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방심위, 각종 논란에도 ‘가짜뉴스’ 심의 상시 전환

지난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른바 ‘가짜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포털·플랫폼 기업 사이에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방심위가 심의 중인 언론보도에 대해 포털·플랫폼 기업에 협조를 요청하면, 요청받은 기업이 뉴스 페이지 상단에 ‘심의 중’ 표시를 하거나 삭제·차단 등의 조치를 하기로 한 것이다. 방심위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제18조에 따라 설치된 법정기구로, 방송과 통신의 공공성과 공정성 등을 심의해 방통위에 행정제재를 요청할 권한을 갖고 있다.

지난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를 심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네이버는 포털 뉴스 페이지에 기사의 심의 상태나 정정 결과를 본문 상단에 강조하여 표기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네이버
지난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를 심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네이버는 포털 뉴스 페이지에 기사의 심의 상태나 정정 결과를 본문 상단에 강조하여 표기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네이버

방심위가 가짜뉴스를 심의하겠다고 나서자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방심위가 가짜뉴스를 심의할 법적 근거와 심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기사에 ‘심의 중’ 표시를 달면 진위를 따지기 전에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일부 심의위원 주도로 심의가 계속 이어지고 의결 없이 포털 기업에 ‘심의 중’ 표시를 요청하는 공문까지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방심위 내부와 언론계에서 가짜뉴스 심의에 반대하는 성명문을 발표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가짜뉴스’ 용어 사용 부적절…‘허위조작정보’라고 불러야

유네스코는 지난 2018년 저널리즘 교육 핸드북 ‘저널리즘, 가짜뉴스 그리고 허위조작정보’(Journalism, “Fake news” & Disinformation)를 발표하고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유네스코
유네스코는 지난 2018년 저널리즘 교육 핸드북 ‘저널리즘, 가짜뉴스 그리고 허위조작정보’(Journalism, “Fake news” & Disinformation)를 발표하고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유네스코

유네스코와 유럽연합 등에서는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는 2018년 ‘저널리즘, 가짜뉴스 그리고 허위조작정보’(Journalism, “Fake news” & Disinformation)라는 보고서를 내고 가짜뉴스라는 용어에 대해 “정치화된 뉴스 산업에 대한 무기로, 권력자들이 싫어하는 보도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준을 맞추지 못한 정보를 뉴스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2018년 허위조작정보 대응에 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소집한 고위전문가그룹의 제안에 따라 가짜뉴스라는 용어 대신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언론학자와 플랫폼사업자 등 39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이 그룹이 발표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다차원적 접근’(a multi-dimensional approach to disinformation)이라는 보고서에는 일부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보도를 묵살하기 위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해 9월 방심위가 가짜뉴스를 심의하겠다고 밝힌 후 용어 사용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방심위는 가짜뉴스 심의를 담당하는 내부 기구의 명칭을 바꿨다.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의 명칭을 출범 한 달만인 지난해 10월 23일 ‘가짜뉴스 [허위조작콘텐츠] 신속심의센터’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센터명에 ‘허위조작콘텐츠’라는 말을 추가했을 뿐, 내부 회의와 홈페이지 등에서는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허위조작콘텐츠와 나란히 쓰는 방식으로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다음, 방심위 요청에 ‘심의 중’ 배너 달아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중인 뉴스타파 보도의 포털 내 뉴스 페이지 본문 상단에 ‘방통통신심의위원회 신속심의 중’이라고 표시했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중인 뉴스타파 보도의 포털 내 뉴스 페이지 본문 상단에 ‘방통통신심의위원회 신속심의 중’이라고 표시했다. 네이버 뉴스 갈무리

방통위가 가짜뉴스를 심의하겠다고 발표하고 약 2주 뒤인 지난해 10월 11일 <뉴스타파>의 한 보도가 첫번째 심의 대상으로 선정됐다. 방심위는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보도를 ‘유해 정보 심의에 관한 건’으로 통신심의 회의에 상정했다. 심의 근거로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를 들었다. 이 조항에서 유통을 금지하고 있는 ‘사회통합과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정보’ 중에서 “그밖에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라는 부분을 적용한 것이다. 해당 보도에 실린 인터뷰 가운데 일부가 삭제·편집된 것이 대선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11월 27일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추천인 윤성옥 위원이 류희림 위원장에게 “통신 심의 쪽에는 가짜뉴스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가짜뉴스 심의의 법적 근거를 질의했으나 유 위원장은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출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록
지난해 11월 27일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추천인 윤성옥 위원이 류희림 위원장에게 “통신 심의 쪽에는 가짜뉴스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가짜뉴스 심의의 법적 근거를 질의했으나 유 위원장은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출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록

가짜뉴스 심의가 시작되자 방심위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기업들에 ‘자율규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방심위는 공문을 통해 포털 기업들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가짜뉴스 신속심의 중입니다’라는 표시 또는 삭제·차단 등의 조치”를 하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6일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 뉴스 페이지 본문 상단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신속심의 중”이라는 배너를 달았다.

