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MBC 스트레이트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시발비용’이 필요하다. 시발비용은 비속어 ‘시발’과 ‘비용’을 합친 신조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뜻이다. 청년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충동적인 지출을 하는 것을 두고 시발비용이 발생했다고 표현한다. 취업 준비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서류부터 필기, 실무와 최종 면접까지 기나긴 단계를 거치며 다른 지원자와 경쟁한다. 회사의 ‘제한된 채용인원 탓에’,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결국 누군가는 탈락한다.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 든 취업 준비생에게 시발비용은 사치가 아니라 재도전을 위한 비용이다. 좌절하기 쉬운 취업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데 시발비용을 쓰면서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취준생이 시발비용을 지출할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취업 준비를 위한 학원비, 교통비만으로도 부담이다. 심지어 세 끼 식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취준생도 있다. 이들에게 시발비용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취업난까지 겹쳐 저소득층 청년에게는 이중의 고통이 되고 있다. 생계의 무게에 짓눌린 청년들이 외부와 단절되면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이 바로 청년 고독사다. 지난 4월 MBC ‘스트레이트’에서 방영한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 편은 청년 고독사 문제를 담았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매년 200명가량의 청년이 고독사로 죽었다.

청년 고독사는 최근 5년간 매년 200건가량 발생했다.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빈곤과 관계 단절의 악순환

“돈이 있어야 사람을 만나죠. 무조건 만나면 돈이 나가는데. 그래서 제가 연락을 끊고…”

MBC ‘스트레이트’ 팀이 만난 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이승훈(가명) 씨는 최근 고독사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남 일 같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 씨가 언급한 다큐멘터리 속 고독사 사망자들은 외부와 연락이 단절되면서 홀로 집에서 생활하다가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했다. 빈곤과 고립은 분리할 수 없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면서 생계비를 마련하는 취준생이다. 공공근로사업은 취업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에게 임시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생계 안정을 지원하는 정부 사업이다. 이 씨는 ‘기초수급자 탈출 부이로그’라는 이름의 콘텐츠로 일상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다. 영상 속 이 씨는 방치된 자전거 부품을 분리하거나 포크레인을 운전해 쓰레기를 분리하는 일을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살림살이는 무료 나눔을 받아 채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 사는 이 씨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이 씨가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기초수급자 탈출 브이로그.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이 씨가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기초수급자 탈출 브이로그.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한 지 4달째인 이 씨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 공공근로사업은 일반적으로 4~5개월 동안 진행된다. 이 씨는 ‘다 줄이고 식비밖에 줄일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상황이라 식비를 더 줄이기도 어렵다. 이 씨에게 대인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그런 이 씨에게 브이로그는 일상을 기록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세상과의 소통을 실현하는 의미도 있었다.

취업난 탓에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그는 한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탈락 이유를 묻는 메일에 회사에서 돌아온 답변은 ‘경력을 더 쌓고 오라’는 것. 기업들은 경력직을 선호하는 분위기지만, 이 씨는 ‘경력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며 답답함을 표했다. 이 씨와 같은 청년 기초생활수급자는 2013년 17만 2천 명에서 2023년 26만 명으로 10년 새 50% 가까이 늘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올해 1인 가구 기준으로 월 인정 소득액이 62만 3368원 이하인 가구에 해당한다.

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이 씨가 받은 회사 최종탈락 안내 메일.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청년 기초생활수급자 이 씨가 받은 회사 최종탈락 안내 메일.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불평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청년은 이 씨만이 아니다. 방송에서 사례로 다룬 대학 휴학생 김성빈 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격차를 실감했다. 김 씨가 친구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돈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친구들은 걱정 없이 대학 생활을 즐긴다. 반면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데다가 돌볼 가족도 있는 김 씨는 돈이 들어가는 모든 활동이 부담이다. 김 씨는 무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무료 식권으로 끼니를 챙긴다.

방송은 지난 3월 23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트 주최로 열린 ‘대학생 생활고 증언 기자회견’의 모습을 담았다. 이 자리에 모인 대학생들은 ‘하루에 두 끼를 먹다가 한 끼로 줄였다’, ‘컵라면 하나도 부담스러워져서 그냥 굶는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소득이 낮을수록 많은 일에서 기회가 제한된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박서림 씨는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일을 더 각박하게 느끼게 만든다”고 말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지난 3월 32일 대학생 생활고를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청년 격차의 배경에는 ‘저성장’이 있다.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1970~80년대에는 일자리가 넘쳤다. 노력만 하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자력으로는 내 집 마련을 꿈꾸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부가 대물림되면서 계급이 고착화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자산과 소득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고용은 불안정해 저소득층의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

2018~2022년 사이 무주택자와 다주택자의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고독사 청년 주머니에 5만 원만 있었다면

청년 고독사 문제는 현실이다. MBC ‘스트레이트’ 팀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유품정리업체 창고에 방문했다. 이곳에 있던 고독사 사망자의 주민등록증 14개 가운데 11개가 20, 30대 청년의 것이었다. 유품정리업체 대표는 과거에는 부모님 죽음 때문에 연락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동생이나 아들이 자살했다는 연락이 많이 늘었다고 증언했다.

