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기후위기시대 ㉞ 연탄의 정의로운 전환 (중)

2022년 4월 1일 오전 8시 경북 영주시 휴천동 강원연탄. 200평 남짓한 공장 안에서 연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고, 시커먼 석탄 가루가 뿌옇게 흩날렸습니다. ‘시끄러운 음악 수준’인 84데시벨(dB) 이상의 소음이 내내 귀를 괴롭혔습니다. 출하 대기장에서는 연탄 소매업자 10명이 갓 나온 연탄들을 3.1톤(t) 트럭에 싣고 있었습니다. 1972년 문을 연 이 업체는 2018년까지만 해도 하루 최대 8만 장까지 연탄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2만~3만 장 정도로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80대 고령인 황영호 사장은 연 매출액이 40억 원 정도인데 재고 물량과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30명 가까운 직원을 두었지만, 지금은 5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연탄 제조업체 줄줄이 폐업, 협의체도 와해

오전 10시, 연탄 소매업자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을 때 황 사장이 한숨을 쉬듯 말했습니다.

“정부와 대화할 수 있는 창구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3년 설립된 한국연탄공업협회는 생산기업들의 협의체로서 대정부 창구 기능을 했지만, 연탄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어느 시점엔가 없어졌습니다. 국내 광물자원 산업 전반을 관리하는 한국광해광업공단이 내는 ‘전국 연탄공장 현황’에 따르면 연탄 제조업체는 2012년 48곳이었으나, 2022년 12월 기준 23곳이 줄어 25곳만 남았습니다. 2023년에는 4곳의 연탄공장이 더 폐업해 21개 공장만 남았습니다. 석탄 산업 구조조정과 탈석탄 정책의 여파입니다. 정부는 2021년까지 연탄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화석연료 판매업체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비판이 일자 중단했습니다. 2021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2021~2025)에는 연탄 제조업체와 종사자에 관한 대책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황 사장에 따르면 강원연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운영하던 영주연탄은 2021년 폐업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고시한 연탄 한 장의 공장도 가격이 639원이었는데, 연탄업체 간 가격 인하 경쟁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은 겁니다. 폐업한 영주연탄 건물은 제대로 철거되지 않은 채 공장 내부의 오폐수 등이 방치된 모습이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연탄업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자본금이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자본금이 있어도 공장을 폐업할 때 발생하는 환경 정화와 철거 비용을 부담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저물어 가는 산업, 고령의 저임금 노동자들

강원연탄의 작업환경도 열악했습니다. 소음 때문에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방진 마스크 틈으로 분진이 계속 들어와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 공장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다는 70대 나이의 연탄 윤전기 기능사 박태천 씨는 공장 소음으로 인한 난청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1년 대구의 한 연탄공장에서 장기 근속한 노동자가 폐에 분진이 들러붙어 생기는 진폐증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는 등, 노동자와 인근 주민의 폐질환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장 근무 환경도 나쁘지만, 노동자들은 연탄공장이 결국은 문을 닫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강원연탄의 생산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70대 박병조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계 소음 때문에 난청을 앓고 있습니다. 나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끝나는 겁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연금 등 노후 대비가 돼 있지 않고 당장 생계가 어려워서 일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취재팀은 2022년 3월 21일부터 4월 11일까지 전국 연탄 제조업체 26곳을 대상으로 업황과 노동조건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26곳 중 20곳이 응답했고, 항목별로 답을 누락한 곳도 있었습니다. 직원 수는 20곳 중 13곳(65%)이 10인 이하 사업체였고, 직원 평균 연령대를 묻는 설문에 답한 14곳 중 13곳(93%)이 ‘최소 60대에서 최대 70대 후반에 해당하는 직원이 근무한다’고 답했습니다. 평균 급여는 응답한 12곳 중 11곳(91%)이 월 200만~300만 원이었습니다. 2022년 법정 최저시급이 9160원이고, 연탄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가 20~30년인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임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직 노동자 지원과 생산 전환 위해 정부 대책 절실

시대적 과제인 ‘탈석탄’을 위해 연탄공장의 퇴장이 불가피하다면, 연탄제조업체와 노동자들에겐 어떤 배려를 해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관해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탄 생산업체 설비구조와 인적 구조 특성상 업종전환, 재취업 모두 현실성 없는 이야깁니다. 종사자 수가 적고 연탄업계 자체가 힘들었던 건 사실이나, 국가 정책으로 인해 폐업이 앞당겨질 상황이니 국가와 기관이 나서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연탄업체 노동자 실직과 관련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대부분 고령 근로자라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부와 유관기관 등이 기금을 마련해 실직자 중 희망자에게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주는 등 대책을 세워줘야 합니다.”

연탄공장은 석탄 저장 장치, 컨베이어 벨트, 윤전기 등 오직 연탄 제조에 특화돼 있고 분진으로 공장 내부가 부식돼 업종전환이나 리모델링이 쉽지 않습니다. 업종을 전환하려면 공장 설비를 바꾸고, 내부 정화도 해야 하지만, 연탄업체들의 재정 형편상 실행하기 어렵고, 이에 관한 정책도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규철 건축공간연구원 건축문화자산센터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대 산업시설인 연탄공장은 폐업 시 환경 정화 기간이 오래 걸리고 큰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상적인 해법은 소유주가 비용을 부담하지 못할 경우 방치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매입해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생시키는 겁니다.”

그는 폐연탄공장 재생 사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이뤄졌던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는 폐공장이 미술관과 레지던스(숙박시설)로, 국내에서는 경기 부천시의 쓰레기 소각장이 미술관으로 공간 재생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연탄공장 시설을 이용해 친환경 연탄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습니다. 왕겨숯, 팜유, 가축 분뇨, 슬러지 등을 연료로 한 친환경탄은 석탄 원료의 연탄과 생김새와 기능이 비슷한데, 탄소배출이 훨씬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주현 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왕겨를 원료로 친환경탄을 개발해 실제 창업까지 했다가 사업을 접었습니다. 마 씨와 환경산업기술원 등은 친환경탄이 아직 개발단계이고 시장 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한석탄공사는 ‘탈석탄 과정에서 연탄제조업체 폐업과 관련한 대책’을 묻는 <단비뉴스>의 정보공개청구에 “연탄 제조업체의 사업 위기는 에너지 시장에서 연탄 소비가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공사는) 석탄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연탄 제조업체와 관련한 정책 의견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연탄업계) 종사자들에 관한 특별지원은 없으며, 고용노동부 등 다른 정부 기관을 통해 실업급여, 취업 교육 등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근로자들의 일자리 보장, 환경 복구 등 다양한 문제가 고려돼야 합니다. 연탄업계의 경우 비중 있게 논의되기는 어렵지만 에너지원과 산업 전환 관점에서 상징적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예산만 던져주는 하향식 정의로운 전환이 아닌, 연탄공장이 있는 지역 및 연탄업계 종사자들의 요구와 특성에 기반한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기후위기시대] 기사 더보기

[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20대 대선, 기후정의, 탈핵’ 포럼
㉙‘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㉛지구 살리는 채식, 학교가 가르치고 선택권 줘야

㉜에너지 자급자족 건물, 이제 선택에서 의무로
㉝전국 8만여 가구가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연료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