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102. 농촌 주민참여 재생에너지 현황과 과제
지난해 10월 22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 적덕2리 소지경로당. 1층짜리 건물 밖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옥상에 오르자, 지붕 경사를 따라 설치된 16개의 태양광 패널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2021년 11월 설치된 이 태양광발전소는 50킬로와트(kW) 규모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 공모사업에 따라 설치됐다. 설비비 9700만 원 중 약 70%인 7200만 원을 보조금으로 받았고, 나머지 2500만 원은 신기섭(71) 이장이 은행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신 이장은 “대출금 상환이 끝나고 올해 6월이 되면 월평균 100만 원씩 마을 수익이 생길 것”이라며 “주민 대상 치매 예방 수업을 진행할 전문강사를 초빙하거나,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로당 지붕 햇빛발전소에서 월 100만 원 마을 수입
“봉화군에 태양광이 많은 편이에요. 전임 군수(엄태항)가 태양광 설치를 많이 지원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적덕2리가 제일 가정용 태양광 설치 비율이 높아서 (공모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던 거죠.”
신 이장에 따르면 적덕2리 주민들은 3kW 규모 가정용 태양광 설치비용을 70% 지원하는 산자부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실적이 마을 단위 공모사업 선정에 도움이 됐다. 이 마을에서 미등록 건축물을 제외한 72개 가구 중 62가구에 가정용 태양광이 설치돼 있다고 한다. 신 이장도 2021년 7월 집에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는데, 방 3개짜리 25평 주택의 월 전기료가 약 8만 원에서 2만 원 이하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봉화군은 2020년 3월 ‘봉화군 에너지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에너지 사업기금을 조성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에 낮은 이자로 융자 지원을 해왔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농가 소득을 높여 지방소멸을 막자는 취지였다. 마을 기금 등 공동의 수익을 창출하는 ‘주민수익형’, 국공유지 등을 임대해 발전소를 설치하고 수익금을 배당받는 ‘협동조합형’, 개인이 농사짓는 땅에서 전기도 생산하는 ‘영농복합형’ 등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었다. 지역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이 농촌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신 이장은 “축사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월 2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 가구가 2개 정도 있다”며 “(태양광 발전 수입이) 귀농에 큰 끄나풀을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마을 창고와 주차장 태양광으로 주민 복지기금 확보
봉화군의 주민수익형 태양광사업 중 첫 사례는 2021년 8월 설치된 상운면 가곡2리 태양광발전소다. 마을회관 부근의 주차장과 창고 지붕에 약 60kW 규모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승용차 6대 정도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 지붕과 아담한 크기의 마을 창고 지붕에서 월 130만 원의 전기료 수익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22일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호건(69) 이장에 따르면 설비비 8200만 원 중 1000만 원은 군에서 보조금으로 받고, 7200만 원은 연 1% 이자에 원금을 10년 동안 나눠 갚는 조건으로 융자 지원을 받았다. 이 이장은 그동안 원리금 상환에 쓰인 돈 외의 수익금으로 마을회관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각 가정에 고기와 쓰레기봉투 등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금 상환이 끝나면 주민총회를 열어 마을 기금 사용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전력계통연결 못 해 재생에너지 확충 제동
태양광발전소는 이처럼 농촌 소득을 늘리는 사업이 되고 있지만, 정부 정책과 한국전력의 미흡한 대응으로 설비 확충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호건 이장은 “태양광은 사람들이 하려고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며 “그런데 현재는 한전의 계통용량 문제로 설치하려고 해도 못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이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전력계통에 받아들일 수 있는 설비를 확충하지 못해, 각 지역에서 태양광 설비를 늘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산자부에 따르면 2023년 12월 현재 한전에 전력계통 연결을 신청한 1메가와트(MW) 이하 재생에너지 20.7기가와트(GW) 가운데 약 15%인 3GW가 접속 대기 중이다. 특히 정부는 1MW 이하 태양광·풍력이 전력망에 접속신청을 하는 경우 한전이 계통접속을 보장하고 비용을 부담하던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력계통 접속보장제도’를 오는 11월부터 폐지한다고 지난해 말 발표했다.
