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㊸ 그린피스 후쿠시마 현장 점검 보고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7주년 무렵이던 2018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현지 방사성 오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원전 인근 마을의 오염도가 줄지 않았고 일부 지역은 방사성 준위가 전년보다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린피스는 다음과 같이 촉구했습니다.

“원전 인근의 방사성 오염은 이번 세기말 혹은 22세기까지 지속될 정도로 심각합니다. 일본 정부는 피해 지역 주민을 성급하게 귀환시키는 정책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린피스 전문가팀 ‘지속되고 있는 재난’ 확인

그린피스가 2018년 3월 1일 전 세계에서 동시 발표한 <후쿠시마를 돌아보며: 7년간 지속되고 있는 재난>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피스의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은 2017년 9월과 10월 두 차례 후쿠시마현 나미에와 이타테 지역에서 집중 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 결과 두 지역의 방사성 오염 수준은 국제적으로 설정된 일반인 연간 피폭 한계치 1밀리시버트(mSv) 보다 최대 100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20킬로미터(km) 떨어진 나미에 지역 오보리 마을에서는 시간당 11.6마이크로시버트(μSv/h)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는데, 이는 연간 피폭량으로 101밀리시버트에 해당합니다. 피난지시가 해제된 나미에 지역 학교 인근 숲에서도 연간 10mSv 피폭량의 방사선이 측정됐습니다. 이는 피난지시가 해제돼 오염지역에 돌아와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게 될 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이 심각한 건강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2018년 기준 주민 피난지시가 해제된 이타테의 경우도 방사선 준위가 전반적으로 높았고 2016년에 비해 증가한 지점도 관찰됐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35km 떨어진 안자이 토루씨 집 주변 4688개 지점을 측정한 결과 전반적인 방사선 준위가 2016년 이후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숲과 가까운 몇몇 지점에서는 수치가 이전보다 높아졌습니다.

그린피스는 오염도가 높은 주변 산비탈 삼림 지역으로부터 방사성 핵종이 이동해 재오염이 발생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장다울 그린피스 선임활동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민가와 도로에서 20m 반경까지만 제염 작업을 시행하고 있어요. 삼림을 제염한다는 것은 산을 다 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니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죠.”

그는 산과 숲을 지금처럼 방치할 경우 바람이 불거나 눈, 비가 올 때마다 삼림 지역이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는 거대한 저장고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방사성 오염 여전한 곳 피난 해제는 인권 침해”

당시 조사팀을 이끈 그린피스 벨기에 사무소의 전문가 얀 반데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원자력 시설이었다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할 수준의 방사성 오염이 이번에 조사한 모든 지역에서 측정됐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성을 포함한 주민들이 이렇게 오염된 환경으로 돌아오게 됐는데, 매주 한 차례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사는 것과 같아요.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 침해입니다.”

그린피스는 또 이 지역에서 앞으로도 제염작업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일본 정부는 방사선 피폭 기준치를 상향 조정해 피난 구역을 추가로 해제하고 주민들을 원래의 거주지로 돌려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2018년 1월 17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제59차 회의록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장기 방사성 제염 목표치인 0.23시간당마이클로시버트(µSv/h)를 더 높여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요시 후케다 원자력규제위원장은 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현재의 목표치는 대피 주민들의 귀환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일본 정부가 목표치를 1.0µSv/h로 올려 주민들의 귀환을 촉진하려 한다고 관측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3월 나미에와 이타테 마을의 피난구역 지시를 일부 해제하는 등 빠른 속도로 주민 귀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전 피난민에게 제공했던 지원 조처를 하나씩 거둬들였습니다. 자발적 피난민(피난지시구역이 아닌 후쿠시마 인근 마을에서 스스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에게 지급하던 주거지원금을 2017년 3월 끊은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자발적 피난민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피난민 집계에서도 제외됐습니다.

<아사히신문>은 2017년 8월 28일 자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중앙정부는 2011년 핵재난 이후 후쿠시마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공식 피난민 명단에서 제외함으로써 그들을 사라지게 했다. 2017년 3월 일본 전역에 사는 피난민 수가 2만 9412명 감소했다.”

2019년에는 이타테 및 나미에 주민 수천 명에게 지급하던 주거지원금 또한 중단했습니다.

