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61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의 고발
‘기후변화 부정론자’라는 비판을 받아 온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WB) 총재가 지난 15일(현지시각) 사임 의사를 밝혔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재무부 차관을 거친 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총재 지명을 받은 그는 줄곧 환경단체의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2007년 “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의 연관성을 믿지 않는다”고 발언한 전력이 있고, 세계은행 총재로서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데다, 지난해 9월 한 행사에서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과학계의 합의를 믿느냐’는 질문에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답을 피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기후변화를 부정하면서 국제적 기후위기 대응 합의인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 맬패스 체제의 세계은행은 화석연료에 금융 지원을 계속하고 개발도상국을 위한 기후펀드 조성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후운동가들은 두 사람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의 발목을 잡은 대표적 인물 명단에 넣고 있다.
대기업, 청부 과학자, 정치인, 언론의 합작
세계적 기후과학자인 마이클 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시사만평가 톰 톨스와 함께 낸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는 이들과 같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방해해 왔는지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하키스틱 곡선’으로 유명한 만 교수는 최근 1000년 동안의 지구 연평균 기온을 추정해 분석한 그래프를 통해 산업혁명 이후 15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급격히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만 교수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지구에 열을 가두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산화탄소 증가는 화석연료 등 인간 활동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단계별로 부인해왔다고 설명한다. 첫 단계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한다는 사실,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근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후변화를 인정하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연의 메커니즘으로 기후변화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기후변화의 결과가 많은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롭다고 주장한다.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엔 이미 늦었고 행동에 나서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저렴한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와서는 기술낙관주의를 신봉하며 원래의 문제보다 더 위험한 기술적 해법을 내놓는다.
이렇게나 질기게 기후변화 부정론을 고수하는 집단은 누구일까. 만 교수에 따르면 코크인더스트리, 엑손모빌 등 화석연료로 돈을 버는 대기업과 이들의 후원을 받는 사설 기관과 단체, 과학자, 정치인 등이다. 석유기업 등은 싱크탱크나 이익단체들에게 대규모 후원금을 주고 ‘청부’ 과학자들을 고용해 기후과학자들을 공격했고, 기업 편에 기운 보수 정치인은 이들 과학자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만 교수는 대기업들이 미국입법교류협회(ALEC)를 통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을 마련하고 통과를 돕는 호의적인 정치인들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내놓는 법안들은 환경 규제를 약화하고 기후변화가 실제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재생에너지 장려정책을 폐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비중 있게 다뤄줌으로써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수법은 담배 업체들이 담배의 유해성을 부인하기 위해 과학자와 정치인, 언론을 동원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청부 과학자 중에는 담배의 유해성을 부인하는 활동과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활동에 모두 나선 사람도 있다고 만 교수는 밝혔다.
루퍼트 머독 미디어 등의 기후변화 부정론 보도
만 교수에 따르면 기후변화 부정론의 확산에는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폭스뉴스> 등 언론재벌 루퍼드 머독의 미디어 계열사들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허위정보를 줄기차게 유포했다. 또 <워싱턴타임스> 등 미국의 우파 신문, 러시 림보와 글렌 벡 같은 우파 라디오 진행자도 기후변화 부정론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뉴욕타임스> 등 진보적 매체도 ‘균형 보도’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자처하는 비외른 롬보르의 칼럼을 비중 있게 실어주는 등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이 만 교수의 비판이다.
만 교수는 미국국립과학원(NAS)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의 권위 있는 과학기관과 단체들, 각국 기후과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유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등이 모두 기후변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인정했음을 강조했다. 기후 관련 과학논문의 97% 이상이 기후변화를 인정한다고 한다. 그는 배경이 의심스러운 일부 과학자들이 동료 평가를 받지 못한 논문 혹은 블로그 글로 기후변화를 부인할 때, 언론이 비중 있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만 교수와 톨스 시사만평가는 설득력 있는 글과 데이터, 재치 있는 그림을 통해 기후위기가 인류의 생존과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거대한 위협이며, 우리에게 이를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과학을 왜곡하고 부정하며 기후위기 대응전선을 교란하는 세력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음을 고발한다.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는 오래전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규명하고 경고해 온 기후위기를 왜 인류가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답을 주는 책이다.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환경부, 시사현안팀 박정은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실,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집중해 진실에 다가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