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23년간 붕어빵 기부해 온 '붕어빵 천사' 윤희정 씨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 제천역에서 북쪽으로 1.5킬로미터(km) 가다 보면 중앙동행정복지센터와 제천시민회관이 나온다. 다시 500미터(m)쯤 올라가면 병의원이 몰려 있는 사거리가 보인다. 이 사거리 모퉁이에 붕어빵을 파는 트럭이 있다. 주황색 천막으로 덮인 하얀 트럭 짐칸에는 왼쪽부터 밤빵, 호두과자, 붕어빵 기계가 차례로 놓여 있다. '붕어빵 2개 1,000원, 호도과자 6개 1,000원, 밤빵 6개 1,000원'이라고 적힌 1.5m 길이의 현수막도 걸렸다.

가게 주인 윤희정(61) 씨는 거의 매일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이곳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며 붕어빵을 판다. 지난 1985년부터 38년간 한 자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했다. 여름 두 달 동안은 찹쌀 도넛을 판다. 사시사철 언제나 그 자리에 윤 씨가 있다.

그는 제천에서 제법 유명하다. 붕어빵을 맛있게 잘 굽기 때문이지만, 그의 잔잔한 명성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주변에선 그를 ‘붕어빵 천사’라 부른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지난 23년간 기부와 봉사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간 5차례 가게와 기부 현장을 찾아 윤 씨의 사연을 들었다.

지난 7일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윤희정 씨가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이은지 기자

어머니가 그리워 23년간 기부

강원도 춘천에서 나고 자란 윤 씨는 지난 1985년 충북 제천에 터를 잡았다. 제천은 남편의 고향이었다. 친척에게 붕어빵 굽는 법을 배워온 남편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성인 한 명이 양팔을 벌리면 꽉 차는 비좁은 리어카가 그의 첫 가게였다. 주변에서 200만 원을 빌려 붕어빵 틀도 마련했다. 이사를 21번이나 했을 정도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쉬는 날 없이 장사했다. 그 덕분인지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2001년 남편과 이혼 후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 같은 자리에서 혼자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제천을 떠날 수는 없었다. 이미 제천은 가족의 터전이었다. 갓난 둘째 아들을 포대기에 업고 장사했다. 그 무렵, 고향 춘천에 계시던 연로한 어머니가 쓰러졌다. 어머니를 제천으로 데려와 병간호했다. 어머니는 제천 생활 두 달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어머니처럼 집 밖에 나오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돕고 싶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에도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미룰 수 없었다. 2001년 요양시설인 제천 '영광의 집'에서 처음 붕어빵 기부를 시작했다.

지난 7일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에 있는 윤희정 씨 가게에 붕어빵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 7일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에 있는 윤희정 씨 가게에 붕어빵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은지 기자

알뜰히 돈을 모아 마련한 트럭을 몰고 영광의 집을 찾았다. 교회 목사님이 운영하는 그곳에는 35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돌봐줄 이 없는 어르신이나 노숙자들이었다. 윤 씨의 붕어빵을 손에 쥔 그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트럭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짧아질 줄 몰랐다. 그들을 보며 윤 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아이처럼 웃는 어르신들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게 그곳을 찾게 되는 이유"라고 윤 씨는 말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23년간 매달 영광의 집을 찾아 붕어빵을 기부하고 있다. 사정이 생겨 못 가는 달에는 쌀 같은 생필품을 꼭 전한다. 붕어빵을 기부하러 가는 날이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아침을 시작한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반죽을 한다. 그들을 위한 반죽에는 특별히 공을 들인다. 이가 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무른 반죽을 만든다. 오후 장사를 시작하기 전, 오전에 짬을 내 영광의 집을 찾아 붕어빵을 굽는다. "거길 다녀와야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그에게 기부와 봉사는 삶의 원동력이다.

