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레이싱 모델 10여 명 섭외’가 핵심 홍보 포인트

충청북도 제천시에서는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가 열린다. 제천시가 주최하고 제천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다. 볏짚아트, 전통농기구 체험, 우마차 체험 등과 함께 ‘농기계 모터쇼’도 열린다.

농기계를 모터쇼처럼 전시하는 건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라며 자랑하는 이 농기계 모터쇼 행사 포스터에는 농사용 트랙터 이미지와 함께 10명의 여성 레이싱 모델의 사진이 등장한다. ‘농기계가 주는 남성성을 살린 제천의 농기계 모터쇼’라고 이번 모터쇼를 규정하면서 한국 모델협회 레이싱모델분과와 협약을 맺어서 국내 최정상 레이싱모델 10여 명의 출연을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에 나온 농기계 모터쇼 관련 내용. ‘농기계가 주는 남성성을 살린 제천의 농기계 모터쇼’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고 한국모델협회와 협약을 통해 레이싱모델 10명의 출연을 확보했다고 알리고 있다.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에 나온 농기계 모터쇼 관련 내용. ‘농기계가 주는 남성성을 살린 제천의 농기계 모터쇼’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고 한국모델협회와 협약을 통해 레이싱모델 10명의 출연을 확보했다고 알리고 있다.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행사가 열릴 예정인 제천 의림지 주변에 걸린 농기계 모터쇼 홍보 펼침막도 농기계 대신 레이싱 모델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농기계 모터쇼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내용은 찾기 어렵다. 그나마 포스터에 나오는 ‘무인트랙터 체험’이라는 문구 정도가 실제로 농기계와 관련한 내용의 거의 전부다.

제천시 의림지 주변에 걸린 농기계 모터쇼 펼침막. 행사에 관한 기본 정보와 참가하는 레이싱 모델의 사진만 들어갔다. 펼침막에 나온 QR코드에 접속하면 제천문화재단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홍보 페이지로 이동한다. 강훈 기자
제천시 의림지 주변에 걸린 농기계 모터쇼 펼침막. 행사에 관한 기본 정보와 참가하는 레이싱 모델의 사진만 들어갔다. 펼침막에 나온 QR코드에 접속하면 제천문화재단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홍보 페이지로 이동한다. 강훈 기자

지난 6일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의림지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에도 레이싱 모델에 관한 내용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있다. 14일과 15일에 걸쳐서 여성 모델들이 시간대별로 어떻게 배치될 것인지와 함께 어떤 의상을 입을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레이싱(점프수트)’, ‘이브닝A’, ‘이브닝B’, ‘자유복’ 같은 모델의 의상 컨셉이 적혀있고, 실제로 그 컨셉을 설명하기 위한 의상까지 사진으로 제시되어 있다. 행사에 참여할 레이싱 모델 전원의 이력과 사진도 별도로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실행계획서에도 실제로 모터쇼에 전시될 농기계나 어떤 체험이 가능한지 등에 관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농기계 모터쇼 포스터와 일정 기획안. 좌측 포스터에는 농기계의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구와 여성 모델의 이름과 사진이 있다. 일정에는 모델이 배치되는 시간과 복장 컨셉이 적혀있고, 설명을 위한 이미지도 있다.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농기계 모터쇼 포스터와 일정 기획안. 좌측 포스터에는 농기계의 남성성을 강조하는 문구와 여성 모델의 이름과 사진이 있다. 일정에는 모델이 배치되는 시간과 복장 컨셉이 적혀있고, 설명을 위한 이미지도 있다.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계획안에는 레이싱 모델의 이름, 경력, 사진, 사회관계망 서비스 계정이 명시되어 있다. 농기계 체험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계획안에는 레이싱 모델의 이름, 경력, 사진, 사회관계망 서비스 계정이 명시되어 있다. 농기계 체험에 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제천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제1회 농경문화 예술제 실행계획서 일부

그런데 레이싱 모델들은 농기계 모터쇼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같은 농경문화 예술제의 세부 프로그램인 ‘의림지 쌀막걸리 페스티벌’에도 농기계 모터쇼에 참가하는 모델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돼 있다. 행사 둘째 날인 15일 저녁 7시부터 열리는 쌀막걸리 페스티벌은 ‘오프닝 댄스공연’으로 시작해 ‘나이트 클럽’, ‘발라드타임’, ‘댄스공연’과 같은 세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연을 보거나, 일반인들이 지역 막걸리를 마시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즐길 수 있는 행사다. 예술제 실행계획서에는 레이싱 모델 10명이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참여해 축제의 흥을 돋울 것이라고 나와 있다. 공연 프로그램 안내 다음 페이지에는 참여하는 모델 10인의 사진이 다시 한번 실렸다. 이번 예술제 전체에서 레이싱 모델 활용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천문화재단, “레이싱 모델을 통한 축제 마케팅 가능해”

