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저널리즘 컨퍼런스

지난달 9일, 서울시 중구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주최로 2023 저널리즘 컨퍼런스가 열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7년부터 언론계 주요 이슈를 다루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해왔다. 특히 올해는 찰리 베켓(Charlie Beckett)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어니스트 쿵(Ernest Kung) <AP> AI 프로덕트 매니저, 엘리스 사무엘스(Elyse Samuels) <워싱턴포스트> 비주얼포렌식팀 선임 프로듀서 등 세계적 명성을 갖춘 해외 언론학자와 저널리스트를 초대하여 ‘AI와 언론의 혁신’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AI 활용…기자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어

발표에 나선 찰리 베켓 런던정경대 교수는 AI를 뉴스룸 생산성의 증대와 연결하여 설명했다. 20세기 말 인터넷이 발명되고 2010년대 뉴스 소비가 모바일로 옮겨간 것처럼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했고 언론산업은 그에 맞춰 적응해왔다. AI도 마찬가지다. 숙련된 기술자만 사용했던 AI를 이제는 일반인들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세계적 뉴스룸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런던정경대의 싱크탱크 ‘폴리스’(Polis)와 구글 뉴스이니셔티브(GNI)가 2023년 공동으로 46개국 105개 뉴스룸에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85%의 응답자가 “생성형 AI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당신의 뉴스룸에서 AI의 사용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측하는가”란 질문에 83% 이상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변화는 저널리즘에 긍정적인 것을 가져올 수 있지만, 윤리적 고민도 커졌다”고 베켓 교수는 말했다. 편향될 수 있는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AI 기업은 공개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니 투명한 정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 더불어 생성형 AI가 만드는 허위조작 정보는 좋은 저널리즘을 밀어낼 수 있고, 그 결과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더 떨어질 수 있다. 베켓 교수는 “(무엇보다도)이런 흐름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찰리 베켓 교수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출신 언론학자다. BBC, 채널4 등에서 25년간 선임 프로듀서로 근무하다 2006년 런던정경대학교(LSE)의 저널리즘 싱크탱크 ‘폴리스’(Polis)를 설립하며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선재 기자
찰리 베켓 교수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출신 언론학자다. BBC, 채널4 등에서 25년간 선임 프로듀서로 근무하다 2006년 런던정경대학교(LSE)의 저널리즘 싱크탱크 ‘폴리스’(Polis)를 설립하며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선재 기자

베켓 교수는 여러 해결책도 제시했다. 먼저 AI를 제작하는 기업은 AI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지 뉴스룸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AI 제작 기업 또는 언론사가 AI의 편향을 막기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휴먼 인 더 루프’(HITL·AI가 학습하는 과정에서 인간 전문가가 개입하여 검수하는 과정)라는 접근법도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최종적인 기사 판단과 편집에 AI가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 막바지에 “생성형 AI에 바라는 희망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저널리스트가 AI로 인해 더 효율적으로 일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앞으로 뉴스룸에서는 좀 더 인간적인 보도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탐사보도 혹은 전문보도의 영역이 확대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었다.

지역 뉴스룸을 돕는 AI

뒤이어 연사로 나선 어니스트 쿵은 세계적 뉴스통신사 AP에서 AI 프로덕트 매니저를 맡고 있다. 그는 AP가 진행하고 있는 ‘지역 뉴스룸을 위한 다섯 가지 AI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 100개국 200개 도시에 AP 기자들이 파견 나가 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보도하는 기사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AP의 중요한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P는 2021년 8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지역 뉴스 AI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약 3년에 걸쳐, 세계 각 지역의 뉴스룸에 AI를 적용할 방안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뉴스룸을 위한 AI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날씨 보도다. <엘 보세로 푸에르토리코>(El Vocero de Puerto Rico)라는 스페인어 뉴스 매체는 영어로 전달되는 허리케인 정보를 스페인어로 보도하길 원했다. 이들의 요구를 받아, 미국의 기상청에서 발표되는 날씨 정보를 수집하고 스페인어로 번역한 뒤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에 올리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발표를 마친 어니스트 쿵(오른쪽) AP 매니저가 김태균 연합뉴스 데이터·AI 전략팀장(왼쪽)과 대담하고 있다. 이선재 기자
발표를 마친 어니스트 쿵(오른쪽) AP 매니저가 김태균 연합뉴스 데이터·AI 전략팀장(왼쪽)과 대담하고 있다. 이선재 기자

현재 지역 뉴스를 위한 AP통신의 AI 프로젝트 오픈 소스 코드는 AP 깃허브(github.com/associatedpress)에 무료 공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한 상세한 설명도 AP의 홈페이지(ai.ap.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AI 시대, 시각 탐사 보도의 가능성

마지막 연사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비주얼 포렌식(visual forensics)팀의 선임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엘리스 사무엘스였다. ‘비주얼 포렌식’은 시각 정보와 공개 정보, 전통적인 탐사 방식을 활용하여 다큐멘터리와 멀티미디어 스토리를 제작하는 팀이다. 단비뉴스가 지난 8월 소개했던 <뉴욕타임스> 시각탐사팀(visual investigations)과 비슷한 취재·보도 방식을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엘리스 사무엘스 워싱턴포스트 비주얼 포렌식팀 선임 프로듀서가 ‘탐사보도를 위한 시각적 증거’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인기 코너였던 ‘팩트 체커’(Fact Checker)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다 2020년 ‘비주얼 포렌식’팀이 만들어지며 선임 프로듀서로 합류했다.
엘리스 사무엘스 워싱턴포스트 비주얼 포렌식팀 선임 프로듀서가 ‘탐사보도를 위한 시각적 증거’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인기 코너였던 ‘팩트 체커’(Fact Checker)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다 2020년 ‘비주얼 포렌식’팀이 만들어지며 선임 프로듀서로 합류했다. 이선재 기자

사무엘스는 “딥페이크, 포토샵 등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조작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시각탐사보도에서) 영상이 조작되었는지 검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지오로케이션’(geolocation)이라고 한다. ‘지오로케이션’은 사진이나 영상 속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되는 장소에서 실제로 그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검증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현재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 찍힌 사진이라고 주장한 사진이 알고 보면 몇 년 전 시리아에서 찍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엘리스 사무엘스 워싱턴포스트 선임 프로듀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체르니히우’에서 촬영되었다고 알려진 사진을 검증한 과정을 소개했다. 원래 사진의 배경에 등장한 슈퍼마켓을 ‘구글 렌즈’를 활용해 찾아내고, 이를 다른 사진과 비교하여 사실 관계를 검증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엘리스 사무엘스 워싱턴포스트 선임 프로듀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체르니히우’에서 촬영되었다고 알려진 사진을 검증한 과정을 소개했다. 원래 사진의 배경에 등장한 슈퍼마켓을 ‘구글 렌즈’를 활용해 찾아내고, 이를 다른 사진과 비교하여 사실 관계를 검증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그는 “(평상시 취재에서) 정보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처럼 (AI 시대에는) 모든 오디오와 영상물을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시각 정보들이 조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가 체포되었다는 딥페이크 사진을 예시로 들었다. 자세히 보면 경관의 손가락이 여섯 개이거나, 배경에 있는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표 이후 대담에서 이샘물 <동아일보> 기자는 “발 빠르게 다뤄야할 이슈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물었다. 사무엘스는 “기사 내용(story)에 따라 다르다”면서 “이태원 참사의 경우 (영상을 모아 검증하여 보도하기까지) 몇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다만, “취재에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독자가 새롭게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저널리즘 컨퍼런스의 모든 발표 영상과 자료는 홈페이지(https://www.jweek.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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