유엔인권이사회 ‘피난민 인권 보호’ 일본 정부에 촉구

그린피스 일본사무소의 스즈키 카즈에 에너지캠페이너는 2018년 3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했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 사고지역으로 돌아가는 피난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있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피난민 강제 귀환을 즉각 멈추고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안을 이행해야 합니다.”

이에 앞서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2017년 11월 일본에 대한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후쿠시마 후속 조처와 관련해 네 개의 권고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UNHCR의 주요 회원국들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피난민들의 인권을 존중할 것, 여성과 어린아이를 포함한 시민들의 방사선 피폭 위험을 줄일 것,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자발적 피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강력한 조처를 할 것 등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독일은 일본이 연간 피폭 한계치를 사고 전 1m㏜에서 사고 후 20m㏜로 올린 것에 관해 ‘사고 전 기준치로 되돌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권고를 적용하면 일본 정부는 피난 지시 해제를 멈춰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피난해제 대상 지역을 넓히고 주민들의 귀향을 독려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주민 복귀 기준으로 삼는 20m㏜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전에 스스로 유지하던 연간 일반인 피폭선량 1m㏜의 무려 20배입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일반인에 대한 연간 방사선량 한도는 1mSv이며, 20mSv는 원자력사고 수습 단계에서 허용하는 한계치로 원전 종사자에게나 해당되는 기준입니다.

2022년 8월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의 주민 대피령을 11년 5개월 만에 완전히 해제했습니다. 그러나 귀향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일본 부흥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피난 지시가 일부 해제된 후타바마치나 오쿠마마치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주민은 60%에 달했습니다. 후쿠시마현 11개 마을 가운데 마지막으로 대피령이 해제된 후타바 마을의 경우 현재 5500여 명이 거주민으로 등록돼 있지만, 당국이 2022년 1월 시작한 거주자 귀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은 85명뿐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목소리 출연: 박동주 유지인 나종인 정승현 최은솔 기자

영상편집: 유지인 기자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⑪ 거리엔 자전거 물결, 국민 건강은 '쑥쑥'

⑫ 태양열과 소금으로 밤에도 전기 생산

⑬ 금융위기에 흔들린 재생에너지 강국 스페인

⑭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의 실험

⑮ ‘주민 배제’가 ‘결사반대’ 낳았다

⑯ 해상풍력 잠재력, ‘조선업 이상’

⑰ '원전 줄이기' 시동 건 햇빛발전협동조합

⑱ 의도적 허위정보가 반감 조장

⑲ 옥상·주차장·도로 등 태양광 설치할 곳 수두룩

⑳ 무심코 쓴 일회용품이 기후재난 재촉한다

㉑ 플라스틱 등 자원 순환에 인공지능도 출동

㉒ 내가 버린 플라스틱, 내 식탁으로 돌아온다

㉓ 태양광 전기, 지열 냉난방으로 에너지 자립한 집

㉔ ‘에너지 덜 쓰고 전기 만드는 건물’ 속속 의무화

㉕ 태양광발전, 빗물 순환으로 ‘친환경 건물 시대’

㉖ ‘주민 안전’과 ‘일자리’, ‘이주권’ 맞섰던 원전 논쟁

㉗ 체르노빌·후쿠시마도 ‘안전’ 자만하다 터졌다

㉘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㉙ ‘큰 지진’ 가능한 연약지반에 줄줄이 들어선 원전

㉚ 대피계획 허술하고 훈련도 없다

㉛ 시험성적 위조한 불량부품은 다 교체됐을까

㉜ 사용후핵연료, 불안한 ‘임시저장’ 언제까지

㉝ 미래 세대에게 ‘핵쓰레기통’을 물려줘도 되나

㉞ 각국 포기한 파이로프로세싱, 한국은 거액 투입

㉟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 "수십 년 피폭됐다"

㊱ ‘원전 옆에 사는 죄’로 암 걸렸다는 사람들

㊲ 공기 속 ‘1급 발암물질’에 위협받는 아이들

㊳ 석탄발전소 절반 모인 충남, 호흡기 질환 심각

㊴ 석탄발전 못 줄이고 ‘기후 악당’ 욕먹는 한국

㊵ 상상도 못 했던 재난, 한국을 덮칠 수도 있다

㊶ 원전 사고 초래한 ‘거짓말’의 구조는 여전

㊷ ‘대기업 전기료 할인’이 에너지 전환 막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