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62 ‘공방 꽃피는 삼월에’ 송민서 대표
지난 2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30길 간데메공원 근처의 골목길. 음식점과 생활용품점 등 다양한 매장이 즐비해 전통시장 분위기가 나는 이곳에서 평범하지 않은 상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출입문 왼편에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마대와 정수기 필터를 모으는 플라스틱 박스가 있고, 오른편에는 ‘자원 수거 거점’ ‘종이팩-우유팩과 멸균팩’ ‘페트병-투명병만’ 등의 안내 사항이 빼곡히 적힌 칠판이 놓여 있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보니 ‘공방 꽃피는 삼월에’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제로웨이스트 & 리필샵’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수제 비누, 고체 치약 등을 만들고 쓰는 사람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재활용을 늘림으로써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 공방(꽃삼월)은 친환경 비누, 가방(에코백), 행주, 고체 치약, 대나무 칫솔, 스테인리스 수세미 등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제품들을 상점 양쪽 벽면 선반에 다채롭게 진열, 판매하고 있었다. 또 세탁 세제와 바디워시(액체 목욕비누), 샴푸 등을 고객이 가져온 용기에 덜어 판매하는 리필 매대도 운영하고 있었다. 공방 안쪽에는 수제 비누를 만드는 4인용 은색 테이블이 자리했다. 테이블 위에 구연산, 온도계, 절단기 등 수제 비누를 제작하는 도구와 재료들이 보였다. 그 반대편 테이블에서 송민서(41) 대표가 노트북 컴퓨터 등을 앞에 놓고 상점 경영과 관련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두 아들을 둔 송 대표는 첫 아이를 임신했던 2012년 여름, 피부 알러지로 손이 트는 증상을 경험한 뒤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쓰던 손 세정제에 함유된 화학성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자연 성분의 수제 비누를 직접 만들어 쓰기 시작했고, 서울시에서 개설한 서울시민대학과 구청의 평생교육 강의 등을 통해 환경 공부도 본격화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홍보 관련 회사에서 일할 때는 관심 없던 분야였다.
기후위기와 폐기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는 많은 사람이 제로웨이스트에 동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2021년 7월 이 공방을 개업했다. 공방에서는 예약제로 소수의 수강생을 받아 수제 비누 제작 등의 수업을 한다. 비누 제작과정에서는 종이컵, 나무 스틱, 물티슈와 같은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실리콘 컵, 스테인리스 숟가락, 수건 등을 활용한다. 수업에는 환경 교육도 포함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폐기물 분리배출, 자원 수거 등 제로웨이스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온실가스 감축 등 보람 있지만 사업은 어려워
꽃삼월 같은 공방과 매장 등에 관여하는 회원 220여 명이 2021년 10월 결성한 제로웨이스트 상점 연합 ‘도모도모’는 지난해 전국 43개 매장에서 리필 판매와 자원 순환 등을 통해 줄인 쓰레기 양을 온실가스 감축량으로 환산해 발표했다. 연간 총 41.2~50.04톤(t)의 이산화탄소를 줄여, 0.71헥타르(ha) 넓이의 축구장 5~6개 규모의 숲을 조성한 것과 비슷한 성과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는 보람은 크지만, 공방 운영에 따르는 고민도 없지 않다. 송 대표는 “요즘 꽃삼월을 방문하는 손님이 하루 10명을 거의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객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다고 한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머문 몇 시간 동안에도 손님이 전혀 없었다. 송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상품은 기본적으로 합리적 소비보다 가치 소비의 성격이 강한데, 최근의 높은 물가 상승이 구매를 가로막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가게 매출만으로 지속적인 경영이 어려워 남편(개인사업)의 금전적 도움과 외부 환경교육 강사료 등으로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의 경영난은 ‘꽃삼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가 지난달 제로웨이스트 가게의 운영실태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내 91곳 중 10곳(11%)은 현재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제로웨이스트 상점 취재를 위해 서울 강북 지역의 매장 3곳을 접촉했을 때 한 곳은 이미 폐업했고, 다른 한 곳은 폐업을 준비 중이었다.
느린 변화에 때로 회의하지만, 포기는 없다
송 대표는 여러 해 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조차 많이 변하지 않는 것에 실망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가끔은 환경운동에 관한 의지가 꺾이고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고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실천하려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갈등과 괴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물건을 살 때 따라오는 비닐 혹은 플라스틱 포장재를 완전히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에 집착하기보다 나만의 기준선을 가지고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이런 고충 속에서도 친환경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것은 두 아이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초등학교 3, 4학년이 되는 두 아들이 살아갈 미래가 기후위기의 위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같이 활동하는 제로웨이스트 상점 대표들의 존재도 환경운동을 이어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 대표는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동지들이 없었다면 이미 이 생활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시대]
단비뉴스 환경부, 소셜전략팀 이호진입니다.
불의(不義)와 부조리에 맞서며 이상과 현실의 뒤틀림을 바로 잡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