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38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 – 화물차를 쉬게 하라

지난 1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운송 시장은 화주(화물의 주인)와 운수사업자(운수사), 그리고 화물차주(화물차의 주인)로 구성된다. 화주가 운수사에 화물 위탁을 맡기면, 운수사가 개인 화물차주에게 운송을 맡기는 식이다. 예를 들어 철강 회사 같은 화주가 인천에서 포항까지 철강을 실어달라고 저가 입찰을 붙이면, 최저가에서 살짝 높은 정도의 운임을 제시한 운수사가 계약을 따낸다. 대형 운수사는 다시 소형 운수사에 하청을 주고, 소형 운수사는 다시 화물차주에게 물량을 준다. 하청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화물차주는 낮은 임금을 받는 구조다.

‘안전운임제’는 화주가 화물차주에게 운송을 위탁할 때 최소 운송료를 보장하도록 한 법이다. 이보다 적은 운임을 지급하면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문재인 정부 때 국회를 통과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됐다. 폐지를 앞둔 지난해 말, 화물연대는 이 법안으로 화물차 사고가 감소했다고 주장하며, 확대 시행을 외쳤다. 최소 임금이 보장되면서 대형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는 과로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안전운임제가 대형 사고를 감소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확대 시행할 경우 국내 주요 산업 물류비가 상승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거부의 이유였다. 결국,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해산시켰다.

<시사인>은 화물연대가 파업을 시작한 지난해 11월, ‘화물차를 쉬게 하라’는 인터랙티브 기획을 내놨다. 데이터를 통해 화물차 기사의 노동 현실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냈다. 화물차 약 4만 대의 디지털 운행기록장치(DTG)를 분석하고, 화물차 기사 1,433명을 설문 조사했다. 화물차 기사를 24시간 이상 동행 취재해 현장도 담았다. 그렇게 취재에만 들인 시간이 7개월. 이 기사는 제38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상을 받았다. 심사단은 “화주와 정부의 입장은 다루지 않았지만, 데이터를 통해 화물차 기사의 노동 현실을 생생하게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화물차 교통사고는 개인의 문제일까?

이 기획을 맡은 변진경, 전혜원 기자는 데이터를 통해 현장의 문제를 찾고, 현장에서 다시 데이터의 특이점을 찾아내는 기사를 예전에도 썼다. 2021년 어린이 교통사고를 다룬 ‘스쿨존 너머’ 기획 때도 그랬다. 13년에 걸친 교통사고분석시스템 데이터를 전수조사하고, 이후 현장을 찾아 다시 데이터를 해석했다. 데이터와 현장, 다시 데이터를 살피는 선순환 방식은 기사의 완성도를 높인다. 당시의 경험은 ‘화물차를 쉬게 하라’는 이번 기획에도 큰 도움이 됐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기사는 제38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상을 받았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화물차를 쉬게 하라’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기사는 제38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상을 받았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스쿨존 너머’를 취재하면서, <시사인> 기자들은 어린이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화물차에 의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다.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화물차 노동자를 보면서, 기자들은 의문을 품었다. ‘일하다가 가해자가 됐는데, 과연 운전자 개인의 문제일까?’

그런 의문 끝에 기자들이 주목한 데이터는 화물차 등 사업용 자동차의 운전 시간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DTG’(Digital TachoGraph)였다. 화물차의 주행 시간과 정차 시간이 담겨 있어 화물 노동자가 얼마나 불규칙적으로 일하고 있는지 드러낼 수 있는 데이터다. 취재진은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제출된 화물차 3만7892대의 한 달 치 DTG 데이터를 입수했다.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할 전문가가 필요했다. 교통정책을 연구하는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데이터 분석·시각화 전문가 김승범 브이더블유랩(VWL) 소장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한 교수는 화물차 사고를 연구 중이었고, 김승범 소장은 ‘스쿨존 너머’ 기획 때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다.

