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러시아 민담. 부잣집 옆에 사는 한 농부의 이야기다. 부자에게는 암소가 한 마리 있었다. 가난한 농부는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갖지 못할 재산이다. 농부는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마침내 하느님은 농부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대답했다. "이웃집 암소를 죽여주세요."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생뚱맞은 결정을 내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 대다수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던 독일 사회가 극단적 사례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막대한 배상금에 짓눌린 독일은 국가 경제 재건에 어려움을 겪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탐험대가 호주에서 흑색 백조와 마주쳤다. ‘백조의 깃털은 하얗다’는 수천 년간 이어진 고정관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여기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발생함을 뜻하는 ‘블랙스완’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과거의 경험이나 데이터를 토대로 아무리 정밀한 분석을 시도해도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은 큰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최근 한국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한 재난도 마찬가지다.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의 지진은 시민들에게 물질적 피해뿐 아니라 지진 트라우마라는 정신적 피해
샤워실의 바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중앙은행의 좌충우돌 경기 대응을 비판하며 쓴 표현이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자고 온수 꼭지(통화량 확대)를 열어젖혔던 중앙은행이 뜨거운 물, 즉 물가상승에 화들짝 놀라 다시 냉수 꼭지(통화 긴축)를 황급히 틀어 경기를 냉각시킨다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더욱 강력해진 정부와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중앙은행의 부적절하고 과도한 대응이 위기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에 따른 고통은 국민들이 겪는다. 그래서 정부와 중앙은행의
“여러분은 왜 언론인이 되려고 합니까? 그리고 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까?”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왜 언론인이 되려고 하는가’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포괄적 질문에 학생들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선배 언론인인 김 이사장은 예비언론인들이 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대화 방식으로 강의를 이끌었다. 학생들의 말문이 막히면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왔죠?”언론인에게 인문학이 절실한 이유김 이사장의 질문에 상식공부, 논술공부,
Q. 청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A. 실업률 등 공식적 통계를 위한 청년(15~34세)가 있고, 사회적 범주로서의 청년이 있다. 저는 지금의 청년이 이전과는 다른 사회적·경제적 위험 속에 놓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즉 저성장 시대, 고령화시대, 산업구조의 변동 등에 따라 일상화된 실업과 고용불안, 연금 갈등과 노후 등 문제를 겪고 있다.Q. 헬조선, 수저계급론 등 청년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는 신조어가 생기고 있다. 청년들이 무엇 때문에 가장 고통 받는다고 생각하나?A. 예전에는 20대를 정치에 동원하기 위해 정치권이 심판을
Q. 청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A. 요즘 여기저기서 청년에게 흙수저란 표현을 쓰며 청년에게 좌절과 실패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나는 청년을 흙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자양분이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배를 채울 그릇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도 하는 그런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청년은 미래의 소중한 자원이다. 청년들이 젊은 시기에 직업을 갖고 자신의 꿈을 쫓아 성취를 이루는 것은 한 나라의 발전과 창조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젊다는 것의 힘
지난해 말 벌어진 쯔위의 ‘청천백일기 해프닝’은 중국 민족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양안관계에 비판적인 민진당이 집권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쯔위가 흔든 청천백일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사로잡힌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세게 건드렸다. 대만은 중국의 자존심이다. 과거 청일전쟁 때 중국은 일본에 대패해 대만을 빼앗기지만, 2차대전에서 일본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 되찾은 대만은 ‘강대국 중국’의 위상을 회복했다는 증거이자, 중국의 자존심이 걸린 사활적 요충지이다.클린턴 행정부에서 중미관계를 담당했던 수전 셔크는 저서 <판도라의 상자 중국
며칠 전 친구네 가족이 한국을 떠났다. 떠나기 전 배운 기술은 중국요리였다. 베를린에 있는 한인 타운에서 중국음식점을 차린단다. 아버지 퇴직금을 탈탈 털어 취득한 영주권이라고 했다. 새 출발을 앞둔 친구의 표정은 설렘 대신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들 가족이 독일행을 택한 건 내 친구 때문이었다. 그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2년 넘게 백수 생활을 했다. 그의 동생도 상황은 비슷했다.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그의 아버지는 ‘희망퇴직’을 하던 날 온 가족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평생 앞치마 한번 둘러본 적 없던 친구와 아버지는
뉴질랜드는 한때 ‘선거에 의한 독재권력’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단일 정당이 막강한 힘을 독점하는 국가였다. 특히 1984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집권한 노동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기존의 진보 정책에서 신자유주의 기조로 과감하게 정책을 선회했다. 그 결과 ‘약육강식’의 경쟁논리가 강조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집권 정당이 지나친 권한을 독점하는 정치제도는 곤란하다’는 각성이 일어났고,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담론이 사회적으로 확산됐다.뉴질랜드는 1990년대 중반 독일식 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에르코 아우티오(Erkko Autio) 교수는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과 인적자원을 자랑하는 핀란드가 혁신적 벤처기업을 키워내지 못하는 현상을 ‘핀란드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핀란드 정부는 국가 법인세수 중 25%를 낼 만큼 경제적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정보통신기업 노키아에게 국가적 지원을 몰아주었다. 반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스타트업(신생기업)들은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고전하거나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노키아가 애플, 삼성에 밀리자 다른 성장 동력이 없던 핀란드 경제는 2009년
“사람이 물속에 있으면 더 커 보이거든요.”올해 초 어느 캄캄한 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칠흑 같은 강물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날씨도 흐려 눈앞 50센티미터(cm)도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참을 헤매다 막 포기하려던 찰나, 강물 속에서 시신이 불쑥 떠올랐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어 터진 망자의 모습은 평소 강심장을 자랑하는 수난구조대원들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다.물속 시신은 강심장 대원들에게도 충격서울시 소방방재본부 119특수구조단 반포수난구조대의 정창식(46) 팀장은 구조대원으로 18년간 일하면서 많은 목숨을 구했지만
한 달 이상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 때문에 충북 제천지역의 외식·유통 등 서비스업계도 고객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들이를 꺼리는 소비자들의 전화, 온라인 주문이 늘면서 일부 업소들은 배달서비스 확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매장 손님 반토막 났지만 오토바이는 신바람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A찜닭의 경우 메르스 확산 전인 5월과 비교해 이달 중 가게로 찾아오는 손님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러나 배달주문이 평소보다 20% 정도 늘어 매출 감소분을 벌충하고 있다고 밝혔다. 홀매니저 정주연(35·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생태계에도 재난이 시작됐다. DDT가 개발되면서부터다. 뮐러가 살충제로 개발한 DDT는 말라리아모기를 비롯한 해충을 죽이는 데 놀라운 효과를 냈다. 그런데 이 기적의 살충제가 자연을 파괴할 뿐 아니라 먹이 사슬을 통해 인체에까지 축적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DDT 사용은 보다 쉬운 방법으로 대량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 편리함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태계를 오염시켜 식량 안보, 나아가 인간 안보를 초래한다는 함정이 있다. 당장은 이익창출에 도움이
지난달 24일 오전 9시,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박영인(당시 2학년)군과 허다윤, 조은화 양의 가족 등 10여 명이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안산분향소 앞에 대기 중이던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안산분향소를 출발하는 이 버스가 두 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앞 분수대 광장. 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45)씨는 지난 2월 26일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 분수대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이날은 박씨의 몸 상태가 평소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