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103. 친환경농업 위협하는 비산농약
전북 임실군에서 2020년부터 농약을 쓰지 않고 밀과 팥 등을 재배하고 있는 김주희(40) 씨는 2022년 10월 전북의 친환경 인증기관인 아이에스씨(ISC)농업발전연구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난번 검사를 위해 채취해 간 무농약 팥에서 킬로그램당 0.001밀리그램(mg/kg), 0.004mg/kg의 농약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이대로면 행정처분이 날 것 같은데, 미리 소명하실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농약 농사 2년 애썼는데 인증 취소 위기
화학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던 김 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농약을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는데, 당시 제도는 잔류농약 ‘불검출’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김 씨는 무농약 인증을 취소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전화를 받은 시점은 무농약 농사를 지은 지 2년째 되던 해로, 유기농 인증을 받기까지 1년밖에 남지 않은 때였다. 친환경농어업법상 무농약 인증이 취소되면 최소 3년은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다. 그는 귀농하기 전 서울 여의도에서 유기농 밥상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등 일찍부터 친환경 농업에 자부심이 컸기 때문에, 억울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김 씨는 절박한 심정으로 소명 절차에 나섰다. 자신이 농약을 뿌리지 않았고, 주변 농가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온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게 소명 절차의 핵심이었다. 그러려면 김 씨가 농약을 구매하지 않았다는 증거와 다른 관행농가(화학비료와 합성농약을 사용하는 농가)가 해당 농약을 구매했다는 기록이 필요했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19일 자신의 농지 부근에서 <단비뉴스> 취재진을 만나 이렇게 회고했다.
“갑자기 일반농가들을 찾아가서 농약 구매 데이터를 달라고 하면 안 주는 경우도 많죠. 마치 제가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서 내쫓기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친환경농가) 같은 경우는 이웃 농가하고도 잘 지내는 게 정말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면 불안하죠.”
스스로 탐정 자처해 비산 농약 출처 찾아야
김 씨가 자신의 농지 부근 5곳의 관행농가에서 자료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크고 작은 언쟁도 벌어졌다. 결국 임실군 친환경농업협회장이 나서서 농가들을 설득한 뒤에야 필요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김 씨 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논이 진원지로 밝혀졌다. 알고 보니 해당 농지는 첨단장비를 사용해 광범위하게 농약을 살포했다. 특히 농약을 뿌린 뒤 일주일 만에 태풍이 불어, 농약 성분 확산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김 씨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산됐다고 하니 다들 놀랐고, 앞으로도 언제 어떻게 농약이 검출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걱정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자료를 제출한 김 씨는 다행히 그해 12월 소명 내용을 인정받았다. 김 씨는 정성으로 키운 무농약 농산물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홀로 감당했던 소명 과정에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일을 한번 겪고 나니까 걱정이 더 심해졌어요. 누가 언제 갑자기 제 밭에 농약을 뿌리거나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걸 제가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방으로 뚫려있는 농촌에서 벽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온실가스 줄이는 친환경농업, 농가엔 험난한 길
친환경농업은 생물종을 보호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토양의 오염을 방지해 비옥도를 높인다. 또 온실가스와 폐기물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환경보호 측면에서 권장되어야 할 농법으로 꼽힌다. 정부도 정책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 최규일 사무관은 지난 1월 23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친환경 농가의 농약 검출과 관련해 “비의도적인 검출일 경우에는 탐문조사를 통해 농약 구매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관 차원에서 함께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인증기관에서 이 절차들을 부당하게 처리한다면 민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인증기관에 대한 점검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방침과 달리 2022년 5월 제주에서는 비의도적으로 농약이 검출된 친환경 농가에 소명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아 행정소송까지 벌어졌다. 당시 18년째 서귀포시에서 유기농으로 감귤을 재배해 오던 김영란(64) 씨는 친환경인증 갱신 신청 과정에서 검출된 잔류농약 때문에 유기농인증 취소 처분을 받았다. 자신이 치지도 않은 농약이 검출되자 김 씨는 인증기관에 ‘소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관은 관행농가와 유기농가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것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씨는 농사도 포기한 채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인근 관행농지 감귤밭에서 시료를 채취해 다른 기관에 검사를 맡겼다. 김 씨의 감귤농장에서 검출된 것과 같은 성분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기존 인증기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 씨는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당시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인증기관이 법에 명시된 청문 기회를 농가에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행심위 판결은 2022년 12월에 났지만 취소된 유기농 인증이 복구되기까지는 약 3개월이 걸렸다. 그해 생산한 김 씨네 감귤은 모두 폐기 처분됐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 김 씨의 감귤은 껍질에 벌레가 먹은 흔적이나 검은색 반점 등이 있어, 일반 농산물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김 씨는 “어렵사리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헐값에 내다 팔 수는 없었다”며 “액수로만 따지면 1억 원에 가까운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길고 지루한 싸움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김 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행정심판과 별개로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지만, 당시 인증기관이었던 제주대 산학협력단이 인증 업무를 다른 기관에 이전해 소송 대상이 사라졌다. 김 씨는 결국 손해배상청구를 포기했다. 지난 1월 11일 단비뉴스 취재진을 만난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소송을 하려면 변호사 비용 같은 것도 계속 들 텐데 이것마저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리고 계속 이렇게 싸우다가 쓰러지면 내 생활이 마비되고 이런 피해가 더 크겠다 싶었죠. 그래서 결국 손해배상청구를 안 하기로 결정했어요.”
