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이호영 십시일방 대표

지난해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매년 2000명 이상의 ‘자립준비 청년’이 홀로서기를 한다. 자립준비 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24세 이후 자립하는 청년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1000만 원의 자립정착금과 최대 5년간 월 40만 원의 자립수당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는 자립의 출발선까지만 데려다주는 셈이다. 보호아동 출신이라는 편견에 맞서 진정한 자립을 이루는 건 온전히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십시일반’(十匙一飯)하여 돕는 기업이 있다. 십시일반은 밥 열 숟가락이 한 그릇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이 사자성어에서 이름을 따온 ‘십시일방’은 주거 취약계층에게 보증금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5월 설립된 공익법인이다. 십시일방은 2021년 말 BC카드의 기부금을 받아 ‘BC십시일방’ 사업을 시작했다. BC십시일방은 자립준비청년 10명에게 1년간 보증금, 월세, 그리고 생활비를 지원하고, 자립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십시일방 대표 이호영(32) 씨는 지난해 대한민국 인재상 대학생·일반인 부문 대표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달 5일과 17일 <단비뉴스>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이호영 대표를 만났다.

이호영 대표가 지난달 17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이호영 대표가 지난달 17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예나 기자

지속가능한 봉사를 위한 방법

어려운 이를 도우려는 이 대표의 노력은 일찍 시작됐다. 그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연탄 배달 봉사를 자처했다. 거주하던 송파구에서 봉사 장소인 은평구의 달동네까지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대학 첫 학기가 시작되자, 연탄 배달 봉사 일은 자꾸 뒤로 미뤄졌다. 그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한 그는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이 무엇인지 궁리했다. 그가 발견한 곳은 한양대학교의 학생식당이었다. 매일 수업을 듣는 학교에서 봉사한다면 시간적, 공간적 부담 없이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강 시간에 학생 식당에서 일하고, 그 임금을 식권으로 받아 다른 학생에게 기부하는 방식을 그는 생각해냈다. 이를 실천할 동아리도 만들었다. 그 이름은 ‘십시일밥’이었다. 2014년 9월 이 대표를 포함한 10명의 학생이 모여 십시일밥을 만들었다. 봉사자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 공강 시간에 맞춰 학생식당에서 배식, 식판 세척, 홀 정리 업무를 맡았다.

이 대표가 구상한 식권 기부 봉사는 한양대 캠퍼스를 넘어 건국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29개 대학으로 퍼져나갔다. 2017년에는 누적 봉사자가 5000여 명에 달했다. 식권을 지원받은 학생도 3000명 이상이었다. 교내 동아리로 시작한 십시일밥은 나중에 같은 이름의 비영리 민간단체로 탈바꿈하여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2014년 11월 이호영 대표(가운데)와 십시일밥 봉사자들이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생식당에서 일하던 중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이호영 대표 제공
2014년 11월 이호영 대표(가운데)와 십시일밥 봉사자들이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생식당에서 일하던 중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이호영 대표 제공

높은 월세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시스템

이 대표는 2017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며 십시일밥의 대표 자리를 떠났다. 설립 취지에 맞게 대학생들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20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새로운 봉사를 기획했다. 특히 주거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학생 시절 그는 독거노인을 위한 반찬 배달 봉사를 하면서 쪽방촌을 목격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대표는 지인 4명과 ‘십시일방’이라는 이름의 공익법인을 설립했다. 주거 취약계층에게 보증금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의 월세 부담을 줄이면, 그 삶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주거 취약계층을 도우려면, 사적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20년 5월, 법인을 설립했다. 보증금을 지원하려면 자본이 필요했다. 자금 제공자를 구하는 데까지 1년 6개월이 더 걸렸다. 2021년 말, 협업 제안서를 보낸 기업 가운데 BC카드가 3억 원을 기부했다. 비로소 십시일방의 계획이 궤도에 올랐다.

그는 청년 주거 문제에 먼저 집중했다. 특히 자립준비 청년의 주거환경은 더욱 취약하다고 봤다. 부모의 도움 없이 자립정착금만 들고 사회에 나와, 보증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자립준비 청년에게 주거비 부담을 덜어준다면, 그들이 학업과 자기 계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자립도 가능할 것이라고 이 대표는 생각했다.

