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 추적 60분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한국의 병원은 문턱이 낮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3>을 보면, 한국의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5.7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비중도 2011년 34.9%에서 2021년 29.1%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의료 장비와 병원의 병상수 역시 OECD 평균보다 많다. 이 정도면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은 의료 선진국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겉보기에 번듯한 의료 선진국 한국은 안으로는 곪아가고 있었다. 지난 3월,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사회는 지난 5년간 전국의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이 617곳 개업했으나 662곳이 폐업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요구해도 개선되지 않는 소아청소년과 인프라에 의사들이 ‘폐과 선언’까지 나선 것이다.

전국적인 소아청소년과 붕괴 현상을 KBS <추적 60분>이 주목했다. 지난달 18일,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를 통해 현장을 지키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과 이미 최악으로 치달은 지역의 소아청소년과 시스템을 조명했다. 과연 <추적 60분>이 발견한 소아청소년과 의료 현장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또 이들이 놓친 한국 의료 현장의 이면은 무엇일까?

소아흉부외과 김웅한 교수가 의료진과 함께 수술 중이다. 김 교수의 병원에 전임의는 3년째 들어오고 있지 않다. 부족한 의사 수로 인해 외래 진료는 자주 지연된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소아흉부외과 김웅한 교수가 의료진과 함께 수술 중이다. 김 교수의 병원에 전임의는 3년째 들어오고 있지 않다. 부족한 의사 수로 인해 외래 진료는 자주 지연된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없다

“전임의 지원이 끊어진 지 3년 됐어요.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에 선천성 심장병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지는 거죠.”

“지원자가 없고, 지원자가 없으니까 그걸 훈련하는 시스템도 많이 무너져 가고 있거든요.”

서울대 병원을 찾은 취재진에게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은 한결같이 소아청소년과 존폐에 대한 우려를 말했다. 사실상 환자들이 찾는 마지막 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조차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귀했다. 특히 전공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부족해지자 시스템은 과부하가 걸렸다. 외래진료와 수술을 한두 명의 의사가 모두 담당해야 했다. 부족한 의사 수로 인해 진료 지연은 일상이었다. 몸만 피곤하면 다행이었다. 한꺼번에 몰리는 중증 소아 환자를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은 온전히 의사 개인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뜻이 있고 헌신을 다짐했던 의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가 처한 현실은 의사들을 떠나게 했다. 숨이 찰 정도로 바쁜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에 하나둘씩 포기를 결심했다. 열악한 환경에, 최소한의 인원도 보장되지 않는 곳이지만, 환자들은 쏟아진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사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소아 환자의 부모들은 자녀의 손을 잡으며 기도한다. 남아 있는 의사들의 꿈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23년 25.5%로 지난 5년간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받은 2020년에는 더 큰 폭으로 지원율이 떨어졌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23년 25.5%로 지난 5년간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받은 2020년에는 더 큰 폭으로 지원율이 떨어졌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프로그램은 두 명의 젊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전공의를 인터뷰한다. 언뜻 열악한 환경의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한 이들의 결정이 시청자들에겐 고귀해 보인다. 쉽지 않은 ‘정의의 길’을 선택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저런 청년 의사들이 있다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순간, 인터뷰에 참여한 전공의는 말을 건넨다. “저도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 한마디에 다시 한번 붕괴 직전의 소아청소년과 시스템을 체감한다. 젊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미래에는 중도 포기의 가능성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시스템

부족한 의사 문제는 지역으로 갈수록 더 커진다. 당장 지역엔 중증 소아 환자를 수술하고 진료할 의사가 없다. 차로 4시간. 부산과 광양 등 지역에 살고 있는 환자와 부모들은 서울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 한 번의 치료를 위해 차 트렁크에 바리바리 짐을 실어야 한다. 며칠을 서울에서 보내며 병원을 오가야만 겨우 치료를 마칠 수 있다. 지역의 환자들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인구 소멸로 인한 여러 인프라 위험이 닥친 지역은 의료 분야에서마저 더 빠르고 치명적인 소멸을 겪고 있었다.

중증 소아 환자가 아닌 환자들은 지역의 소아전문병원을 찾는다. 다행히 소아전문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면 부모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늘의 별 따기이다. 부모들은 일명 ‘병원 오픈런’까지 하며 줄을 선다. 매일 아침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료 받기 위해 열리지 않은 병원 문 앞에서 진료를 기다린다. 물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꽉 막힌 진료 대기에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준중증과 경증을 치료하는 지역 소아전문병원마저 위험을 겪는 건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그 경향은 두드러진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고 있다.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그 경향은 두드러진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지역 내 1차 병원에 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은 환자가 없었다. 환자가 없자, 병원의 운영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직원들의 급여마저 줄 수 없게 되자, 버티고 버티던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은 하나둘 병원 문을 닫았다. 현재 환자들이 몰리는 병원들은 그 기간을 버틴 소수의 병원이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난 지금, 환자들이 찾을 수 있는 병원의 수는 현저히 부족해졌다. 떨어지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과 예상할 수 없었던 전염병, 그리고 한정된 지역 내 병원으로 인해 지역은 소아청소년과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

