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1월 25일부터 시행된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언론에 미칠 영향은?

지난해 8월 4일, JTBC는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의 신상을 경찰보다 사흘 앞서 공개했다. JTBC는 <서현역 흉기 난동범은 '01년생 최원종'> 보도를 통해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가해자의 이름과 나이를 공개했다. JTBC는 “아직 경찰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뉴스룸은 국민의 알 권리, 또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달 20일에도 JTBC는 신림동 사건 피의자 최윤종의 신상을 경찰보다 사흘 먼저 공개했다.

JTBC "서현역 흉기 난동범은 '01년생 최원종'" 2023년 8월 4일 보도 갈무리
JTBC "서현역 흉기 난동범은 '01년생 최원종'" 2023년 8월 4일 보도 갈무리

수사기관이 피의자 진상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 먼저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과거부터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이를 놓고 여론의 반응도 엇갈렸다. 언론은 공적 관심사가 된 피의자가 어떤 인물인지 보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거나, 언론은 수사기관의 판단과는 독립적으로 공익성 등을 스스로 판단해 범죄 피의자가 누구인지 보도할 권리가 있다는 시각이 있다. 반대로 언론사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국민 여론은 “신상공개 확대” 요구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7천 474명 가운데 무려 96%가 넘는 7천 196명이 “강력범죄자의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신상공개 확대가 필요한 이유로는 “피해자 보호와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를 꼽은 사람이 41%였고,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유사 범죄 예방 효과를 위해”를 꼽은 사람이 28%였다. “현행 신상공개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져서”를 꼽은 사람도 17%나 됐다. 또 피의자가 검거된 뒤 촬영한 이른바 ‘머그샷’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95%가 넘는 7천 134명이 “범죄자 동의와 상관없이 최근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강력범죄 신상공개에 관한 설문조사.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보도자료
강력범죄 신상공개에 관한 설문조사.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보도자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지난 2022년 12월 7일부터 1년간 ‘신상공개’가 들어간 기사의 연관어 분석을 해봤다. 빅카인즈 연관어 분석에 따르면, ‘머그샷’과 관련한 키워드가 점유율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머그샷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의 피의자 신상공개위원회가 공개를 결정하더라도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체포 뒤 촬영한 사진은 공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래전에 촬영됐거나 보정된 사진 등이 공개됐다. 이 때문에 실제 피의자의 현재 모습과 차이가 있어서 신상공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신상공개와 관련한 법률 규정에 언제, 누가, 어떻게 찍은 사진을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신상공개’로 검색된 기사의 연관어 분석 결과를 워드클라우드로 나타낸 그림. 그래픽 이은별
지난 1년간 ‘신상공개’로 검색된 기사의 연관어 분석 결과를 워드클라우드로 나타낸 그림. 그래픽 이은별

언론에 의한 신상공개 가능한가

언론이 경찰보다 먼저 신상공개를 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20년 3월 23일, SBS는 이른바 ‘N번방’ 성 착취물 제작과 유포 사건의 피의자 조주빈을 공개했다. SBS는 수사단계에서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SBS는 당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한 범죄”라며 “추가 피해를 막고 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서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이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보도한다”고 설명했다.

SBS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25살 조주빈'" 2020년 3월 23일 보도 갈무리
SBS "[단독] '박사방' 운영자 신상 공개…25살 조주빈'" 2020년 3월 23일 보도 갈무리

SBS 보도 다음 날인 24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한국일보 등 조간신문은 조주빈 이름을 공개했다. 이와 달리,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는 조주빈을 ‘조 아무개’로 표기하며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25일에는 전날 실명 보도를 하지 않았던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도 조주빈의 실명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조주빈의 실명을 공개한 이유를 유일하게 밝혔다. 한겨레의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 세칙’에 따라 익명 보도를 했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유사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실명 보도를 하는 것이 공익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2020년 3월 24일 한겨레 ‘아동 성착취 영상 최저 5년형인데…80%가 벌금·집유’ 보도 갈무리. 한겨레는 다음날부터 조주빈의 실명을 사용했다.
한겨레는 다음날부터 조주빈의 실명을 사용했다. 2020년 3월 24일 한겨레 ‘아동 성착취 영상 최저 5년형인데…80%가 벌금·집유’ 보도 갈무리

2009년 1월 3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실명을 경찰보다 먼저 공개했다. 중앙일보는 “흉악범 발생 막고 추가 범죄 제보 효과라는 공익을 위해서 신상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언론이 수사기관보다 먼저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언론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하면 언론사가 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피의자나 범죄 행위자가 공인인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성이 없다고 판결해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들은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로 신상 공개를 결정한 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다.

