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잔인하고 선정적인 학대 묘사는 피해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KB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448만 명, 가구 수로 604만 가구에 달한다. 국민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해 1월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에서 촬영 중에 말을 학대해 논란이 일었다. 낙마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말을 강제로 바닥에 쓰러트린 것이다. 촬영하고 얼마 후 말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동물학대를 규탄하는 내용의 KBS 시청자 청원은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며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총 944건의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태종 이방원' 드라마의 동물학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태종 이방원' 드라마의 동물학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KBS는 사과문을 내고,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 ‘동물 출연’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 촬영 단계별 준수 사항과 동물 종별로 제작진이 유념해야 할 주의사항 등을 담았다. 기본 원칙으로 △모든 프로그램은 동물이 출연할 때 생명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동물보호법상 동물 학대 예방 및 동물 보호, △동물이 신체적으로 위험에 처하거나 정서적 스트레스를 받는 연기 장면은 최대한 컴퓨터그래픽(CG) 작업으로 구현하고 실제 동물 연기 장면 최소화, △살아있는 동물에 대해 인위적으로 상해를 입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산 채로 먹는 장면 연출 금지 등을 명시했다.

KBS는 ‘동물 출연’ 조항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동물 이동 시 안전 조치, 가축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 등 조항에 빠진 부분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국내 방송사 전반에 동물 복지와 안전에 대한 인식이 퍼졌다.

한 달 동안 25개 매체가 ‘경고’ 받아

신문에서 동물을 보도하는 방식은 문제가 없을까. 지난해 4월 한 달 동안 25개 매체가 동물학대 내용을 선정적으로 보도해 제재를 받았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해 4월 8일을 전후해 차에 매달려 끌려다니는 강아지 기사를 다루면서 관련 영상을 보도한 이데일리, 조선닷컴, 동아닷컴, 뉴스1에 대해 ‘경고’를 내렸다. ‘경고’를 받은 4개 매체는 목격자가 촬영한 영상을 기사에 그대로 실었다. 영상에는 차량 뒤편에 묶인 채 끌려가는 강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 학대장면 영상을 캡처해 사진으로 게재한 곳도 있었다. 뉴시스, 중앙일보, 매경닷컴, 부산일보 등 4개 매체로 ‘주의’를 받았다. 해당 매체들은 학대장면과 핏자국이 담긴 영상을 캡처해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조선닷컴 기사에 실린 사진을 학대장면이 노출되지 않도록 재가공한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사 갈무리
조선닷컴 기사에 실린 사진을 학대장면이 노출되지 않도록 재가공한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사 갈무리

지난해 4월 13일을 전후로 동물학대 사진을 쓴 17개 매체도 ‘주의’를 받았다. 부산일보, 뉴스1, 뉴시스,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 제주 유채꽃밭에서 입과 발이 묶인 채로 발견된 강아지 사진을 기사에 보도한 것이다. 이들 매체도 동물 학대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썼다.

국민일보 기사에 실린 사진을 학대장면이 노출되지 않도록 재가공한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사 갈무리
국민일보 기사에 실린 사진을 학대장면이 노출되지 않도록 재가공한 것이다. 미디어오늘 기사 갈무리

경고와 주의를 주는 근거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이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는 폭력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3조에서는 폭력 등을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상세하게 보도해 청소년과 어린이가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당시 제재를 받은 언론사들은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보도해 이런 원칙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받았다.

동물학대 보도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

언론이 동물학대 사건을 보도하는 본래 목적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사회적인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학대 현장과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물보호법도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는 행위 등을 촬영한 사진 또는 영상물을 전시·전달·상영하거나 인터넷에 게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동물 보호 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보도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보도 행태는 당장 조회 수를 높이는 데만 몰두해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폭력적인 장면을 부각해 사람들에게 충격과 혐오감을 주기 때문이다.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보도가 자칫 관심을 끊게 만들 수 있다. 학대나 유기 장면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동물학대에 둔감해질 우려도 있다. 모방범죄가 발생할 위험성도 유의해야 한다. 동물을 학대한 방식이나 장면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이를 흉내 낸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

잔인하고 선정적인 묘사는 피해야

동물권행동 카라는 2020년 국내 최초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지난해에는 내부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때 고려해야 할 5가지 규칙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잔인하고 선정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에 주의한다’는 것이다. ‘폭력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상황과 행위에 대해 표현할 때 사실 그대로를 과장 없이 객관적으로 표현해 전달하되, 가능하다면 지나치게 상세히 표현하는 것은 생략한다’는 것이다. 또 잔인한 이미지를 사용할 경우 SNS 커버 이미지에 주의 표시를 하고, 필요하면 흐리게 만들거나 흑백 처리를 하도록 권했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2022년 발간한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에 5개의 규칙이 담겨 있다. 출처 동물권행동 카라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2022년 발간한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에 5개의 규칙이 담겨 있다. 출처 동물권행동 카라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

동물학대 보도를 할 때 학대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꼭 드러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글로도 충분히 심각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지를 사용할 경우 얼마나 상세하게 드러낼 것인지, 모자이크나 흑백 처리를 할 수는 없는지 고려해야 한다. 일반 대중의 경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동물학대 영상이나 사진을 마주할 수 있으며 그중에는 상세하고 잔인한 장면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잔혹한 장면이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먼저 표시하거나 학대장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글로 설명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동물학대 보도는 동물과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대중의 동물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언론도 동물권 의식을 키우고, 섬세하고 주의 깊은 보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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