‘불검출’ 기준 완화했지만 실효성은 의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13일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해 ‘불검출’이 원칙이었던 농약 잔류허용기준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고시한 농약 잔류허용기준의 20분의 1 이하’로 조정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친환경 농가의 억울한 피해가 줄어들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최근 농촌 현장에서 드론이나 헬리콥터로 방제작업을 하는 사례가 늘면서 바람에 비산되는 농약으로 피해를 볼 우려는 더욱 커졌다.
지난 1월 12일 서귀포시 동흥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효준(55) 제주친환경농업협회장은 “항공방제가 상용화되던 2014년, 15년에는 (도청을 상대로) 자주 싸웠다”며 “허용기준이 불검출에서 1/20로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농가들은 매일 노심초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촌 고령화와 함께 농약 방제를 위한 드론이나 헬리콥터 활용이 증가하자 정부는 항공방제업 신고제도를 도입했다. 항공방제업을 하려면 항공방제 기술자를 1명 이상 고용해야 하며, 기술자는 풍향과 지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균일하게 농약을 살포하고 관련 기록을 행정기관에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제도에 따라 국내에 신고된 항공방제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총 1459곳이다.
항공방제업자들은 헬리콥터나 드론에 의한 비산농약 피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수원농자재에서 만난 이 회사 명성진 대표는 “드론이 날아다니는 높이는 1m가 채 안 되고, 액적(액체방울)의 크기가 일반 노즐(분사구)로 방제할 때보다 두껍다”며 “그만큼 바람에 날리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환경 농가들은 우려가 크다. 명 대표는 “실제로 방제를 하러 나가면 의뢰를 한 농가(관행농)와 친환경 농가 사이에 마찰이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관행 농지와 친환경 농지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친환경 필지임을 알리는 표찰(깃발)이 전부다.
2050년까지 친환경농업 30% 목표 정했지만
정부는 2050년까지 친환경농업 면적을 전체 농지의 3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2023년 기준 한국의 친환경인증 면적은 7만 헥타르(ha)로 4.9%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현황을 보면 인증 농가는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추세다. 2017년 5만 9423호였던 친환경인증 농가가 2022년에는 5만 722호로 줄었다. 이 기간에 농약사용기준 위반 등으로 매년 2천여 농가가 인증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 중 상당수 농가는 비산농약의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친환경농업으로 탄소중립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처럼 다양한 지원책과 ‘과정 중심’의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일본 등은 친환경농업을 인증하는 기준으로 잔류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물다양성, 잡초의 밀도, 작물의 건강 상태, 토양의 비옥도 등을 살핀다는 것이다.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최동근 사무국장은 지난 6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EU나 독일 등 해외에서는 유기농업의 환경적 가치를 많이 고려하기 때문에 유기농업과 유기농산물을 바라보는 정부와 소비자의 시각이 우리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농약 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유기농의 가치보다는 농약이 검출됐느냐 아니냐에만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U는 유럽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농가 직불제와 친환경 농가에 대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또 2020년 5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그린딜’ 세부 전략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유기농업 면적을 전체 농지의 25%로 확대하고 농업예산의 40%를 기후위기 대응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2050년까지 유기농업 비율을 25%로 높이기 위한 녹색식량시스템전략을 수립했다. 관행 재배에서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농가에 유기종묘 구입 등을 지원하고 유기농 빌리지 육성을 준비하고 있다.
최동근 사무국장은 “친환경농업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 중 하나”라며 “친환경농업을 계속 위축시키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보다, 실질적인 지원책을 모색하고 (친환경 농산물을 선택하도록)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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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유튜쁘랜딩팀 강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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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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