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도영진 경남신문 기자

한국고용정보원이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8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113곳이 지방 소멸 위험지역이다. 기초지자체의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이러다 다 죽어”라는 대사를 적용해도 좋을 상황이다.

지역과 공생관계인 지역 언론도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도영진 <경남신문> 기자는 지역과 지역 언론을 모두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리하고 그 해답을 기사로 제시했다. 지난달 13일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경남신문 사옥에서 도영진(36) 기자를 만났다.

지난달 13일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경남신문 사옥에서 도영진 기자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다희 기자
지난달 13일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경남신문 사옥에서 도영진 기자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다희 기자

도 기자는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경남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토박이다. 그의 집에는 매일 신문이 배달되었다. 모든 신문을 꼬박꼬박 읽진 않았지만, 일상에 늘 있는 익숙한 존재였다. 고등학생 때는 <인물과 사상>, <한겨레21> 등 시사 잡지를 읽는데 재미를 붙였다. 자연스레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고, 대학에서도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뒤 언론사 입사 준비를 위해 잠시 서울로 올라갔다. 지역에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학원이 마땅치 않았고, 함께 공부할 친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서울에서 공부한 지 5개월 만에 <경남신문>에 입사하게 됐다. 그는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기자로 일하게 되어 기뻤다. 친숙한 언론에서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로 창간 77년을 맞는 <경남신문>은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사다. 경남 창원시에 본사가 있고, 경남의 다른 시·군에 주재 기자를 두고 있다. 서울에도 지사가 있다. 도 기자는 입사 전부터 지역에 밀착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입사 이후 9년 동안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에서 일했는데, 특히 기획취재부에서 일한 지난 1년이 그에겐 특별하다. 지역 밀착 기사의 전형을 직접 선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지 마을의 심부름꾼이 되다

도 기자는 지역의 인구소멸을 다루는 기사를 쓸 때마다 아쉬웠다. 통계 위주의 기사로는 지역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에게 기회가 왔다. 지난해 기획취재부에 발령받은 뒤, 창간 76주년을 기념하는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를 이끌게 됐다. 그 기사에 지역민의 이야기를 최대한 담자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단순히 그들의 말을 듣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일원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장소를 궁리했다.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의 입사 마을을 택했다. 경남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의령군에서도 입사 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라 불렸다. 마을을 통틀어 20가구만 사는 곳이었다. 편의점은 아예 없고, 마을과 외지를 잇는 버스는 하루에 딱 두 대만 오갔다.

그곳에서 심부름하며 마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다는 기획안을 보고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엇갈렸다. 흥미롭다는 이도 있었고, 엉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도 기자는 지역에 밀착해야 지역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지난해 경남신문에 실린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기사. 출처 경남신문
지난해 경남신문에 실린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기사. 출처 경남신문

프로젝트 이름은 ‘경남신문 심부름센터’라고 지었다. 마을 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한참 무더웠던 지난해 7월 이후 3개월 동안, 매주 이틀을 골라 입사 마을에 갔다. 집에서 마을까지 2시간 20분 동안 직접 차를 몰았다. 오전 8시 30분쯤 도착해 오후 5시까지 마을회관에 머물렀다.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경로당의 노래방 기기를 점검했다. 읍내로 나가는 주민을 태워주는 운전사가 되기도 했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깨를 베고 고추를 땄다. 온갖 허드렛일을 자처하여 겪는 동안, 지역의 열악한 교통망과 의료 시설, 일손 부족 등의 문제가 자연스레 드러났다. 석 달 동안 마을을 방문하여 겪은 일을 12차례에 걸친 연재 기사로 보도했다. ‘참 좋은 세월이다’, ‘또 보자, 건강하게 잘 지내레이’와 같은 기사 제목은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한 말이었다.

지역민과 가까워지며 알게 된 것

마을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다. 마을에 가지 않는 날에는 다른 기사를 써야 했다. 하지만 주민에게 직접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꼈다. 마을 어르신들이 아들처럼 여기고 반겨주는 환대도 큰 힘이 됐다. “그동안 기자 생활하면서 ‘기자로서의 효용성’을 가장 절감한 시간이었다”고 도 기자는 <단비뉴스>에 말했다.

마을의 심부름꾼이 되어 지역민의 삶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일상에서 주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불편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내는 게 지역 언론이 해야할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은 지역소멸 위기를 해결하는 길이기도 했다. “지역신문의 기자로 지내왔지만, 지역민의 어려움이 그 정도일 줄 몰랐다”고 도 기자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도영진 기자가 경남신문에 실린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연재 기사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다희 기자
도영진 기자가 경남신문에 실린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연재 기사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다희 기자

그동안 언론은 경제성과 효율성을 겸비한 ‘압축도시’를 지역소멸의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모든 소멸 위험지역을 살릴 수 없으니 버릴 곳은 버리자는 것이다. 이번 취재 이후, 도 기자는 그와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입사 마을의 94세 최고령 주민부터 13세의 최연소 주민을 만나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알게 됐다. 마을마다 지닌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 기자는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마을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소외된 지역의 주민을 포기하지 않는 “‘착한 적자’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원활한 교통망을 만들어 마을 간 이동을 자유롭고 편리하게 하는 것, 보건지소를 곳곳에 두어 멀리 가지 않아도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 등 작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여 ‘정주(定住)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고 도 기자는 설명했다.

지역 밀착형 저널리즘을 꿈꾸다

이번 기사를 통해 도 기자는 지역에 소홀했던 지역 언론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동안 대다수 지역신문은 지역보다 서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담았다. 지역 문제를 다루더라도 출입처가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기대어 기사를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재정난, 그로 인한 인력 부족이 이유였다. 지역 밀착형 기사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도 기자는 말했다. 그는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지역 언론의 책무인 동시에 생존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을 둔다. 지역에 밀착한 기사일수록 지역민에게 더 많이 읽힌다. 지역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다루고, 도시와 시골을 이어 지역의 목소리를 골고루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역성을 살리면서도 해당 지역에만 갇히지 말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도 기자의 생각을 응원이라도 하듯,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6일 한국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부문의 수상작으로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연재 기사를 선정했다. 그는 “지역 언론의 매력이 여전히 많다. 함께 지역에 밀착할 ‘마을 기록꾼’을 기다린다”고 <단비뉴스> 기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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