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2년 한국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 상-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페미사이드’란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모든 살해를 뜻한다. 여성을 뜻하는 라틴어‘femina’와 살인을 뜻하는 ‘homocide’의 합성어로 1976년 여성주의 작가 다이애나 러셀이 처음 사용했다. 중세의 마녀사냥은 물론 오늘날의 가정 폭력, 젠더 폭력, 스토킹 범죄, 데이트 폭력 등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여성을 향해 일어난 구조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이 페미사이드이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당한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페미사이드가 수면 위로 올랐지만, 페미사이드에 관한 국내의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정확한 통계나 자료가 부족하고, 관련 정책과 예산 마련도 쉽지 않다.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은 2022 한국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상을 받았다.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은 2022 한국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상을 받았다.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2021년 12월부터 보도된 <한겨레21>의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은 흩어져있던 여성 살해 범죄를 종합적으로 수집하여 분석한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취재팀은 판결문과 언론 보도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우선, ‘여성 살해’ 등의 키워드를 활용해 판결문을 수집했다. 이 가운데 페미사이드로 볼 수 있는 427건의 판결문을 추려냈다. 취재팀은 3500여 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전부 읽은 뒤, 50여 개 항목(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살해 장소, 사건 발생 지역, 교제 기간, 범행 수법, 살해 동기, 피고인의 평균 형량 등)을 일일이 분석했다. 또한, ‘연인, 여성, 살해, 극단적 선택’ 등의 키워드를 활용해, 남성이 여성을 살해했거나 남성의 위협 때문에 여성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보도한 2016년 이후의 언론 보도 73건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각 사건의 유형을 분석했다.

한겨레21 제1393호 표지에 실린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한겨레21 갈무리
한겨레21 제1393호 표지에 실린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한겨레21 갈무리

기자들은 그 취재 결과를 <한겨레21> 제1393호(2021년 12월 27일 발행)와 제1394호(2022년 1월 3일 발행)에 담았다. 또한, 특별 웹페이지를 만들어 방대한 사실을 인터랙티브 뉴스로 구현했다. 그 성취를 인정받아 제5회 한국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에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 상’을 받았다.

당신은 살해당했습니다

특별 웹페이지는 ‘생존’ ‘기억’ ‘통념’ ‘연대’라고 제목을 붙인 4개 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을 살펴보면,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상’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게임, 애니메이션, 그래프, 스토리 등의 요소를 활용했다.

독자가 체험할 수 있는 게임 형식으로 만들어진 ‘생존’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독자가 체험할 수 있는 게임 형식으로 만들어진 ‘생존’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이 가운데 ‘생존’ 편은 피해자의 처지와 상황을 독자가 체험할 수 있도록 게임 형식으로 만들었다. 여러 질문을 차례로 선택하여 대답하면, 그 결과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남성의 폭력 앞에서 독자는 대응 방법을 선택한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식이다. 선택에 따른 결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독자가 어떤 선택을 하건 대부분 ‘당신은 살해당했습니다’라는 문구로 끝난다. 실제 페미사이드 피해자들이 그랬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저널리즘을 만나다

‘기억’ 편에서는 판결문을 바탕으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10대부터 80대, 청소년부터 성매매 여성 등 피해자의 유형별로 구분하여 사건을 소개했다. 특히 그동안 젠더 폭력 이슈에서 배제됐던 성매매 여성이나 노인 여성 등이 살해당한 사건에 주목한 점이 인상적이다.

페미사이드 사건 판결문을 재구성하여 애니메이션화한 ‘기억’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페미사이드 사건 판결문을 재구성하여 애니메이션화한 ‘기억’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외려 궁지로 몰아넣는 한국 형사 사법 체계의 허점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오창 여중생 동반자살 사건을 재구성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새 아빠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를 증명하라고 압박한 경찰과 검찰, 그리고 가해자의 구속 영장을 기각한 법원이 미성년자를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알 수 있다.

젠더폭력 관련 6가지 주장을 팩트체크하는 ‘통념’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젠더폭력 관련 6가지 주장을 팩트체크하는 ‘통념’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일종의 팩트체킹 기사인 ‘통념’ 편에서는 젠더폭력과 관련한 잘못된 주장을 각종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 반박했다. 국내외 연구와 통계, 논문, 정부 보고서를 근거자료로 사용하여, 대부분의 통념이 오해와 낭설로 얼룩져있음을 밝혔다.

독자 참여로 완성된 보도

특히 ‘연대’ 편은 이 보도의 특별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취재팀은 이 기사를 본격 연재하기 직전 특별 웹페이지를 먼저 공개했다. 독자들에게 ‘살아남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 만에 160여 건의 사연이 모였다. 독자들은 이별을 말했다는 이유로 폭력과 스토킹 피해를 입은 사연, 아버지와 친인척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 등을 털어놓았다.

독자들의 사연 약 160건이 모인 ‘연대’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독자들의 사연 약 160건이 모인 ‘연대’ 편. ‘페미사이드 500건의 기록’ 인터랙티브 누리집 갈무리

한국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홈페이지를 보면, 취재팀의 수상 소감이 나와 있다. 이 보도가 적지 않은 사회적 변화를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학 연구자, 공무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기자들이 해냈다’며 고마움을 전해왔다. (중략) 경찰, 학계 관계자 등으로부터 (취재팀이) 분석한 자료에 대해 많은 문의를 받았다. (중략) 인하대 성폭력 살인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등 여성 살해 사건이 있을 때마다 페미사이드 기획보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시 공유되고 조명받고 있다.”

이 보도는 지난 12월, 여성가족부가 시상하는 ‘양성평등 미디어상’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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