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들이 원하는 건 ‘살기 좋은 환경’

 

[앵커]

충북 제천시가 앞으로 천 명 정도의 고려인을 제천시민으로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올가을에 3백 명 정도가 들어올 예정인데, 이들이 할아버지 나라에서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미리 챙겨봐야 할 게 많습니다.

우현지 기자가 이미 고려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광주 월곡동 고려인 마을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1937년, 소련의 스탈린 정권은 소수민족 강제 이주를 시작합니다.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했던 우리 동포들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16만 명 정도가 이렇게 강제 이주됐는데, 이들의 후손이 바로 ‘고려인’입니다.

이들 가운데 8만 명의 고려인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로 돌아와 살고 있습니다.

(현장영상)

광주 월곡마을은 대표적인 고려인 집단 거주지역으로, 전국 최초로 고려인 정착 지원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 곳입니다.

월곡동 고려인 마을에는 7000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골목길에는 한글과 러시아어 간판이 뒤섞여 있고, 치킨집 메뉴판은 한글과 러시아어를 모두 사용합니다.

휴대전화 대리점의 안내 문구도 마찬가집니다.

월곡동에서 고려인들이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년 전부터 그들의 교육, 통신, 의료를 지원해 온 종합지원센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스탠딩]

이곳 고려인 종합지원센터에는 어린이집, 청소년문화센터, 고려인들을 위한 자체방송 같은 각종 편의시설이 있어, 마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적응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문학 교수로 30년을 재직하다 지난 2010년 자녀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김 블라디미르 씨도 초기 정착 과정에서 종합지원센터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한국은 영원한 고향’이라면서도 한국어를 몰라 정착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원센터에서 무료 건강검진을 받고 일자리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김 블라디미르/ 고려인]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입니다.”

“한국을 고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힘들 때. 바쁠 때 여기서 다. 해결 다 고려인센터에서 해 줬습니다. 여기서 시집도 내게 해 줬습니다.”

“우리 고려인에게는 여기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되고 있습니다.”

종합지원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신조야 씨도 고려인입니다.

2002년 시베리아에서 들어와 종합지원센터 설립에 참여한 신 씨는 고려인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제일 중요한 것으로 언어 교육과 일자리 확보를 꼽았습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첫번째. 언어와 일자리죠. 이분들 돈 벌어야 먹고 살지 돈 못 벌면 왜 거기 붙어있겠어요.”

방송이나 문화센터 프로그램처럼 고려인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기존 시민들과 고려인들을 연결하는 디딤돌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고려인들이 쉽게 살려면 고려인센터에서 하나 열어놓고 돌봐주세요."

"제천에서도 고려인 돌봐주는 데가 있구나 그러면 다 거기로 몰려들어요. "

월곡동 고려인 마을에는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고려인 문화관이 광주시민들과 고려인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 역사는 물론 고려인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같은 조상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 관장]

“160년 동안 모국어를 잊지 않고 기록해 온 것들이, 우리나라의 국가지정기록물로 선정되었다는 게 (고려인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인 거죠.”

“그분들이 항일 독립운동으로 이룬 성과가 많기 때문에, 우리 동포로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오는 10월이면 제천에도 본격적으로 고려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제천시는 이들이 입국하면 세명대 등 제천 지역 대학 기숙사에서 3개월 동안 지내며 언어와 문화, 생활을 익히도록 한 뒤 일자리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고려인 입국이 노동력 부족이나 인구 소멸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지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좋은 생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비뉴스 우현지입니다.

(영상취재 : 우현지 / 편집 : 우현지 / CG : 우현지 / 앵커 : 양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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