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기후위기시대 ㉛ 각급 학교 채식 운영 현황

 

공장식 축산과 육류 소비가 기후위기를 가속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각급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늘리고 있지만, 환경교육이 병행되지 않거나 식단의 다양성이 부족해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2년 3월 25일 전국 17개 교육청과 일선 학교 영양(교)사들에 따르면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2020년 7월 ‘기후위기 시대, 환경교육을 위한 비상선언문’을 발표한 후 전국 초·중·고교에서 ‘월 1회’ ‘주 1회’ 등 정기적으로 채식 급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인천, 충북, 충남, 전남, 울산, 경북, 제주 등 15개 교육청은 월 1회 이상 ‘채식 급식의 날’을 의무 혹은 권장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채식의 날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를 빼고 채소·곡물과 함께 해산물, 달걀, 유제품을 포함하는 ‘페스코 식단’으로 급식합니다.

육류 빼고 해산물 넣는 ‘페스코 식단’이 주류

배윤주 인천광역시교육청 주무관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육류를 우선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경남교육청 산하 학교들은 월 1회 ‘다채롭데이’라는 이름으로 채식 급식을 합니다. 충남 천안의 가톨릭계 학교인 복자여고는 교육청이 지정한 ‘월 1회’보다 훨씬 자주, ‘주 3회 이상’ 채식 급식을 합니다. 학교 재단과 영양사가 모두 환경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은 채식을 비빔밥, 칼국수, 볶음밥 등 ‘특식’으로 제공하고 있어 학생들의 거부감이 적다고 밝혔습니다.

인천, 대구, 경북, 제주교육청 등은 ‘채식 급식 연구·선도학교’를 지정해 예산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채식 급식을 환경 동아리, 텃밭 가꾸기, 채식 요리 실습, 학생·학부모·교직원 교육, 환경·영양 수업 등과 연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수 일선 영양(교)사들은 체계적인 환경교육이 병행되지 않거나 다양한 채식 메뉴를 개발할 여력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매주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시행한다는 송미선 울산 강남초등학교 영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월요일이 아닌 날에 채식 메뉴를 낸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왜 채식의 날도 아닌데 고기가 없냐’고 (불만스럽게) 물었습니다. 학생들이 환경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채식 급식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권수현 서울 면일초등학교 영양교사도 교육청이 ‘그린 급식의 날’을 도입하기 전인 2019년부터 주 1~2회 채식 급식을 운영해 왔는데, ‘(채식의 날이 있으니) 육식의 날도 만들어 달라’는 등 불평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 교육, 레시피(요리법) 연구, 지원책 등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 시행됐기 때문에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 교사는 각급 학교의 채식 확대에 환경교육이 병행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최근 생태환경교육이 늘어나면서 채식에 대한 불만이 줄어드는 것을 느낍니다.”

실제로 2021년 9월 ‘기후위기와 채식’을 주제로 전교생 대상 교육을 한 제주 우도중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감상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변화는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았어요. 동물성 고기를 줄이고 1주일에 한 번씩은 채식을 해야겠습니다.”

영양교사 개발 여력 없어 메뉴 다양성 부족

채식 급식이 늘면서 메뉴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영양(교)사들도 많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경남 창원의 한 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학생들의 기호, 영양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식단을 짜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채식을 먹게 하려고 회오리감자, 새우튀김, 연근튀김 등 기름에 튀기는 요리를 많이 하는데, 건강에는 좋지 않아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송미선 울산 강남초등학교 영양사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채식 급식을 비빔밥, 볶음밥, 잔치국수 등 학생들이 선호하는 특식으로 제공하는데, 그렇게 되면 탄수화물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단백질 등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육청에서 레시피를 개발하고 자료를 공유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권수현 영양교사는 2021년 11월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기후위기시대의 먹거리 생태전환교육 포럼’에서 “채식 전문점과 협업해서 학교 급식용 레시피를 개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권 교사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들의 급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지만, 환경적으로 열악해 채식 급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는 채식 메뉴를 추가로 개발해야 한다면 영양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여주거나 보조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들부터 채식 실천 모범 보여야

2021년 11월 울산교육청이 주최한 ‘슬기로운 먹거리 포럼’에서 성정희 학교급식정책모니터단 학부모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채식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학부모 교육을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과 학교가 연계해서 교육할 수 있다면 채식이 훨씬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는 취지였습니다.

2022년 2월 제주도의회가 채식 급식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 시민단체들과 함께 참여한 오인숙 제주도교육청 장학사는 ‘어른들이 채식의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채식을 실천하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아니라고 합니다. 기후위기 책임이 큰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학생들에게만 채식을 실천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채식을 실천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학생들이 채식을 싫어한다고 해서 식단에서 뺄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어른들이 먼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오 장학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막상 정부는 축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전국 각 도청에서는 축산업을 키우는 부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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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소리뉴스]
① '석탄 퇴장' 급한데 신규발전소 더 짓는 한국
② '나만 지구 지켜?’ 불안과 실망을 넘어서
③ 정부·기업의 기후 대응, 시민이 압박해야
④ 석탄발전소 ‘질서 있는 퇴장’을 서둘러야
⑤ 썩은 당근 쏟으며 ‘위험’ 호소한 청소년들
⑥ 탄소중립 외치며 석탄발전·공항 짓는 위선
⑦ 기후과학자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
⑧ 개발도 안 된 핵융합 대신 자연 태양광 투자를
⑨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국가의 의무로
⑩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전' 조목조목 따져보니
⑪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⑫ 더 큰 재난 막으려면 원전 아닌 자연에너지로
⑬ ‘탄소감축 과정에서 피해 떠안는 노동자 없도록
⑭ 소고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두부의 20배
⑮ '각자도생' 대신 서로 돌봐야 재난 이긴다
⑯ 쓰레기 여러 트럭 나오는 전시회는 '이제 그만' 
⑰ 지구가 깨끗해질 때까지 달리기로 했다
⑱ 화석연료에 여전히 돈 쏟아붓는 공적금융
 소송으로 입 막는 기업, 굴하지 않는 기후행동
⑳'기후재난 당사자가 애타게 전하는 위험 신호
㉑유행 따라 사고 버리니 지구가 열받았네
㉒‘온난화 주범’ 대기업에 ‘기후정의’를 압박하다
㉓‘신공항’ 대신 ‘정의로운 전환’에 집중 투자를
㉔먹거리 전환이 에너지 전환만큼 중요하다
㉕주민협동조합 이익공유로 ‘무석탄·무원전’ 확대

주요 정당 지도자들, 탄소중립 로드맵 제각각
㉗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㉘20대 대선, 기후정의, 탈핵’ 포럼&rdquo
㉙‘태양광 괴담’ 가고 나니 ‘이격거리’가 남았다
㉚위기 해결의 열쇠 함께 찾는 인문·과학 연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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