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2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수상작 – 포이즌드(POISONED)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베이에 위치한 납 제련 공장 ‘고퍼 리소스’의 굴뚝에서 주황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베이에 위치한 납 제련 공장 ‘고퍼 리소스’의 굴뚝에서 주황빛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서부 멕시코만 연안에는 인구 320만 명의 항만 도시 탬파베이(Tampa Bay)가 있다. 2018년, 이 지역 유력 신문인 <탬파베이타임즈>의 기자는 힐스버거 카운티의 한 학교 물에서 역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학교로 향한다. 학교 수도에선 기준치를 한참 초과한 납이 검출되었다. 근처엔 플로리다에서 유일하게 가동 중이던 납 제련소 ‘고퍼 리소스’(Gopher Resource, 이하 고퍼)가 있었다. 기자는 시선을 학교에서 고퍼로 옮겼다. 고퍼는 폐배터리에서 납을 추출하고 재가공해 연간 수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는 오래된 제련소였다.

이윽고 탬파베이타임즈의 기자 3명이 고퍼를 둘러싼 산업 재해를 샅샅이 파헤쳤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검토하고, 80명 이상의 전·현직 노동자를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20명의 의료기록을 직접 받아서 확인했다. 기자들은 공장 주변의 토양 상태를 직접 확인하려고 납 검사관 교육을 이수했다. 취재에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고퍼의 작업 환경은 심각했다. 공장 안에선 납 먼지가 휘날렸고,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노동자 80%가 심혈관 질환 위험에 처했으며, 5년간 최소 14명의 전·현직 노동자가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담아 세 편으로 구성한 기사 ‘포이즌드'(POISONED)는 2022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산업재해가 10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이유

취재팀이 만난 공장 직원은 ’납 먼지가 모래폭풍처럼 공장을 휩쓸고 나면 작업복에서 오래된 동전에서 나는 악취가 났다‘고 말했다. 환기 시설이 고장 난 후 직원들의 혈중 납 농도는 나날이 높아졌지만, 회사는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고퍼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8명꼴로 고혈압, 신장 기능 장애, 심혈관 질환 등을 겪었다. 고퍼는 연방정부의 기준치보다 수백 배 높은 공기 중 납 농도를 몇 년 동안이나 작업자에게 노출하고 있었다. 납 먼지는 가루 설탕을 뿌린 것처럼 쌓였다. 직원이 납 중독으로 인한 심장, 신장 질환으로 사망하는 일은 10년 동안 꾸준히 일어났다. 기업과 보건 당국의 무심함이 이를 방치했다.

고장 난 환기 시설을 방치한 고퍼 공장에서 납 먼지가 휘날리고 있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고장 난 환기 시설을 방치한 고퍼 공장에서 납 먼지가 휘날리고 있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2007년부터 2019년까지 회사가 수집한 300개 이상의 공기 샘플 자료를 탬파베이타임즈가 분석한 결과, 노동자가 제공받은 방진마스크는 제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회사는 혈중 납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일을 노동자들에게 종용했다. 혈관 내 중금속 성분을 흡착할 수 있는 영양물질을 정맥에 투여해 소변의 형태로 중금속을 배출하는 ‘킬레이션’ 치료를 받을 경우, 승진을 위한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공장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노동자의 시간과 비용으로 납 중독을 치료하도록 한 것이다. 게다가 이 치료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을 오히려 나빠질 위험도 있었다. 건강에 좋은 철분 등 다른 성분까지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동안, 보건 당국도 기업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미국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위생국(이하 안전위생국)은 기업의 작업환경을 조사하고 감시하는 기관이다. 그 감시는 매우 느슨했다. 탬파베이 지역의 안전위생국 사무소는 추첨제로 검사대상을 결정해 왔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고퍼는 단 한 번도 이 추첨에서 뽑히지 않았다. 추첨으로 검사 대상에 선정되어도 고퍼가 걱정할 일은 없었다. 안전위생국이 사전에 검사 날짜를 공장에 알려주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노동자들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검사관이 단 한 명도 방문하지 않은 5년 동안 고퍼 노동자의 혈중 납 농도는 안전위생국의 검사 기준을 훌쩍 초과해 버렸다.

