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남루한 차림 속에 자신을 감추고 ‘일’에 집중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암행어사 출두요’하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때는 지방 수령들의 비리를 다 파악한 뒤 벌을 줄 시점, 혹은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주는 순간이었다. 지난 19일 일종의 ‘민정시찰’을 나간 곳에서 긴급전화 119를 걸었다가 자신에게 불친절하게 응대한 소방관 두 명을 인사조치 당하게 만든 김문수 경기도지사와는 많이 달랐다는 얘기다. 김 지사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노인요양원에 갔다가 암환자 이송체계를 문의하기 위해 남양주소방서에 119전화를 걸었
소설의 서정성과 마당놀이의 익살산굽이를 돌고 돌아 해발 600m 표지판을 지나자 차창 밖으로 온통 하얀 들판이 펼쳐졌다. ‘설국’까지는 아니어도 싸락눈을 뒤집어 쓴 듯 메밀꽃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메밀 막국수’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가 했더니 이내 봉평읍이었고 읍내가 모두 축제장이었다. 소설 한 편의 힘이 이토록 큰 걸까? 이효석과 그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주제로 하는 ‘효석문화제’는 해마다 방문객이 7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무렵 평창 일대 고산지대의 빼어난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추억 속으로 떠
결혼풍속도- 브뢰헬의 그림과 체홉의 연극 사이 나이 찬 처녀총각들은 추석 연휴에 스트레스깨나 받았으리라. 만나는 친척마다 인사말이 돼버린 “결혼은 언제 해”라는 말에 대답이 궁색했을 테니까. 나 자신 친지들의 결혼식에 다녀온 것만도 이미 십여 차례, 은근한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갈 때는 결혼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저렇게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하객이 너무 적은 것도 안쓰럽지만 많다 해서 꼭 축복받은 결혼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결혼식은 어느새 가족친지와 마을의 잔치가 아니라, 가문의 위세,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정방송 복원과 조중동방송 광고직거래 저지를 위한 총파업 출정식’을 갖고 언론노동자의 연대투쟁을 선포했다. 이날 출정식에는 언론노조 산하 112개 사업장 중 파업찬반투표를 한 70개 사업장에서 10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이강택 언론노조위원장은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이명박 정권에서 무참히 짓밟힌 언론 현실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1만5천 여 언론 노동자들은 이제 침묵을 깨고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선다”고 말했다. 엄경철 KBS새노조 위원장은 “조선 동아 중앙
지난 15일 저녁 청풍호반무대에서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필 앤 피버 나잇’ 에서는 공연 내내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객석의 외국인 몇 명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청풍 레이크 호텔에서 묵고 있던 참가 감독들과 심사위원들이었다. 미국에서 온 휘트니 다우 감독도 그 중 하나였다. 그 밤 내내 ‘음악을 즐기는 기쁨’에 푹 빠져있던 그는 다음날 폐막식에서 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의 작품 <아이티, 음악의 전사들>이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것이다.“영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운영진과 자원봉사자 등 많은 분들이 좋은 음식으로 몸
‘원 썸머 나잇’ 마지막 무대는 역시 ‘필&피버’라는 타이틀처럼 감동과 열기로 가득했다. 15일 저녁 8시, 청풍호반무대에서 인도 영화 <천상의 소리, 발 간다르바>가 상영된 뒤 음악프로그램 ‘원 썸머 나잇’의 마지막을 장식할 ‘필&피버 나잇’이 이어졌다. 이승열, 국카스텐, 노브레인이 공연한 라이브 무대는 관객들의 함성과 몸짓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이승열, “영화와 음악은 다른 동네이면서도 연결돼 있어” 이승열은 무대에 서기 전 기자와 만나 “영화와
몇 달 전 최원석(27) 기자가 아끼던 구두가 망가졌다. 정확히 말해 밑창에 구멍이 났다. 4년 전 인도에 여행 갔을 때 우리 돈 3만 원 가량을 주고 산 태슬 로퍼(tassel loafer, 바닥이 얇은 구두의 한 종류)였다. 연갈색 낙타 가죽이 발 모양에 자연스레 길들여져 즐겨 신던 것이라 꼭 고치고 싶었다. 서울 종로의 한 수선집에 갔더니 구두를 이리저리 살펴보곤 “웬만하면 좀 신다 버리라”고 했다. 밑창을 덧대는 일이 너무 어려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단다. 다른 수선집도 여러 곳 찾아갔지만 대답은 비슷했다. “맡겨도 한 달
연극 속의 아침이 오자 무대가 얼굴을 드러냈다. 한옥이었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좌우 하나씩 마주보는 방이 있다. 다색(茶色)의 나무는 하얀 벽을 감싸며 옛 집의 소박한 틀을 돋보이게 했다. 무대에는 한 동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찬찬히 집을 살펴보라고 시간을 주는 것처럼. 정적이 지난 뒤 방에서 나온 수수한 차림새의 노부인. 그녀가 대청을 가로질러 뜨개질통 앞에 앉자, 마당 쪽에서 어르신이 천천히 마루 위로 올라왔다. 느릿느릿 이야기를 시작하며, 노부부는 아침 해를 보듯 먼 시선으로 관객석을 훑었다. 올해 86세의 배우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