왕복 1,000km 떨어진 소록도를 찾다

이윽고 윤 씨는 살아가는 힘을 더 많은 곳에서 얻었다. 붕어빵 나눠줄 곳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2008년 무렵, 강원도 원주에 있는 요양원 ‘축복의 집’을 찾았다. 이제 막 걸음걸이를 시작한 아이부터 90대 노인까지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은 윤 씨를 환하게 반겼다. 그날 윤 씨의 붕어빵을 손에 쥔 20대 여성은 '물고기처럼 생겼는데 빵이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길거리만 나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붕어빵조차 그들에겐 생소한 음식이었다.

붕어빵조차 먹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2012년 제천 영유아원, 2013년 청소년 보호시설인 제천 ‘로뎀청소년학교’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낙이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서울역을 찾아 노숙자에게 붕어빵을 나눠주기도 했다.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에 있는 윤희정 씨의 붕어빵 가게. 이은지 기자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에 있는 윤희정 씨의 붕어빵 가게. 이은지 기자

꾸준히 찾아가는 곳 말고, 단박에 달려가는 곳도 생겼다. 방송에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면 한걸음에 찾아갔다.

2010년 북한 포격으로 피해를 본 연평도 주민들에게 붕어빵을 기부했다. 피해 주민들이 인천의 한 아파트에 임시로 묵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트럭을 몰고 가서 붕어빵을 나눴다.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2020년 강원도 고성 산불, 2022년 경북 울진 산불 현장도 일부러 찾았다. "붕어빵이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했다"라고 윤 씨는 그때를 회고했다.

2016년에는 트럭을 몰고 왕복 1,000km 거리에 있는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갔다. 서울역 노숙자 봉사 현장에서 만난 어느 봉사자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는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에게 붕어빵 기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윤 씨에게 말했다. 단번에 수락했다.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기부하는데 또 하루. 모두 사흘 치 장사를 포기해야 했지만, 윤 씨는 괘념치 않았다.

2박 3일 동안 소록도 주민 600명에게 붕어빵 1,800개를 나눠줬다. 이틀 동안 열심히 일해야 팔 수 있는 분량이었지만, 당연히 무료로 나눴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들이 웃는 모습을 또 보고 싶어, 지난 2018년 두 번째로 소록도를 찾았다. 이듬해 또 오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때, 소록도를 떠나는 길에 봤던 주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 오라며, 하얀 트럭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들은 윤 씨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날이 따뜻해지는 내년 3월, 윤 씨는 세 번째로 소록도 기부 길에 오른다. "이제라도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윤 씨는 말했다.

지난달 8일 충북 제천시 요양시설 '실버홈'에서 윤희정 씨가 노인들에게 붕어빵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달 8일 충북 제천시 요양시설 '실버홈'에서 윤희정 씨가 노인들에게 붕어빵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이은지 기자

시민에게 받은 사랑을 지역에 돌려야죠

윤 씨의 선행은 붕어빵 기부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2011년에는 간경화로 남편을 잃고 생활이 어려워진 이웃의 붕어빵 창업을 물심양면으로 돕기도 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자신만의 반죽 비법을 기꺼이 내어준 것이다. 2016년부터는 제천시 종합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대학 6기로 활동하고 있다. 틈틈이 지역 내 여러 시설을 찾아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기자가 직접 함께 다니며 살펴보는 동안, 윤 씨는 요양시설인 제천 실버홈, 제천시 자원봉사자대회 등 5곳을 찾아 붕어빵을 기부했다. 두 달 동안 기부한 붕어빵은 모두 3,000개에 달한다. 그 밖에도 제천시 장애인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도 했다. 열흘에 하루꼴로 기부와 봉사에 나선 셈이다.

그는 붕어빵을 좋아하고, 봉사도 좋아한다. 눈여겨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빛나지 않는 거리 구석에서 조용히 살아도, 그의 마음은 항상 좋다. "붕어빵 장사를 업으로 삼은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좋아하는 일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환갑을 넘긴 윤 씨가 꿈꾸는 미래는 여전히 나눔이다. 힘이 닿는 데까지 기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38년 동안 제천시민에게 받은 많은 사랑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거, 그게 내 희망"이라고 윤 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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