납 중독을 직접 검사하다

일련의 사실을 취재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기자들은 고퍼 내부에 가볼 수도, 가본 적도 없었다. 고퍼 노동자의 납 중독을 증명하면서, 회사의 변명이나 반증을 극복하려면 압도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기자들은 500명 이상의 전·현직 노동자를 일일이 설득하여 의료기록을 받고, 이를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혈중 납 농도를 분석했다. 또한, 공장 외부에서 80여 명의 고퍼 직원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이들 가운데 일부로부터 탬파 공장 내부에서 촬영한 수백 장의 사진과 영상을 확보했다.

이러한 자료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취재팀은 직접 증거를 수집하기로 결심했다. 고퍼 공장에서 흘러나온 납이 주변 토양과 하천에 스며들었을 것이므로 이를 드러내는 생생한 데이터가 필요했다. 샘플을 수집하고 검사에 맡기기 위해선 검사관 인증이 필요했다. 기자들은 조지아주에 있는 정부 산하 환경기관을 오고 가며 납 검사관 인증 교육을 받았다. 샘플 채취 방법을 배우고, 관련 규정을 익혔다.

교육을 받고, 자격을 얻고, 샘플을 채취하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공장 인근에서 70개의 토양 샘플을 채취하여 분석했다. 토양 속 납 농도는 인근 어느 곳보다도 높았다. 새로운 물증을 확보한 것이다. 그저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취재팀의 탐사보도 노하우였던 셈이다.

취재 결과를 농축한 인터렉티브

1년 6개월에 걸친 취재의 결과는 총 세 편으로 축약되었다. 편당 분량은 길지만 지루하진 않다. 직관적 그래픽은 물론,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장치를 곳곳에 배치하여 기사를 몰입하여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포이즌드 1편 기사에서 등장하는 인터렉션 요소, 혈중 납 농도가 높을수록 신체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는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포이즌드 1편 기사에서 등장하는 인터렉션 요소, 혈중 납 농도가 높을수록 신체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는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슬라이더를 좌우로 움직이면 고퍼가 탬파베이 지역의 제련소를 인수하기 이전과 이후에 주변 토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왼쪽은 2006년 3월, 오른쪽은 2019년 12월 촬영한 항공사진이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슬라이더를 좌우로 움직이면 고퍼가 탬파베이 지역의 제련소를 인수하기 이전과 이후에 주변 토지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왼쪽은 2006년 3월, 오른쪽은 2019년 12월 촬영한 항공사진이다. 출처 탬파베이타임즈

특히 연재 기사 가운데 3편에선 이 문제가 고퍼 공장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는 점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자들은 고퍼 노동자 외에도 지역 주민을 만났다. 주민들은 주황빛 구름을 종종 봤다. 아이들의 천식이 심해져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지역 전체가 황폐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인터랙티브 장치가 등장한다. 10년 동안, 공장 주변 주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항공 사진을 움직여가며 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내용일수록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제시하려는 기자들의 섬세함이 기사 전체에 깃들어 있다.

탐사보도를 사랑하는 지역 언론

일련의 보도는 지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사를 읽은 탬파 시장과 지역구 하원의원 등이 직접 나서 고퍼의 작업환경에 관한 신속한 검사를 안전위생국에 촉구했다. 결국 고퍼는 총 83만 7천 달러의 벌금을 냈다.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이 새로 실시됐다. 요식적이었던 안전위생국의 관행도 바뀌어, 지역 공장의 작업 환경과 주변 영향을 수시로 검사하게 됐다.

기사를 보도한 탬파베이타임즈는 경쟁 관계였던 두 신문이 합병하여 만들어졌다.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출판되던 신문 <세인트피터즈버그 타임즈>(St. Petersburg Times)가 2016년 경쟁사였던 <탬파 트리뷴>(Tampa Tribune)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탬파베이타임즈가 만들어졌다. 이제 미국 남동부의 최대 신문사로 성장했다.

이 신문은 탐사보도만을 위한 탐사 기금 ‘탬파베이 탐사보도 펀드’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후 지역에 밀착한 탐사보도로 퓰리처상을 단골로 받는 신문사가 됐다. 포인즌드도 2022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2023년 퓰리처상(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탬파베이타임즈>의 ‘포이즌드’ 연속보도는 여기를 눌러 읽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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