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민나리 서울신문 기자

2021년, 군 복무 중 성 확정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 조치됐던 변희수 육군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극작가 이은용, 음악 교사이자 인권 활동가 김기홍, 그리고 변희수 하사까지 한 해에 3명의 트랜스젠더가 세상을 떠났다. 2001년 연예인 하리수의 등장으로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졌지만, 한국은 여전히 트렌스젠더가 살아가기 어려운 나라다.

변 하사의 사망 이후, 여러 언론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그해 2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진행한 혐오 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기존의 단발 보도에서 나아가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심층적으로 다뤄보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 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이하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이다. 지난 8월 30일, <단비뉴스>는 그 취재를 맡은 기자 가운데 한 명인 민나리 서울신문 기자(32)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민나리 기자가 8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주 기자
민나리 기자가 8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주 기자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는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설문조사하고 이들 중 8명을 4개월에 걸쳐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물은 2021년 12월 13일부터 3회에 걸쳐 보도됐으며 인터렉티브로도 제작됐다. 이 기사는 학습권 등 기본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시상한 ‘제24회 양성평등 미디어상’ 보도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 언론인위원회가 주관하는 ‘제24회 국제 앰네스티 언론상 본상’도 수상했다.

2021년 12월 13일 서울신문 1면에 실린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사이다. 출처 서울신문
2021년 12월 13일 서울신문 1면에 실린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사이다. 출처 서울신문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는 기자

민 기자는 사회학과를 나왔다. 전공 덕분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창 시절 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의 문제점을 보도해 사회가 조금씩 바뀌는 데 기여한다면 참 보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다.

이제 7년 차 기자가 된 그는 서울신문 입사 이후 정책뉴스부, 국제부, 사회부, 기획취재팀을 거쳐 현재 경제부에 있다. 그가 사회부에 있던 시절, 후배 중 한 명이 트랜스젠더 전반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기자들이 모였다. 2021년 4월, 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한 기획취재 지원사업공모에 트랜스젠더 아이템을 제출하여 선정됐다. 처음에는 담당 기자들이 사회부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이후 뉴스룸 차원의 배려와 결정으로 이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부 내에 '기획취재팀'이 꾸려졌다.

기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취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방향을 잡는 데 사회부 부장의 도움이 컸다. '트랜스젠더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큰 그림을 '청소년 트랜스젠더'로 좁히게 된 것도 부장의 의견이었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트렌스젠더라고 인식하는 시기는 대부분 미성년자일 때이다. 하지만 세상은 청소년 트렌스젠더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해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청소년 트렌스젠더로 좁히게 된 이유였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렌스젠더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응답자는 68.8%에 달했다. 서울신문 인터랙티브 페이지 갈무리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렌스젠더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응답자는 68.8%에 달했다. 서울신문 인터랙티브 페이지 갈무리

취재원의 마음의 벽을 두드리다

기획취재팀은 트렌스젠더 청소년들을 만나기 전에 인권 단체, 의료진, 트렌스젠더 주변인, 성소수자 부모님 등을 만나 전문 용어나 의학 정보를 비롯한 사전 취재를 진행했다.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성소수자 부모 모임,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해방전선 등의 단체를 여러 차례 찾아가 면담도 진행했다. 주변과 배경을 취재하는 데만 석 달이 걸렸다.

정작 이 주제의 당사자인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2021년 당시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어 각종 모임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있었다. 기자들이 당사자를 만날 방법도 제한돼 있었다. 취재팀은 관련 단체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에 기사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올리면서 인터뷰 대상자를 구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어려움은 단 한 명의 취재원을 진심으로 만난 뒤부터 풀렸다. 어렵게 만난 어느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와 단톡방에 ‘인터뷰 후기’를 올렸다. ‘이 기자들은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아, 방향성이 괜찮은 것 같아, 열심히 하는 것 같아’라는 내용이었다. 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그렇게 8명의 당사자를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민나리 서울신문 기자가 인터렉티브 제작 과정에서 신경 썼던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최은주 기자
민나리 서울신문 기자가 인터렉티브 제작 과정에서 신경 썼던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최은주 기자

심층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에게 민 기자는 지금도 감사하다. 흔쾌히 만나준 그들 덕분에 청소년 트렌스젠더가 겪는 현실을 보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충실한

그들의 이야기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다루려고 민 기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인터랙티브를 만들 때 ‘올바른 표현’에 주의를 기울였다. 인터랙티브에서 ‘트랜스 여성’을 긴 머리를 가진 여성의 윤곽으로 그리지 않았다. 젠더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당시 기사는 330만 뷰를 돌파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기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민 기자는 주저했다. 바쁜 기자 생활을 쪼개 책까지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출판사의 담당자는 민 기자를 설득했다. “세상의 많은 청소년 트렌스젠더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의 부모와 교사도 이 책을 읽지 않겠어요?”

그 제안은 민 기자에게 작은 응원이기도 했다. 처음 기사를 쓸 때만 해도, 주변에선 회의적 반응이 없지 않았다. ‘청소년 트렌스젠더가 얼마나 되겠느냐’라거나 ‘이 주제가 지금 시대의 당면 문제인가’라거나 ‘종합일간지에서 굳이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느냐’고 묻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언론상을 받았고, 출판 제안까지 받았다. "'우리가 보도한 기사가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이야기였구나, 여러 사람에게 정말 공감을 받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민 기자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보도 이후의 마음을 그렇게 설명했다.

기사 보도 일 년 뒤, 추가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상세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 오월의봄 누리집 갈무리
기사 보도 일 년 뒤, 추가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상세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 오월의봄 누리집 갈무리

책을 낸 뒤에도 민 기자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다. 그는 기자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경제부에 있는 그는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보도하는 것도, 숨겨진 사실을 파헤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새롭게 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그의 욕심이자 꿈이다. 경제부로 옮긴 뒤, 청년 부채와 관련한 기획 기사를 보도한 것도 그런 꿈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꿈을 간직한 기자들이 더 많아지면, 곳곳의 소수자를 새롭게 바라보는 기사도 더 많이 보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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