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성과연봉제

▲ 박고은 기자

107명의 목숨을 앗아간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2005년 4월, 만원 통근 전철이 오사카로 가는 커브 길에서 아파트와 부딪쳤다. 직접 원인은 기관사가 도착 시각 지연을 만회하려고 서두른 탓이었다. 하지만 사고조사위의 결론은 달랐다. 수익 극대화에 맞춘 열차 운행일정, 정시운행을 못한 기관사에 대한 징벌제, 성과평가제 도입… 효율만을 중시해온 철도회사의 기업 체질이 근본 원인이라고 꼽았다. 이 사건은 수익성 중심의 성과 추구가 공공부문에서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정부가 성과 기준을 제시하고 ‘수치상’ 성과를 냈다는 국민연금공단을 보자. 기초생활수급자 70% 이상을 취업 성공 패키지에 연계했을 때 기관평가 가산점을 줬다. 그러자 ‘근로 능력 있음’ 판정 비율이 종전의 5%대에서 15%대로 대폭 늘어났다. 한 해 20만 건가량의 평가를 2분에 한 건꼴로 처리했으니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수급자 입장에선 ‘성과’가 아니었다. 대동맥류로 두 차례 수술을 받고도 ‘근로 능력자’ 평가를 받아 일하던 청소부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공공부문에 있어 ‘성과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던진다. 공공기관에선 객관적 수치를 높이거나 일을 빨리 처리한다고 해서 효율적이라 할 수 없다.

▲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는 수익성 중심의 성과 추구가 공공부문에서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Runaway Train> 캡처본

2013년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한 이후 사실상 성과연봉제를 운영 중인 서울대병원. 환자 수가 늘지 않았는데 의료 수익이 증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환자 1인당 진료비가 2013년 71만 6,593원에서 2014년 76만 2,425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 동부병원에서는 지난해 성과연봉제 간판을 내렸다. 수익창출이 어려운 취약계층보다 일반 환자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이 퇴색된 탓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보듯 측정하기 어려운 공공부문의 성과 기준은 수익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환자 만족도 등 의료의 질을 평가 기준으로 수치화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과를 냈다’는 정부의 착각은 국민의 피해다. 

“성과 측정이 어려울수록 간단한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벵트 홈스트롬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성과 중심의 급여 체계에서는 노동자가 성과 측정이 쉬운 부문에만 매달린다. 교사의 월급을 학생들의 시험 성적과 연계한다고 치자. 교사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독립적 사고 능력을 계발하는 데엔 시간을 거의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당근’이 필요하다면 제로섬 방식의 성과연봉제보다 기본연봉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더 적합해 보인다. 정부가 제시하는 성과연봉제는 누군가의 임금을 삭감해 다른 사람에게 얹어 주는 제로섬게임이다. 성과연봉제의 이런 특성은 ‘성과로 인정되는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공공성을 해친다. 효율을 따지기에 앞서 공공부문이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존재 이유부터 곱씹어볼 일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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