하지만 이틀 뒤에 열린 통신심의 회의에서 방심위가 시정요구를 하지 않고 서울시에 신문법 위반 검토 요청을 하기로 결정하자, 네이버와 다음은 ‘심의 중’ 표시를 삭제했다. 이날 회의에서 국민의힘 추천 김우석 심의위원은 “원문뿐만 아니라 인용 보도들이 다 인터넷에 남아 있는데 이것만 차단해 가지고 무슨 실익이 있겠냐”며 “지자체에 통보를 하고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결국 심의위원 3명 가운데 국민의힘 추천 위원 2명이 시정요구 대신 서울시에 검토 요청을 하는 안에 찬성하면서 심의가 종결됐다.

이날 회의에서 뉴스타파 심의 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추천 윤성옥 심의위원은 “내용 규제 기관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떤 근거로 서울시가 이것을 하겠느냐”며 서울시에 검토 요청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윤 위원은 지난해 10월 11일 회의에서는 “통신심의규정 제8조는 방통위 설치법 시행령의 청소년 유해 정보 등에 근거하고 있다”며 “이 규정에 대한 해석도 상위법에서 정해준 범위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심위가 제시한 해외사례, ‘가짜뉴스’ 심의 근거 아냐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방심위가 가짜뉴스를 심의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당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포괄적이고 총체적으로 심의 근거가 있다”며 “법 제도적인 입법 보완을 반드시 해야 되는데 그래서 우선 이런 일들을 막고 근절시키기 위해서 신속구제 심의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방심위가) 입수한 해외 정보 가운데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스페인 등에서는 오히려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도 많다”고 주장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미디어 정책 리포트’를 보면,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는 선거 기간이나 플랫폼에 한정해 허위정보를 규제하고 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미디어 정책 리포트’를 보면,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는 선거 기간이나 플랫폼에 한정해 허위정보를 규제하고 있다.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하지만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가짜뉴스 심의 기준을 마련하는 데 참고했다고 밝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미디어 정책 리포트에는 방심위와 같은 독립적 행정기구가 상시적으로 가짜뉴스를 심의하는 사례가 나와있지 않았다. 이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는 선거 기간과 플랫폼에 한정해 허위정보를 규제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헝가리는 코로나19 대응조치의 하나로 허위정보를 규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방심위가 가짜뉴스 관련 해외 규제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 DSA)은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자율규제 행동강령으로 행정심의 규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달부터 시행된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온라인 플랫폼이 자사 플랫폼에 허위정보나 차별적 콘텐츠, 아동학대 등의 불법 유해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제거하도록 규제하는 법이다.

의결도 없이 ‘심의 중’ 표시…“선입견·오해 불러일으킬 수 있어”

방심위가 심의 중인 기사에 ‘심의 중’ 표시를 붙이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허숙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만약에 허위조작정보가 아니라면 그 진위를 따지기 전에 선입견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이동관 위원장에게 허위조작정보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응하고 보상할 것인지 질의했다. 이 위원장은 “명백하게 허위정보라고 판단할만한 근거가 있는 것만 하지 그렇게 아무거나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심의 중’ 표시를 한 기사가 허위조작정보가 아닐 경우 피해를 보상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26일 국정감사에서 허숙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심의 중’ 표시를 한 보도에 대해 “허위조작정보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응하고 보상할 것인지 계획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지난해 10월 26일 국정감사에서 허숙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심의 중’ 표시를 한 보도에 대해 “허위조작정보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응하고 보상할 것인지 계획이 있느냐”고 질의했다. 국회 영상회의록 갈무리

방심위 내부 회의에서도 네이버 등 포털 기업에 ‘심의 중’ 표시를 요청하는 자율규제 공문을 보낸 것을 두고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4일 방심위 정기회의에서 윤성옥 위원은 “의결도 없이 ‘심의 중’ 표시 방법을 굉장히 (…) 구체적으로 적시해서 <자율규제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공문으로 발송했다”며 “법적 근거도 없이 포괄적으로 ‘심의 중’이라는 표시하도록 (…) ‘자율규제 권고’와 마찬가지인 이 공문 보낸 거, (…) 저는 굉장히 위험한 거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심위가 심의 중인 기사에 ‘심의 중’ 표시를 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지만, 법 제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7년 제20대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등이 정보통신망법의 불법정보 유통금지 대상에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고, 방심위가 심의 중인 정보에는 ‘심의 중’ 표시를 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언론단체 등 비판에도…“상시적 심의로 전환”

언론계에서는 방심위의 가짜뉴스 심의가 언론의 자유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해 11월 보도자료를 내고 이동관 위원장이 국회에 제출한 ‘가짜뉴스 근절 추진 현황과 해외 사례’의 보고서를 검토한 내용을 공개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방통위가 가짜뉴스 심의 근거로 제시한 판례와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한 결과 “가짜뉴스의 법적 정의도 없이 행정기관이 허위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별하여 삭제·차단하는 표현 규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방심위는 지난해 12월 보도자료를 내고 “새해부터 허위조작콘텐츠에 대한 심의 절차를 ‘상시 신속심의’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허위조작정보를 심의하기 위해 시범 운영했던 ‘가짜뉴스 [허위조작콘텐츠] 신속심의센터’를 폐지하고 방심위 내부 절차를 통해 심의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반면 ‘심의 중’ 규제 요청에 대한 법적 근거 문제 등 관련 논란에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앞으로도 방심위의 허위조작정보 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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