BC십시일방의 방친 1기 모집 포스터. 십시일방 인스타그램 갈무리
BC십시일방의 방친 1기 모집 포스터. 십시일방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해 2월 십시일방은 첫 사업을 위해 ‘방친 1기’를 모집했다. ‘방친’은 ‘십시일방의 친구들’을 줄여 부르는 말이었다. 방친으로 선정된 이들에게 십시일방은 1년간 주거비를 지원하고, 자립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일련의 심사를 통해 지원 대상자를 골랐다. 소득 상황을 먼저 확인했고, 지원받는 1년 동안의 자기 계획서도 살폈다. 지원서 검토와 인터뷰를 통해 20명의 지원자 중 10명의 방친 1기를 선발했다.

유년기부터 또래가 함께 생활하는 아동양육시설은 나이에 따른 위계 서열이 공고한 경우가 많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십시일방의 모든 구성원은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닉네임을 사용했다. 십시일방 인스타그램 갈무리
유년기부터 또래가 함께 생활하는 아동양육시설은 나이에 따른 위계 서열이 공고한 경우가 많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십시일방의 모든 구성원은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닉네임을 사용했다. 십시일방 인스타그램 갈무리

거주할 집은 방친들이 직접 고른다. 다만 그 적정성을 십시일방이 검토한다. 이후 십시일방이 법인 명의로 그 집을 계약한다. 보증금도 십시일방이 낸다. 방친 1기들은 1년간 최대 1000만 원의 보증금을 제공받았다. 여기에 더해 월세를 위해 매달 50만 원을 십시일방이 지원한다.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100만 원가량의 바우처도 제공한다. 그 지원이 영원하진 않다. 1년이 지나면, 월세와 생활비 지원이 끝난다. 보증금은 다시 십시일방으로 돌아와, 다음 수혜자의 보증금으로 쓰이게 된다.

재원이 충분치 않아 금전적 지원은 이 정도에 머물지만, 그 기간 동안 실질적인 자립을 돕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열정적으로 제공한다. 십시일방은 금융, 요리, 마음 관리, 직업 체험 및 원데이 클래스 등의 프로그램을 한 달에 2번씩, 1년간 총 24번 진행했다. 생일을 같이 보내고 함께 봉사나 진로 고민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명절에는 방친은 물론 그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는 행사도 마련했다.

지난해 9월 이호영 대표를 포함한 십시일방 운영진과 방친 1기가 추석을 맞아 명절 음식을 만드는 요리 수업에 참여했다. 이호영 대표 제공
지난해 9월 이호영 대표를 포함한 십시일방 운영진과 방친 1기가 추석을 맞아 명절 음식을 만드는 요리 수업에 참여했다. 이호영 대표 제공

더 많은 취약계층의 주거 문제가 개선될 때까지

방친 1기는 지난 2월 십시일방에서 졸업했다. 방친 10명 중 4명은 금융사, 패션회사 등 원하는 직장에 취업했고, 2명은 대학에 진학했다. 이제 곧 ‘방친 2기’ 10명을 새로 모집한다. BC카드가 3억 원을 추가로 기부해 1년간 지원받을 수 있는 보증금이 1인당 2000만 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 대표의 목표는 십시일방의 시스템을 확장해 더 많은 주거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여러 재단과 기업에서 잠자고 있는 자금을 어려운 이들의 보증금 지원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자립준비 청년뿐만 아니라 쪽방촌 노인 등 더 많은 주거 취약계층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겐 십시일방 대표 외에 다른 직함이 더 있다. 컨설팅 회사인 ‘임팩트리서치랩’에서는 사회적 영향력 측정을 희망하는 기업이나 재단을 돕는 일을 한다. 모교인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 등 경영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일도 한다. 이 모든 일을 관통하는 것은 ‘사회적 도움’이다.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 걸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다”며 이 대표는 웃었다. 아직 젊은 그는 제 삶을 가꾸는 일과 소외된 이의 삶을 개선하는 일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어려운 이들을 지속적으로 돕는 것이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지난달 17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이호영 대표가 ‘이마이클’이라고 적힌 십시일방의 명찰을 보여주고 있다. 전예나 기자
지난달 17일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이호영 대표가 ‘이마이클’이라고 적힌 십시일방의 명찰을 보여주고 있다. 전예나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