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385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한국일보 ‘성 착취 불패의 그늘’

서울 영등포역 인근 골목에는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다.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은 윤락가나 유흥가 일대를 대상으로 지정된다. 없애야 하는 구역이지만 그러지 못해 청소년의 통행을 24시간 금지하는 것이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 대대적인 단속과 처벌이 이뤄졌지만, 19년이 흐른 지금도 성매매 집결지가 몇 곳에 남아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전국 성매매 집결지 수는 2004년 35개, 2016년 24개, 2021년 15개, 2022년 14개로 감소하는 추세다. 그중 영등포 ‘수도골목’은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다. ‘수도골목’이란 이름은 영등포역 앞에 있던 수도여관에서 유래했다. 수도여관은 이제 사라졌지만, 좁은 골목은 성매매가 이뤄지는 무허가 건축물로 가득하다. 그곳에는 유리방 35곳, 휘파리 20곳, 쪽방 11곳으로 총 66개의 업소와 146명의 성매매 여성이 있다. 유리방은 유리문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호객하는 형태의 업소로 주로 20, 30대 여성들이 종사하고, 휘파리는 중장년 여성들이 종사한다. 이러한 집단적 성매매 장소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인근 성매매 집결지에 있는 유리방. 출처 한국일보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인근 성매매 집결지에 있는 유리방. 출처 한국일보

새로운 접근 방식이 만들어낸 보도

나주예 <한국일보> 기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수십 년간 불법 성매매 영업이 성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외면하거나 관심도 없었다. 나 기자는 성매매를 다뤄온 기존의 방식과 다른 보도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가 성매매를 알선하고 매수했는지가 아닌, 누가 성매매 장소를 제공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나 기자를 비롯한 4명의 취재팀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동안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를 찾았다. 그곳에 사는 성매매 여성들과 포주, 건물주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 내용을 모은 기사는 지난해 9월 말 <한국일보>에 ‘성착취, 불패의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세 편의 글 기사로 한 편당 6000자 분량의 심층 보도였다. 첫 편에서 성매매 집결지 내 건물과 토지 소유주 실태를 밝히고, 두 번째 편에서는 성매매 단속에 소극적인 경찰의 태도와 부실한 수사 과정을 지적했다. 마지막 편에서는 적극적 처벌 없는 집결지 폐쇄가 지주와 포주의 돈 잔치로 끝나는 구조를 분석했다.

‘성 착취 불패의 그늘’ 기획 보도를 담은 지난해 한국일보 9월 28일자 지면. 출처 한국일보
‘성 착취 불패의 그늘’ 기획 보도를 담은 지난해 한국일보 9월 28일자 지면. 출처 한국일보

분량이 많고 호흡이 긴 기사이지만,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토지 면적이나 평당 가격 등 상세한 수치를 제공해 몰입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내 국유지 현황을 그래픽으로 표시한 것도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이 기사는 제385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상을 받았다. 성매매 집결지 170여 필지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을 추적하는 품을 들여 국가와 성매매업자들의 부패 고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탁월한 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은 단서가 알려준 사실

나주예 기자에게 단서를 준 것은 수도골목에서 생활하는 한 성매매 여성이었다. 그는 나 기자와 대화하며 “이 근방에 나라 땅이 천지야”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성매매 업소가 세워진 토지 일부가 국가 소유라는 것이었다.

나 기자는 토지대장을 확인해봤다. 일부 필지가 정말 국유지였다. 그는 국가가 얼마나 많은 성매매 집결지의 지주인지 알고 싶었다. 그 과정은 험난했다. 영등포 일대에 지번이 부여된 건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 때였다. 광복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토지 측량을 하지 않은 탓에 필지 주인을 찾기 어려웠다. 지번을 무시한 채 무분별하게 세워진 건물과 구조물도 많았다. 나 기자는 170여개 필지(4,158.5㎡)의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현장을 직접 조사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170여개 필지(4,158.5㎡) 가운데 국가 지분이 포함된 토지가 약 860㎡(공동소유 지분 포함)로 20.6%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매매를 처벌하고 근절시켜야 할 정부의 땅에서 수십 년 동안 불법 성매매가 이뤄진 것이다. 땅 주인인 기획재정부는 일부 토지에서 대부료까지 챙기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현황. 출처 한국일보
서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현황. 출처 한국일보

계약 주체는 2013년 기재부로부터 국유재산 관리업무를 위탁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였다. 캠코는 8명과 대부계약을 했는데, 계약서에는 상가, 주택 등으로 기재되었지만 실상은 성매매 업소였다. 캠코는 성매매 영업을 하는 토지가 극히 일부 면적이며, 현장 실사에서 영업 활동을 추정할 간판 등이 없어 목적 외 사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일보>에서 취재를 시작하자 캠코는 나머지 필지들의 대부계약을 전부 해지했다.

지자체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지자체 땅도 성매매 장소로 활용된 것이다. 영등포구청은 이런 사실을 알고 해마다 변상금을 받아 챙기고 있었다. 지난해 징수한 변상금만 6331만 1000원으로, 사실상 지자체가 성매매를 묵인·방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자체에 변상금을 낸 유리방 건물주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성매매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미온적인 경찰의 행태를 지적하다

성매매처벌법 제2조 2항에는 ‘성매매에 제공되는 사실을 알면서 자금, 토지 또는 건물을 제공하는 행위는 성매매 알선에 해당한다’고 나와 있다. 성매매 업주뿐 아니라 장소를 제공하고 임대료를 챙기는 건물주도 처벌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매매 집결지에 토지나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처벌받는 사례는 드물었다.

2021년 3월 서울시 산하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조직 ‘다시함께상담센터’는 영등포역 일대 성매매 집결지 내 건물 및 토지 소유주 50명을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그중에서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것은 3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혐의없음’이나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불송치됐다.

나 기자는 경찰의 판단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봤다. 경찰은 ‘단속 전력이 없으면 성매매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경찰 등 수사기관이 성매매 집결지를 단속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또 성매매 부당이득금에 대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조치도 신청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상 경찰의 처벌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성매매 고리를 끊어내려면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2년 뒤면 사라질 예정이다. 영등포구가 2021년 6월 영등포역 일대를 재개발구역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르면 2025년에 44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 그렇다면 66개의 업소에서 일하는 146명의 여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난해 7월 기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규모. 출처 한국일보
지난해 7월 기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규모. 출처 한국일보

기사에서는 집결지 폐쇄가 성매매 여성들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소만 달라질 뿐 성매매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삶을 꿈꿀 안정적 거주지와 일자리가 필요하다.

반면, 1950년대부터 이른바 ‘기지촌’ 형성을 방조하고 오히려 이득을 취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해온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땅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포주는 돈을 벌었고, 그들로부터 임대료를 받아 온 건물주와 지주는 이제 재개발을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까지 얻게 될 상황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이제라도 그들을 강력히 처벌해야 하는 이유와 구조적인 성매매 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한 종사자들의 자활을 왜 도와야 하는지 자세히 보도했다. 이 보도가 보도로만 끝나지 않길 희망한다.

*<한국일보>의 ‘성 착취 불패의 그늘’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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