막을 펼쳐 들고 행진하기로 했었지만, 마크는 계획을 바꿔 양동이를 잔뜩 가져와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외친다. “광부들과 그 가족을 도와주세요! 성소수자들은 광부들을 지지합니다!” LGSM 운동(Lesbians and Gays Support the Miners)의 시작을 알리는 구호였다. 하루 동안 양동이에 모금한 돈이 제법 많이 모였다. 행진이 끝난 밤, 마크는 동료들에게 왜 탄광 노조의 파업을 도와야 하는지 설명한다. 경찰로부터 무력 진압을 당하고 이유도 모른 채 감옥에 끌려가는 등 광부들이 처한 현실이 성소수자들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똑같이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광부들을 지지하는 일은 성소수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마크는 동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광부들의 파업을 지지하자고 제안한다. 영화 스틸이미지
마크는 동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광부들의 파업을 지지하자고 제안한다. 영화 스틸이미지

그러나 탄광 노조 본부와 지부들은 LGSM 운동의 지원 제의를 거부한다. 동성애자들이 모은 돈은 더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때 웨일스 출신이었던 ‘게딘’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둘라이스라는 작은 탄광촌에 직접 연락해 후원금을 전달하자고. LGSM의 L을 런던의 약자로 착각했던 마을 주민과의 통화 덕분에 엉겁결에 후원금 전달이 성사된다. 감사 인사를 전하러 마을주민을 대표해 ‘다이’가 런던을 방문한다. 태어나서 동성애자는 처음 본다며 놀라지만, 마크는 “저도 태어나서 광부 실제로 처음 봐요.” 라고 웃으며 받아준다.

원래 무작정 뛰어드는 거야

다이는 LGSM을 둘라이스로 초대한다.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던 마을 사람들은 그날 밤 마을회관에서 열린 파티를 계기로 서서히 태도를 바꾼다. 광부들은 춤을 출 줄 몰라 따분하다는 마을 주민 여성 ‘헤피나’의 말에 게딘의 남자친구 ‘조나단’이 디스코 음악에 맞춰 멋진 춤을 선보인다. 게이들을 가까이 하기 싫다던 마을 남자들은 조나단의 춤 실력을 보고는 금세 다가가 춤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아이들은 화려한 옷차림에 다정한 말투를 쓰는 게이 삼촌 ‘제프’ 곁에 몰려든다. 에이즈 옮을지도 모르니 아이들을 가까이하지 말라던 LGSM 운동가들을 향한 주부들의 경고가 무색할 지경이다.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조나단의 모습을 보고 둘라이스 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 스틸이미지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조나단의 모습을 보고 둘라이스 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 스틸이미지

LGSM 운동가들과 둘라이스 주민들이 구분 없이 섞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중, 마을 주민 여성 한 명이 노래를 시작한다. 제목은 ‘빵과 장미’다. 여성인권운동에서 자주 불리던 노래, 생존권과 존엄성을 모두 지켜나가자고 이야기하는 노래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성들도 화음을 쌓으며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그 중에는 ‘샨 제임스’도 있었다. 마을회관 급식소에서 얌전히 시키는 일만 하라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다이와 함께 LGSM 운동가들을 마을로 초대하자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주부로 사는 인생에 머무르지 말고 대학을 꼭 가라던 조나단의 말을 듣고 샨은 바로 실행에 옮긴다. 훗날 그는 국회의원이 되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활동한다. 지금도 노동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

파업이 길어지는 동안 LGSM은 계속해서 모금 활동을 하고, 둘라이스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마을에 계속 동성애자들이 찾아오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몇몇 주민들의 모함으로 마크 일행은 결국 마을에서 쫓겨나고 만다. LGSM은 와해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딘은 혼자 거리에서 모금 운동을 하던 중 호모포비아(homophobia: 성소수자에게 무조건적인 혐오 감정을 느끼는 사람)로부터 습격을 당한다. LGSM의 제1원칙 ‘절대 혼자 행동하지 말 것’은 사실, 언제 누구에게 공격받을지 모르는 성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규칙이었다.

혐오는 무지에서 나온다

한국에서도 둘라이스 마을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5년 삼성X파일 사건 당시, 서울 노원구에서는 노회찬 의원을 지키기 위한 서명운동이 한창이었다. 국내 성소수자 인권단체 몇몇 곳에서도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노회찬 의원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노원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는 바람에 이후 노원구에서 서명운동을 하는 성소수자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씁쓸한 결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85년 6월, 다시 찾아 온 프라이드먼스를 맞아 퀴어퍼레이드를 준비하던 LGSM 동료들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전국광부노조연합 광부들이 대형버스 여러 대를 대절해 직접 퍼레이드에 함께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한 것이다. 다음 해 노동당 회의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당 강령에 포함하자는 안건이 상정된다. 전 해까지만 해도 번번이 회의에서 부결되었던 안건이었다. 그해, 성소수자 권리는 핵심노조 한 곳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마침내 노동당 강령에 포함되었는데, 그 핵심노조는 바로 전국광부노조였다.

마크와 그의 친구들은 런던에서 광부들을 지지하기 위한 모임을 만든다. 영화 스틸이미지
마크와 그의 친구들은 런던에서 광부들을 지지하기 위한 모임을 만든다. 영화 스틸이미지

“게이 권리는 주장하면서 다른 권리는 무시하다니요? 노동자 권리는 주장하면서 여성의 권리는 신경도 안 쓴다든가, 비논리적이잖아요” 영화 속 마크의 대사다. 그리고 실제로 마크 애쉬튼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자신이 처한 상황이 고단해 다른 문제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소수 인종이 겪는 일들은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자의 연대는 성사되는 순간 서로 도와주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2015년 5월 16일, 서울에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IDAHOT: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행사가 열렸다. 특별한 손님이 현장을 방문해 공연까지 선보이고 갔다. 바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노래패 ‘해피먼데이’였다. 쌍용차 노동자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당시 힘을 보태준 성소수자 단체들에 보내는 답가였던 셈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는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이해의 모습으로 바뀐다.

‘싫어할 권리’란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6월 8일,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 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합니다.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런 행사는 안 했으면 합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아 ‘불법집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올해 을지로 일대에서 열리게 되었다. 서울시가 광장 사용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개신교 단체가 ‘청소년 청년 회복콘서트’ 개최를 위한 장소 사용신고를 했고, 관련 조례에 따르면 청소년과 어린이 대상 행사가 우선순위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중복 신고된 행사의 경우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서울시는 절차를 건너뛰고 개신교 단체의 편을 들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장소 사용 신고를 한 날짜는 4월 3일, 개신교 단체는 4월 6일이었다.

인천시는 인천여성영화제에 ‘동성애 영화는 빼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논란을 피하고 싶다면 ‘탈동성애’ 영화도 같은 횟수로 상영하라고 덧붙였다. 인천여성영화제 측은 혐오 표현과 차별 행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인천시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거부하기로 했다.

85년 런던 프라이드 당시, LGSM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전국광부노조연합에서 온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영화 스틸이미지
85년 런던 프라이드 당시, LGSM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전국광부노조연합에서 온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영화 스틸이미지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표현이 그 자체로 차별적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배제하는 사회는 더 이상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혐오 표현을 그만두기 위한 첫걸음은 간단하다. 상대에 대해 알아보는 것,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공감하면 혐오는 이해로 바뀐다. 나아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연대가 가능해진다. 아직 무지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에게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말한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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