데이터로 만든 ‘타이어 시간표’

취재팀은 ‘교통안전’에 초점을 두고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화물차 사고가 기사들의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검증해야 했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것인지 살폈다. DTG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과로’ 혹은 ‘초과로’ 상태에서 운전하는 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화물차 운전자 A씨는 2022년 4월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0.9시간, 806.8km를 달렸다. 8시간 이상 정차한 경우는 8회였고, 그마저도 불규칙했다. 정차하자마자 잠에 든다고 가정해도 A씨가 적정 수면을 취한 날은 한 달 중 8일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하루 온종일 휴식을 취한 날도 없었다. 

취재팀은 이런 경우가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는 것도 파악했다. 화물차 기사 14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4.5%가 하루 운전 시간이 ‘12시간 이상’이라고 답했다. ‘주 1회 휴무’인 경우도 62.2%나 됐다. 7.5%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도 ‘부족하고 불규칙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67.7%였다.

DTG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달 운행기록을 ‘타이어 모양의 시간표’로 표현했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DTG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달 운행기록을 ‘타이어 모양의 시간표’로 표현했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취재팀은 DTG 데이터 분석 자료를 ‘타이어 모양의 시간표’로 표현하기로 했다. 김승범 브이더블유랩 소장은 화물차 기사의 하루를 휴식 시간과 주행 시간으로 크게 구분했다. 휴식 시간의 반지름을 크게, 주행 시간의 반지름을 짧게, 2시간 연속 주행의 경우 반지름을 더 짧게 표시했다. 휴식 시간은 검은색으로, 주행시간은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나타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사람의 시간표는 안정적인 타이어처럼, 잘 쉬지 못한 사람의 시간표는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타이어로 표현됐다. 타이어 다이어그램은 끊임없이 굴러가는 화물차 바퀴를 연상하게 해 읽는 독자의 몰입감을 높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사람의 시간표는 안정적인 타이어처럼, 잘 쉬지 못한 사람의 시간표는 위태한 혹은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타이어로 보인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충분히 휴식을 취한 사람의 시간표는 안정적인 타이어처럼, 잘 쉬지 못한 사람의 시간표는 위태한 혹은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타이어로 보인다.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데이터 너머 현장

취재진은 데이터 분석에 머물지 않았다. 이들의 24시간을 동행하며 데이터에 나타난 문제를 현장에서 포착했다. 그렇게 만난 이 가운데 하나가 인터랙티브 기사 첫 페이지에 나오는 김원석 씨(60)다. 김 씨가 상차를 위해 7시간씩 대기할 때, 커피와 빵으로 식사를 때울 때, 기자들은 그 곁에 함께 했다. 현장에서 당사자를 만나니, 타이어 다이어그램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다.

 기자들이 만난 화물차 기사 김원식 씨(60).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기자들이 만난 화물차 기사 김원식 씨(60). ‘화물차를 쉬게 하라’ 페이지 갈무리

과로할수록 이익을 보는 비정상적인 물류 시장과 낮은 운임료가 이들을 끊임없이 일하게 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운임료가 적으면 화물차 기사는 최대한 많이 운송할 수밖에 없다. 저임금 구조로 인해 장시간 고강도 노동이 불가피한 것이다. 화물차 기사들은 과로하면,  교통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지고, 그 피해는 전 국민을 향한다. 

운임료를 높여도 하루에 13시간씩 초장기간 노동을 한다면 정책 효과를 살리기 어렵다. 정부 차원에서 운전 시간 총량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다. 기사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스트레일리아나 유럽 등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들 나라에선 정부가 화물 운전자의 운전‧휴식 시간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체의 최선을 찾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안전운임제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15일 화물연대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안전운임제 개편안(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개편안은 화주와 운송사 간 운임에 최소 운임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 갈등 이슈에 관한 건강한 공론장을 제공하는 것은 언론의 핵심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인>의 ‘화물차를 쉬게 하라’ 기사는 안전 운임제를 둘러싼 논의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해결책도 제시했다. 이달의 기자상 수상 소감에서 <시사인> 기자들은 ‘언론의 역할은 언제나,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해관계 속에서 공동체의 최선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 <시사인>의 ‘화물차를 쉬게 하라’ 인터랙티브 기획 기사는 여기로 들어가면 된다.

* 데이터 시각화를 담당한 브이더블유랩(VWL)의 비하인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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