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3년 2월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수상작 – 시사IN ‘2001 아카시 유족이 2022 이태원 유족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거나 이를 제시하는 보도다. 미국 솔루션스 저널리즘 네트워크(Solutions Journalism Network, SJN)가 제시한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 가운데는 ‘복제 가능성’이 있다. 다른 이들이 따라 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비슷한 문제를 이미 겪은 이들의 문제 해결 과정을 소개하는 것도 훌륭한 솔루션 저널리즘이 될 수 있다. <시사인>이 그 전형을 보여줬다.

시사인 801·802호 표지. 신선영 기자가 지난 1월 3일 아카시 사고 위령비와 소녀상을 촬영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민들이 소녀상의 옷을 바꿔 준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빨간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출처 시사인

지난해 10월 2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났다.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을 찾은 인파 가운데 300명 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전혜원 <시사인> 기자는 이태원 참사를 보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던졌던 질문을 떠올렸다. 공동체가 참사를 성실히 애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태원 참사 유족이 요구하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제대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 무렵, 일본 <고베신문> 등은 2001년 일본 효고현의 아카시 시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와 이태원 참사를 연결 지었다. 아카시 사고는 역과 해안을 잇는 육교에서 났다. 육교를 올라가 열차를 타려는 사람과 불꽃축제를 보러 해변으로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6미터 폭의 다리에 몰린 사람들이 폭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병목 구조의 계단에 뒤엉켜 넘어지면서, 11명이 압사했다. 이태원 참사와 사고 경위가 비슷해 국내 언론에서도 분석 보도가 쏟아졌다.

비슷한 점은 또 있었다. 경찰 인력 대부분이 축제 인파의 질서를 정리하는 대신 폭주족 단속을 위해 배치돼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밀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유족들은 ‘아이들을 왜 그런 곳에 데리고 갔느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사고 경위는 물론 사고 직후의 양상까지, 아카시 사고와 이태원 참사는 유사한 점이 많았다.

전 기자는 <아카시 육교 사고 재발 방지를 바라며 – 숨겨진 진상 포기하지 않은 유족들과 변호단의 싸움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일본어 책을 아마존에서 구입했다. 아카시 유족들이 지난 여름 출간한 책이었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경험을 살려 400쪽 이상을 직접 번역해 읽었다. 번역본을 핸드폰에 넣어놓고 계속 들여다봤다.

아카시는 이태원과 달랐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와 아카시 사고는 발생 이후 대처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일본은 아카시 사고를 계기로 체계적인 혼잡경비 체제를 마련했다. 이제 일본에서 아카시 사고는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로 이어지는 참사 해결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전 기자는 같은 회사 신선영 기자와 함께 아카시 시를 찾아갔다. 유족, 유족을 지원한 변호사, 사고 당시 소방관과 시청 직원, 유족들의 책 발간을 도운 <고베 신문> 기자들을 직접 만났다.

그 취재 내용을 모아 지난 1월 말, <시사인> 801·802 통합호에 ‘2001 아카시 유족이 2022 이태원 유족에게’(이하 ‘유족이 유족에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일본 아카시 시의 육교 압사 사고를 직접 현지에서 취재한 세 편의 글 기사로 13페이지 분량의 특집 보도였다.

세 편은 각각 유족, 시와 소방 등 공공 부문 책임자, 재판에서 유족을 지원한 변호인을 중심에 두고 사건과 그 이후를 짚었다. 첫 편은 유족의 애도 과정에 집중한다. 두 번째 편은 재발 방지를 위해 변화한 아카시 시의 시스템을 다룬다. 사고 당시 근무했던 소방국과 시청 직원이 사고 이후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했는지를 직접 설명했다. 마지막 편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한 법적 과정 이야기다. 유족들이 15년에 걸친 재판을 겪는 동안 법적 지원을 한 변호단 단장이 판결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사고조사위원회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취재진은 아카시 시가 변화를 만들어 온 과정과 방법을 주로 취재했다. 한국 사회가 복제할 수 있을 만큼 꼼꼼하게 아카시 사고 이후를 기록한 것이다. 그렇게 쓴 기사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시사인> 유튜브 채널의 대담 프로그램 ‘금요시사회’에서 기사에 싣지 못한 사진과 취재 내용도 공개했다. 기사 전문은 일본 시민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일본어로 번역해 온라인 기사로 내보냈다.

이 보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선정한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시민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보도로, “진정한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좁은 곳에 몰린 군중이 균형을 잃고 한꺼번에 쓰러지는 ‘군중 눈사태’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아카시 육교 사고는 이태원 참사와 비슷했다. 출처 시사인
좁은 곳에 몰린 군중이 균형을 잃고 한꺼번에 쓰러지는 ‘군중 눈사태’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아카시 육교 사고는 이태원 참사와 비슷했다. 출처 시사인

아카시가 참사를 애도한 방법

<시사인> 기자들이 직접 가서 만난 유족들은 사고 당시의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런 사고가 났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유족 아리마 마사하루 씨는 “발이 떠 있는데도 전혀 넘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사고 현장을 설명했다. 마사하루 씨는 전문 용어도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압력이 가해지는 ‘아치 상태’에서 ‘군중 눈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유족들이 사고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카시 시청의 사고 이후 대처에 있었다. 시는 사고 12일 만에 관련 분야 전문가를 모아 조사위를 구성했다. 사고 책임 주체 중 하나인 경찰과 별개로 사고를 조사할 수 있는 기구였다. 규정상 압사 사고가 났다고 사고조사위원회를 꾸릴 의무는 없었지만 시 당국은 그 위원회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활동한 조사위의 보고서는 142페이지에 달했다. 조사 보고서를 더 상세히 안내하는 설명회도 열었다. 설명회에서 조사위원들은 유족이 납득할 때까지, 유족의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분명한 이해가 있으니 유족들은 대책을 요구할 수 있었다. 사고 이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시와 경찰, 소방이 모두 변했다. 비슷한 사고가 다시는 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고의 주된 책임자로 지목된 경찰뿐만이 아니었다. 전 기자는 시와 소방국 소속 관계자를 만나 무엇이 달라졌는지 세세하게 짚었다.