소아청소년과 붕괴와 식을 줄 모르는 ‘의대 열풍’

<추적 60분>이 만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도, 지역도 의사가 없어 시스템을 이끌어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 ‘의대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17일 <한국일보>의 ‘더욱 치솟은 의대 수시 경쟁률...‘역대 최고 660대1’ 기록하기도' 기사에 나온 분석을 보면, 2024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의 의대 평균 수시경쟁률은 45.59대 1이었다. 인하대 의예과의 논술 전형은 660대 1을 기록했다. 의사를 지망하는 이들은 많은데 현장엔 의사가 없다. 한 해 의대 정원은 3,058명인데 대체 이 많은 의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한 전공의의 심정이 적혀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어도 일반의의 미용병원 페이도 못 받는 현실이 드러나 있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한 전공의의 심정이 적혀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어도 일반의의 미용병원 페이도 못 받는 현실이 드러나 있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의예과 학생들에게 인기가 가장 높은 전공은 이른바 ‘피안성’이라 불리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다. 피안성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수술을 진행하는 외과보다 내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더 많다. 이들이 해당 과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워라밸’과 풍족한 수입이다.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 주는 전공을 택했다고 의대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의사의 사명감을 강조하며 지원과 환경이 열악한 전공에 가라고 강요하는 건 폭력적인 행태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 현실, 그중에서도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몰고 온 지난날을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 그중에서도 ‘의대 열풍’을 몰고 온 한국의 교육 체계를 돌아봐야 한다.

한국의 교육에선 의대는 상징이다. 전교 1등들의 집합이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과는 상관없다. 의대라는 타이틀은 경쟁적인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승리를 의미한다. 학부모와 교사 역시 배치표의 가장 윗부분에 도달하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 뺑뺑이’로 선수학습을 시키고 학교에선 ‘의대에 갈 수 있는 학생’을 위한 스펙 몰아주기가 공공연히 이뤄진다. 현재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 입시반’은 그동안 한국 교육의 부끄럽고 적나라한 현실을 끝까지 밀어붙여 만든 자화상이다.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어떤 의사가 되어 살아갈지보다, 어떻게 하면 의대에 가 성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이런 교육 현장에서 자란 학생들이 훗날 의대를 졸업하고 고된 생사의 현장을 지원할 리 만무하다.

한국의 현실과 밀접한 대안

<추적 60분>은 소아청소년과 붕괴 현상을 해결할 방안으로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지역에 의사를 키우는 방식인 ‘지역정원제’였다. ‘지역정원제’는 학교에 다니는 6년간 학비를 지원받고, 9년간 지역에서 일을 하는 제도이다. 의사들이 지역에 잔류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추적 60분>은 강조했다. 하지만, 그대로 한국에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점점 더 고소득층 위주로 의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상, 학비 지원은 실제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겐 큰 매력이 되기 어렵다.

나아가 일본의 사례를 통해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 머문다는 결과는 알 수 있었지만, 의사들이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의 내적 동기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진 못했다. 일본 사회의 어떤 특성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를 좀 더 구조적으로 분석했다면 지역 인재 유출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구체적 대안 제시가 되지 않았을까. 단 하나의 제도를 예로 들어 단편적인 결과를 보여준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와 다른 조건을 가진 해외 사례와의 단순한 비교는 자칫 게으른, 또는 무책임한 취재가 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교육 현실과 대입 제도를 고려해 보면 <추적 60분>의 대안은 그 깊이가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 수 확대, 의료 수가 인상과 같은 그동안 제안되었지만, 논의가 미진했던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공론장으로 끌고 나올 수도 있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 진료 과들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고, 마련할 예정인지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조금 더 우리 사회와 밀접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소아청소년과는 미래를 보호하는 안전망

소아과 의사들은 헌신을 다하는 내일의 젊은 의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 소아과의 현실을 바꿔야 할 때이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소아과 의사들은 헌신을 다하는 내일의 젊은 의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 소아과의 현실을 바꿔야 할 때이다. KBS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화면 캡처

“소아 환자가 하루에 한 명이 오더라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반드시 상주하고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병원에서 34년을 근무한 이동구 의사는 봉화의 1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그의 말에는 의사의 소명이 담겨있다. 단 한 명의 환자라도 의사가 필요하다면, 의사는 병원에 있어야 한다. 의사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위해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돈의 논리로, 교육의 오류로 방치되어서도 안 된다. 어린이가 국가의 미래라면, 소아·청소년 병원은 그 미래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필수적인 사회안전망이다. 우리가 지금 소아청소년과 붕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소아청소년과의 미래가 곧 우리 사회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언론 역시 우리 사회 미래인, 이 사안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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