유품정리업체에서 발견된 고독사 사망자의 주민등록증 14개 가운데 11개가 20, 30대의 것이었다.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빈곤’과 ‘관계 단절’의 악순환에 빠진 청년은 생존의 의지를 잃기도 쉽다. 김재열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대표는 방송에서 빈곤 청년들이 “심리적인 압박감, 사회적인 죄책감, 사회적인 고립감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존감 하락은 우울증 같은 현상을 동반하여,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방송은 청년 고독사 문제가 사회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방송에 출연한 권종호 부산 영도경찰서 경위는 고독사한 청년들 지갑에 ‘돈 천 원 하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권 경위는 “(고독사한 청년들) 주머니에 5만 원만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청년 문제에 관한 현 정부의 정책을 점검하면서 마무리된다. ‘천원의 아침밥’ 정책을 시행하고, 청년 간담회를 열어 청년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대책은 미비하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2년 동안 청년 고독사는 그대로

사실 미디어에서 청년 고독사 문제를 다룬 것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KBS ‘시사직격’에서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 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를 통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두 다큐가 고독사 중에서도 ‘청년 고독사’에 주목한 이유는 같았다. 청년 고독사는 자발적인 죽음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또 최근 들어 청년의 고립이 증가했고, 그 배경에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평등한 경제 지위가 있다는 분석도 비슷했다. 결론적으로 청년 고독사를 사회적 문제로 규정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응을 강구했다. 

그럼에도 MBC ‘스트레이트’에서 2년 만에 같은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2년 동안 청년 고독사 문제는 그대로인데, 정부 대책은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 영상에는 50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고, 대부분이 공감이나 위로를 표하고 있었다. 그만큼 청년 고독사는 사회적인 해결이 시급한 문제로 볼 수 있다. 

2년 전에 비해 나아진 점은 국가가 고독사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년 전인 2021년에는 국가 차원의 고독사 관련 통계 자료가 없었다. KBS ‘시사직격’ 팀은 전국 경찰 변사사건 조사기록을 일일이 분석해 고독사 통계를 직접 제시했다. 해당 회차가 방영된 후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는 페이스북에 방송을 언급하며 청년의 어려운 현실을 문제 삼았다. 광주청년네트워크는 ‘청년, 다시 봄 월례포럼’을 열어 시사직격 팀을 초청해 청년 고독사 문제를 나누기도 했다. 청년 고독사 문제를 향한 언론의 관심이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최근 5년간 고독사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국내 최초로 이뤄진 시도였다. 실태조사는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자료다.

지난 2021년 KBS ‘시사직격’ 팀은 전국 경찰 변사사건 조사기록을 통해 고독사 문제를 분석했다. KBS ‘시사직격’ 갈무리
지난 2021년 KBS ‘시사직격’ 팀은 전국 경찰 변사사건 조사기록을 통해 고독사 문제를 분석했다. KBS ‘시사직격’ 갈무리

방송이 공론화의 시발점 돼야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에서 생활고를 겪는 청년의 사례를 통해 정책 대상자가 놓인 상황을 보여준 점은 의미 있었다. 하지만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방송에서는 정치권이 앞다퉈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표심 잡기’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실제 청년이 이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정부에서는 다양한 청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방송에서 더 폭넓게 청년들의 의견과 요구를 담아내었다면 실제 수요를 반영하는 정부의 정책 수립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방송이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아쉽다. 만약 경제 불평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낸 사례가 있다면 이를 보여줘도 좋았을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현실 문제를 담아내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시청자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서 공감과 치유를 하고,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를 통해서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에게 공감과 치유가 특히 더 필요할 것이다.

이번 방송은 청년 고독사 문제를 대하는 정치권의 대응을 간단히 점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청년 고독사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책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언론 보도 역시 계속돼야 한다. 이번 프로그램이 청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한 공론화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4월 방영된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 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채널 갈무리
지난 4월 방영된 '2023 청년보고서 ‘희망금지’'. 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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