시는 사고 이듬해인 2002년 시청 산하 종합안전대책실을 마련했다. 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경비 계획을 반드시 사전에 검토하는 기구다. 행사가 열리기 전 주변 횡단보도의 신호 길이와 폭에 따라 수용 인원을 계산해 제시하고, 수용 인원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 다른 경로로 안내할 수 있도록 확인한다. 주최가 시이거나 관내 단체일 때는 물론, 시가 빌려준 장소에서 열리는 일반 민간 행사도 시 당국이 관리하도록 해 경비 책임을 넓혔다. 현(縣) 단위의 경찰 본부도 대응 방식을 명시한 ‘혼잡 경비 매뉴얼’을 만들었다.

사고에 큰 책임이 없었던 소방국도 책임을 느끼고 변화했다. 일본에서 경비 업무는 주로 경찰이 맡지만, 소방은 경비와 관련된 ‘대규모 재해’라는 상황 분류를 추가했다. 압사 사고 같은 큰 문제가 생겼을 때의 매뉴얼이다.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즉시 모든 구급차와 구급대원이 출동하도록 정하고 매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카시 시에선 2001년 이후 압사 사고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해 다음에는 재발 방지가, 재발 방지 다음에는 애도가 가능해졌다. 기사는 유족들의 담담한 말과 조사 보고서, 판결문, 재판 연표를 이용해 사회적인 애도에 이르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유족들이 명확히 이해할 때까지 진상을 규명했다. 다시는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고의 직접 책임이 없는 기관까지 나서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

“아, 사고 있었던 그 아카시 시?” 그래도 기억하려는 이유

이제는 작은 소녀상이 아카시 시의 애도를 대표한다. 신 기자는 801·802호의 표지 사진으로 아카시 사고 현장이었던 육교에 있는 ‘마음의 상’을 촬영했다. 석상 양 옆에는 유족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 한하여 희생자의 이름을 새겼다.

전 기자는 <시사인> 유튜브 채널 프로그램 ‘금요시사회’에 출연해 소녀상 앞에 멈춰 서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금요시사회’는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놓는 대담 형식의 1시간짜리 라이브 방송이다. 금요시사회 진행을 맡은 장일호 기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가운데에도 현장에 위령비를 세웠으면 하는 분이 계시다”며 그 의미를 물었다. 전 기자는 “여기에 이런 사고가 있었다는 걸 전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 기자는 취재 당시 소녀상 앞에 멈춰 서서 기도를 하거나 희생자들의 이름을 찬찬히 읽어 보는 사람들을 실제로 봤다. 희생자와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도 있었다.

육교를 지나던 아이들이 아카시 사고 위령비와 소녀상을 보고 있다. 시사인 유튜브 갈무리
육교를 지나던 아이들이 아카시 사고 위령비와 소녀상을 보고 있다. 시사인 유튜브 갈무리

장 기자가 한국에서는 위령비 세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 질문하자 전 기자는 “(아카시 시에서도) 안 알리고 싶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 기자가 만난 아카시 시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서 출신지를 소개했다가 ‘그 사고가 있었던 곳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전체가 끊임없이 사고를 기억하고 기리고 있었다. 매년 그 사고를 짚어보려고 7월 21일을 ‘시민 안전의 날’로 정했다.

유족이 유족에게

이 기사에는 아카시 사고 유족의 말이 많이 담겨 있다. 유족 아리마 마사하루 씨는 이태원 참사 유족에게 “앞을 보고 힘내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유족 아리마 유키코 씨는 “(육교 사고 당시) 기자들이 가장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줬다”면서 <시사인> 기자에게 ‘(이태원 참사) 유족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카시 유족들은 21년 동안 분투한 과정을 담은 책이 나온 지 3개월 만에 옆 나라에서 생긴 비슷한 비극을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지난달 12일,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울고 있는 유가족. 아카시 사고 유족 시모무라 세이지 씨는 “(이태원 참사 유족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를 정부 주도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울고 있는 유가족. 아카시 사고 유족 시모무라 세이지 씨는 “(이태원 참사 유족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를 정부 주도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유족이 유족에게’는 이태원 참사 유족을 포함한 한국 사회 전체에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아카시 시 유족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재발을 막으며 함께 기억하는 것이 참사 이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자신과 연관시켜 직접 시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보도가 가장 좋은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미국의 ‘솔루션스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설명한다.

<시사인>의 ‘유족이 유족에게’에 담긴 일련의 과정과 방법은 이태원 참사 이후 5개월째로 접어드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독립된 수사 조직과 투명한 조사, 유족의 뜻을 반영한 추모, 그리고 횡단보도 신호 시간까지 계산하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이 그것이다.

*<시사인>의 ‘2001 아카시 유족이 2022 이태원 유족에게’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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