언론의 자체적인 신상공개가 일반화되면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피의자는 물론 가족과 지인까지 2차 가해를 당할 수도 있다. 또 이런 신상공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유죄 확정 전까지 무죄로 추정하는 원칙을 지켜야 하고, 사전에 신상이 공개되면 헌법상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언론사의 자율적 판단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1월 31일 중앙일보 “‘흉악범 발생 막고 추가 범죄 제보 효과’ 본지, 공익 위해 강호순 이름·얼굴 공개” 보도 갈무리
2009년 1월 31일 중앙일보 “‘흉악범 발생 막고 추가 범죄 제보 효과’ 본지, 공익 위해 강호순 이름·얼굴 공개” 보도 갈무리

수사기관 신상공개 기준에 대한 논란

피의자 신상공개에 관한 기존의 법적 근거는 ‘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처벌법’이었다. 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특별법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신상공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런 법 조항이 있었음에도 신상공개위원회를 연 횟수는 강력범죄 발생 건수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최근 5년간 특정강력범죄 사건 2만 8천여 건 가운데, 신상공개위 개최는 49건, 실제 신상공개는 28건에 그쳤다. 강력범죄 건수에 비해 신상공개위원회가 열린 횟수가 매우 적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또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공익성과 같은 신상공개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것이다. 공익성의 범위를 판단하기 어렵고, 신상공개로 인한 피의자 명예훼손보다 공익성이 크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 통과한 ‘중대범죄신상공개법’ 드디어 시행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지난해 6월부터 중대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특례법을 만들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드디어 지난해 10월 6일, ‘특정중대범죄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안’, 즉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른 법률에 포함되어 있던 신상공개 관련 조항을 떼어내 별도의 법률로 만든 것이다. 새 법률은 약 석 달의 유예 기간을 거쳐 지난 25일부터 발효했다.

2023년 10월 24일에 통과된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2023년 10월 24일에 통과된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새 법률은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상공개 범위를 피고인까지 확대하고, 중대범죄자로 신상공개 결정이 나면 30일 이내에 수사기관이 촬영한 머그샷을 공개한다. 기존 신상공개 대상 범죄는 특정강력범죄와 성폭력범죄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내란·외환, 범죄단체조직, 폭발물, 현주건조물방화, 마약 범죄 등도 신상공개 대상 범죄로 포함되었다. 이제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범죄자의 머그샷까지 언론에 공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 발효 이후 달라진 피의자 신상공개. 그래픽 이은별
중대범죄신상공개법 발효 이후 달라진 피의자 신상공개. 그래픽 이은별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제4조 제9항은 ‘신상정보의 공개 등에 관한 절차와 방법 등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다’고 규정한다. 시행령은 법률 발효 직전인 지난 16일에 제정됐다. 시행령에는 신상 공개 전에 당사자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주고 심의위원회에는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절반 이상 포함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시행령 내용. 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시행령 내용. 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1998년부터 시작된 ‘익명보도 원칙’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언론에 의한 피의자 신상 공개는 보편적이었다. 언론사가 피의자 호송 과정이나 현장검증을 취재해 피의자의 얼굴, 이름, 나이, 집주소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언론이 남편에 대한 청부살인 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대적으로 실명 보도됐던 여성이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이런 관행이 바뀌었다. 무죄 선고를 받은 이 여성이 자신을 실명으로 보도했던 언론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1998년 “범죄 자체를 보도하기 위해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는 없고 실명 보도가 범죄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2005년에는 “경찰서에서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경찰관 직무 규칙에 추가되었다.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문과 2005년에 개정된 경찰관 직무 규칙. 그래픽 이은별
대법원 1998. 7. 14. 선고 96다17257 판결문과 2005년에 개정된 경찰관 직무 규칙. 그래픽 이은별

미국·일본 언론은 피의자 실명 보도가 일반적

지난 3일,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을 보도하면서 피의자의 실명을 밝혔다. NTY는 “경찰은 피의자인 66세 공인중개사 김OO가 이재명 대표를 살해하려는 의도를 인정했다고 밝혔다”며 피의자 김 씨의 실명과 나이, 직업을 공개했다. 또 피의자의 뒷모습이 담긴 피습 영상을 모자이크 없이 게재했다.

지난 3일 NYT ‘Knife Attack on Opposition Leader Raises Alarms in Polarized South Korea’ 보도. NYT 갈무리
지난 3일 NYT ‘Knife Attack on Opposition Leader Raises Alarms in Polarized South Korea’ 보도. NYT 갈무리

미국은 범죄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의 머그샷과 신원을 보도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공적 기록에 대해서는 보도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또 사실이기만 하면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포함한 피의자 신상이 일상적으로 보도된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2004년 일본 나고야 고등법원은 “흉악하고 잔인한 범죄 사실로 볼 때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일반 시민이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며 소년범의 신상을 공개한 주간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은 피의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실명도 프라이버시 보호, 공익성 등 사정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구체적 사안에 따라 허용하고 있다.

“국가가 허락한 경우만 공개 가능한 것은 문제”

비록 여론 조사에서 피의자 신상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지만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언론의 자율적인 신상공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언론으로서는 자율적으로 피의자 신상 공개를 했다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자칫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신상공개에 대한 여론도 수시로 출렁인다. 언론으로서는 국가가 허락한 사안만 공개하는 것이 안전하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해 11월 개최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 토론회에서 김송옥 중앙대 법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언론의 익명보도 원칙은 습관적이고 불필요한 익명처리와 얼굴 모자이크 처리, 음성변조를 부추기며 무책임한 언론의 관행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며 언론의 피의자 익명 보도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는 새로 만들어진 ‘특정중대범죄신상공개법’과 관련해서도 이 법에 정해진 범죄 외에는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공고히 해서 익명보도 원칙을 더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허락한 것만 공개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김창숙 경희대학교 언론학 박사도 언론의 피의자 신상 보도 기준이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언론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사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신상공개 기준을 갖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정교화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를 주제로 언론중재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출처 언론중재위원회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와 언론의 범죄보도’를 주제로 언론중재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출처 언론중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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