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장은교 프리랜서 기자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제54회 한국기자상 기획 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경향신문> 젠더 기획 특별취재팀은 보도를 통해 여성 노인들의 생애사를 노동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기사는 2022년 1월 26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3월 4일까지 지면과 영상 등 다양한 채널로 보도되었다. 기사를 묶은 책의 크라우드 펀딩(인터넷에서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에 후원자 2158명이 참여하는 등 사회에 여러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의 기사에 등장하는 손정애 씨의 뒷모습. 이 사진은 나중에 책 표지로도 쓰였다. 휴머니스트 출판사 제공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의 기사에 등장하는 손정애(73) 씨의 뒷모습. 이 사진은 나중에 책 표지로도 쓰였다. 휴머니스트 출판사 제공

지난 3월 10일 <단비뉴스>는 기획의 최초 발제자이자 취재를 이끈 팀장이었던 장은교(45) 프리랜서 기자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12월 <경향신문>에서 보낸 17년간의 신문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이다. 회사 생활에 딱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점점 연차가 쌓여 취재 일선에서 물러나 데스크를 맡을 처지가 됐는데, 그보다는 현장과 호흡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어 퇴직을 결심했다고 했다. 사회부, 정치부, 토요판을 거쳐 젠더·소통 데스크까지 그가 기자로서 거쳐온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자세히 봐야 제대로 보이는 삶들

처음 입사했던 2005년부터 장 기자는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칠 차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는 주변의 흔한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을 깊게 탐구하길 즐겼다. 타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각기 다른 개인의 삶이 보여 흥미로웠다.

사회부 2년 차 무렵에 쓴 ‘서서 일하는 女노동자들 하루 8~11시간 ’고문’...머리끝까지 골병’ 보도도 그런 관찰에서 나왔다. 마트에 갔을 때 서서 계산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왜 계산원은 앉아 있지 못할까’란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서서 일하는지, 휴식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서서 일하느라 어떤 질병을 얻었는지를 취재했다.

장은교 기자는 2008년 1월, 대형마트에서 서서 일하는 계산원들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출처 경향신문 누리집 갈무리
장은교 기자는 2008년 1월, 대형마트에서 서서 일하는 계산원들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출처 경향신문 누리집 갈무리

길지 않은 기사였지만, 파장이 일었다. 기사가 나온 뒤 캠페인이 벌어졌다. 약 7개월 뒤에 노동부는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보호대책’을 발표했다. 백화점과 할인마트 등의 사업장에는 의자가 생겼다. 얼마 후에 장 기자가 찾은 마트에는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사회의 변화에 도움을 줬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달랐다. 의자가 생겨서 편하냐는 질문에 “그림의 떡이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마트 계산원은 서서 일해야 했다. 의자에 앉고 싶어도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이다. 사회는 한순간에 변하지 않았다.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기자가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까.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약자의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사회에 더 들려주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목소리는 질과 양으로 때려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뒤 어느 언론사 입사 면접에서 한 지원자가 이 보도를 계기로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 지원자의 어머니는 마트에서 서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납작한 세상을 입체적으로

기자는 늘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특이한 일만 좇게 된다. 한 명의 죽음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여러 명의 죽음은 뉴스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뉴스거리만 찾아 다니면서 기자의 시선은 둔감해진다. 복잡했던 사안은 납작해진다. 장 기자는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단순히 취재원의 말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씨줄과 날줄을 촘촘히 엮어 하나의 옷감을 만들듯이, 현대사와 한 개인사를 엮어 전체 그림을 보여주고자 했다. 단면이 아닌 입체를 보여주는 게 기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약 1년 동안 담당했던 <경향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에 그 고민을 녹였다. 트렌스젠더 변호사, 성매매 집창촌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약사, 조작 간첩 사건 피해자 등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 가운데서도 쌍용자동차 노동자였던 김득중 씨의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장 기자는 말했다.

2018년 8월, 쌍용자동차는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실제로는 서류상 복직에 불과했다. 해가 바뀌었어도 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하지 못했다. 노조 지부장이던 김득중 씨를 포함한 48명의 마지막 복직자는 보도일인 2019년 7월 6일에도 부서 배치를 받지 못했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기억하길 장 기자는 바랐다. 정확하게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한 문장이 나왔다. ‘쌍용차 사람들은 아직 문밖에 있다.’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장을 고르고 또 골랐던 것은 정확한 사실을 잘 보여주려는 사명감에서 비롯했다.

그 사명감은 기자 생활을 버티게 만든 동력이었다. 여러 현장을 다니며 분노를 느꼈다. 사람이 지긋지긋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기자의 일이 좋았다. 납작하게 대상화된 사실을 입체적으로 널리 알리는 게 기자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 일을 통해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흔해 보이는 것을 흔해 보이지 않게

새롭지 않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 해도 어떻게 다루고 전달할지에 따라 중요한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기획은 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 기사는 그저 할머니들이 고생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불린 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평생 일하며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노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던 때였다. 읽던 에세이에서 한 인물을 맞닥뜨렸다. 남대문 시장에서 국숫집을 하는 할머니였다. “내가 벌어서 내가 사니까 일 년에 한 번 비싼 KTX 타고 우리 엄마 제삿날 고향 갔다가 제사 지내고 온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기획 기사의 첫 주인공 손정애 씨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작은 국숫집을 운영하는 손정애 씨(왼쪽)의 존재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장 기자(오른쪽)는 직접 시장에 가서 수소문한 끝에 손씨를 만났다. 장 기자가 그를 만난 순간을 동료 기자가 찍었다. 장은교 기자 제공.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작은 국숫집을 운영하는 손정애 씨(왼쪽)의 존재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장 기자(오른쪽)는 직접 시장에 가서 수소문한 끝에 손씨를 만났다. 장 기자가 그를 만난 순간을 동료 기자가 찍었다. 장은교 기자 제공.

손 씨와 같은 여성 노인을 더 만나려고 기획취재팀을 꾸렸다. 취재기자, 데이터 저널리스트, PD, 교열기자까지 취재에 참여했다. 취재팀은 전국 곳곳에서 60대 또는 70대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평생을 들여다보았다. 각자 한 권의 소설책이 나올 만큼 굴곡진 삶을 살았다. 명함만 없었을 뿐, 그들의 삶이 곧 역사였다.

장 기자는 어릴 때부터 신문과 소설을 탐독했다. 글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9살 무렵부터 꿈꾸었던 기자가 된 것은 27살 때였다. 17년이 흐른 뒤 신문사를 나왔다. 그래도 그는 기자다. 신문사를 퇴직했다고 기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생 기자로 살고 싶어 신문사를 나왔다.

그는 살아있는 이야기에 여전히 매력을 느낀다. 지금은 에세이와 새로운 취재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자유로운 기자가 되어 더 멋지게 써보고 싶은 기사가 있다. 흔해 보이는 것을 흔해 보이지 않게 전달하는 기사다. 냉소하지 않고 따뜻하게 바라볼 때, 세상은 좀 더 다채로워진다고 장은교 기자는 믿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