2020년 6월 설립된 봉화군민녹색에너지협동조합도 전력계통 연계 문제 때문에 사업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봉화협동조합은 국·군유지를 20년 장기 임대해 태양광을 설치하고 그 수익금을 조합원들에게 배당한다. 전체 출자금 규모는 14억 원으로, 지난해 10월 기준 475명의 주민이 가입했다. 1좌당 10만 원의 출자금을 내면 조합원이 되어, 수익률 5.5%의 태양광 발전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다. 현재 연간 1억 원 이상 발전 수익이 발생하는 봉성면 금봉리 농산물산지유통센터 태양광발전소를 포함해 5개 시설을 운영 중이다. 이응옥(83) 봉화협동조합 이사장은 “6곳의 태양광발전소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한전의 계통연결 문제로 잠정 연기됐다”며 “(그래서) 조합원도 추가로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안의 ‘햇빛·바람 기본소득’도 정책 변화로 미래 불투명
태양광·풍력 발전 수익으로 주민에게 ‘기본소득’ 혹은 ‘연금’을 보장하겠다는 전남 신안군의 실험도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신안군은 2018년 박우량 군수 주도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태양광발전사업 이익의 최소 30%를 주민 몫으로 돌린다는 내용이다. 이후 안좌도, 지도, 사옥도, 임자도 등에 총 600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됐고 2025년까지 비금도, 증도, 신의도에도 태양광발전소를 만들어 전체 발전 규모를 원전 1기에 해당하는 1.1GW로 늘리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가입비 1만 원을 내고 조합원이 된 주민들은 발전소와 거주지의 거리에 따라 연간 1인당 60만 원에서 최대 180만 원의 햇빛연금을 지역 상품권으로 받는다. 지난해 5월부터는 ‘햇빛아동수당’이 도입돼 발전시설이 없는 읍면의 18세 미만 아동 2천여 명도 연간 40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신안군은 햇빛연금을 확대하면서 풍력발전에 따른 바람연금도 도입해 사실상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구상을 밝혔으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재생에너지보다 원전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신안군은 2030년까지 신안 앞바다에 8.2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고 전 군민에게 1인당 월 50만 원, 연간 600만 원을 지급할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신재생에너지발전기업 크레도홀딩스의 자회사 크레도오프쇼어가 신청한 신안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 계획이 정부 심사에서 불허됐다. 발전설비용량 2GW, 사업비 10조 원의 초대형 풍력발전 사업인데, 재무 능력을 서류로 입증하지 못했고 해당 지역의 전력계통이 포화 상태라는 등의 이유였다. 지난해 12월 18일 안좌도 신재생에너지주민·군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안좌면 주민 이금배(75) 씨는 “풍력발전이 빨리 되면 좋을 텐데 늦어지게 생겼으니, 정부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햇빛연금 나오는 날 회식하고, 미용실 가고
햇빛연금을 경험한 신안군 주민들은 재생에너지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안좌도 주민 최미순(62) 씨는 “2021년 4월 처음으로 햇빛연금을 받을 때까지 ‘설마’하는 마음이었다”며 “(연금 지급 후) 마을 분위기가 확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연금이 나오는 날 회식을 하거나 미용실을 가는 등 마을의 분위기가 화목해졌다”고 덧붙였다. ‘태양광이 건강에 해롭다’ 등의 뜬소문을 믿고 반대하던 사람들도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햇빛연금이 지급된 후 신안군의 인구 감소세는 완만해지다가, 햇빛연금을 지급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신안군 인구는 2021년에 전년 대비 1.9% 감소했다가 2022년 0.9%로 감소 폭이 줄었는데, 지난해는 0.47%(179명) 증가로 돌아섰다. 전남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한 군이 됐다. 2020년 학생 수가 3명으로 줄어 폐교 예정이던 안좌초등학교 자라분교는 올해 학생 수가 15명으로 늘어 폐교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기후위기·지역소멸 함께 잡는 대안, 놓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와 지역소멸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농촌 재생에너지 전환을 정부가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김영란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 대표는 지난해 12월 11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에서 재생에너지 3배 확대가 거론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세계적 추세인데, 한국은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등 (태양광) 생태계를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민참여형 소규모 태양광 확산을 위해서는 금융 지원으로 초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부지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력계통 불안을 이유로 소형 태양광 고정가격 계약 제도(한국형 FIT)를 지난해 7월 폐지했다. 이 제도는 100㎾ 이하 소규모 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를 한전이 20년 동안 고정된 가격으로 매입해 주어 사업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2024년 산자부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을 전년의 1조 490억 원에서 42.3% 삭감하는 등 태양광·풍력에 관한 재정, 금융 지원을 줄이고 있다. 또 전국 228개 기초 지자체 중 129곳이 이격거리 규제를 통해 학교, 도로, 주택 등으로부터 100~1000미터(m) 이내에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사업도 농지 사용기간 연장 등 필수적인 입법이 국회에서 이뤄지지 않아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독일은 2000년 세계 최초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한 이후 일관성 있게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시설 확충을 유도해 왔다. 특히 농가소득 증대 차원에서 다양한 재생에너지 지원제도를 두어, 2019년 현재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의 10% 이상을 농민이 소유하고 있다. 특히 에네르기도프(Energiedorf)로 불리는 ‘에너지 마을’은 농작물과 함께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하며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인구 2600명인 바이에른주 빌트폴츠리트시는 풍력발전으로 에너지 자급률이 828%에 이르며, 투자자로 참여한 400여 주민의 연간 발전사업 소득이 약 700만 유로(약 101억 원)에 이른다. 2022년 10월 대산농촌재단 주최 국제심포지엄에 참여한 빌트폴츠리트시 토마스 프뤼거 시의원은 “이 돈(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이 마을 안에서 순환하며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환경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점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농촌 주민들도 귀농 촉진 등 지역 살리기를 위해 재생에너지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북 봉화군 상운면의 노영수(55) 면사무소장은 “처음 귀농하게 되면 농사로 얻는 수익 외에 40% 정도는 고정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며 “태양광 발전 수익이 귀농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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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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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유튜쁘랜딩팀 강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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