농경문화 예술제는 문화체육관광부 ‘2020년도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 사업 공모에 제천시가 선정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제천시와 제천문화재단이 계획공모관광사업단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농기계 모터쇼 등 행사를 기획한 박준범 제천문화재단 계획공모관광사업단장은 11일 <단비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농경문화 체험을 위해 이러한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농기계 모터쇼에 관해 “남성성을 상징하는 농기계에 레이싱 모델이 조화를 이루면서 축제에 대한 입소문이 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기계와 남성성을 연결한 이유를 묻는 말에 “여성이 농기계를 운전하는 것이 이색적인 것처럼, 농기계를 생각하면 남성이 연상된다”고 설명했다. 모델을 보는 것과 함께 농기계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흥미와 지식을 함께 채울 수 있는 게 농기계 모터쇼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모델의 복장에 관해서 “‘레이싱 모델’하면 엄청 야하게 입는 복장을 많이 생각을 하는데, 이번 행사 첫날에는 그렇게 야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다만 “레이싱 모델도 팬서비스를 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복장을 완전히 제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첫날은 드레스와 점프수트를 입고 다음 날에는 자유 복장이나 점프수트를 활용한 복장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단장은 의림지 쌀막걸리 페스티벌에 레이싱 모델을 섭외한 것도 홍보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레이싱 모델이 팬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모델을 보기 위해서 페스티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성 농민도 있는데”…“여성 모델 바라보는 주최 측 시선 문제” 지적

이런 농기계 모터쇼를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먼저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델을 바라보는 주최 측의 시선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은 농기계 모터쇼의 기획이나 포스터에서 노골적인 성차별과 성적 대상화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농기계를 남성성으로 연결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여성 농민은 물론 축제에 참여하려는 일반 여성들까지 배제하는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황연주 사무국장은 모터쇼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봤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차량의 이미지에 맞게 모델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에 열린 부산모터쇼 모델. SBS
황연주 사무국장은 모터쇼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봤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차량의 이미지에 맞게 모델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에 열린 부산모터쇼 모델. SBS

지역 여성단체인 제천여성회 측도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남성 농민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 농민도 있는데 농기계를 전시하는 행사에서 여성의 성적인 모습만 부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행사가 농민들을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기획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제천여성회는 특히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되어 다양한 여성친화 정책을 추진해온 제천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제천시를 홍보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행사 취지는 좋지만, 이번 모터쇼에는 ‘여성친화도시 제천’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012년에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제천시는 지난해에는 여성친화도시 조성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여성회 관계자는 그런 제천시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어떻게 이런 내용들이 사전 검토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제천시가 여성친화도시로써 추진하는 목표 다섯 가지. 제천시는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도시 공간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여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을 꾀함’이라는 문구를 시청 누리집 ‘여성친화도시’ 페이지에서 명시하고 있다. 제천시청 누리집 갈무리
제천시가 여성친화도시로써 추진하는 목표 다섯 가지. 제천시는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도시 공간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여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을 꾀함’이라는 문구를 시청 누리집 ‘여성친화도시’ 페이지에서 명시하고 있다. 제천시청 누리집 갈무리

제천시청 “별다른 입장 없다” 침묵

이런 지적에 대해 박준범 단장은 “다른 모터쇼에 가도 레이싱 모델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면서 다른 모터쇼는 성차별이라고 지적하지 않으면서 농기계 모터쇼에만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박 단장은 “농기계 모터쇼를 하지 않으면 지금의 농경문화예술제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연주 여·세·연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이미 모터쇼에서 여성 모델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성차별적 요소는 많이 지적이 되어 왔다”며 “기존 모터쇼도 남성의 시선에서 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을 많이 없애고 차량의 특성에 맞는 모델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에서 레이싱걸로도 불렸던 ‘그리드걸’ 제도를 폐지한 것을 예로 들었다.

<단비뉴스>는 11일 제천시청 관광미식과에 농기계 모터쇼 등과 관련해 제기된 우려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별다른 입장이 없다”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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