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㉖ 찬반 치열했던 신고리 5·6호기 현장

 

“지진은 예고 없다!”

“원전 말고 안전!”

2017년 9월 9일 오후 4시, 울산 남구 삼산로 롯데백화점 앞 광장에서 시민 수천 명이 일제히 목청을 높였습니다. 국내 관측 역사상 최강의 5.8규모 지진이 경주에서 일어난 지 1년(9월 12일)을 맞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인 울산에서 열린 탈핵 집회였습니다.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목청 높여 ‘탈핵’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이 이끈 이날 행사에서 시민 5천여 명(주최 측 추산)은 집회에 앞서 남구 번영로 울산문화예술회관부터 삼산로 롯데백화점까지 1.6km가량 가두행진을 벌였습니다. ‘핵발전소 14기도 모자라서 2기를 더 짓나’라고 쓴 현수막 뒤로 액운을 막아준다는 ‘삼두매’ 조형물이 바람에 흔들리며 뒤따랐습니다. ‘핵발전소 14기’는 울산 반경 30km 내에서 이미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을 말합니다. 그 뒤로 핵발전소를 덮칠 수 있는 해일, 붉은 악마 얼굴의 쓰나미, 멸종위기의 긴 다리 저어새, 방독면을 쓴 학생 등 다양한 상징물로 분한 참가자들이 발걸음을 이어갔습니다.

탈핵 대회, 탈핵 콘서트 등 3부로 나뉘어 저녁 9시까지 이어진 집회에는 환경운동연합과 전국YWCA연합회 등의 활동가뿐 아니라 80대 노인에서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전인권, 안치환, 크라잉넛 등 가수들과 사물놀이패의 공연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손뼉을 치며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등 탈핵 구호를 외쳤습니다.

원전 밀집지에 지진 공포, 수백만 시민 어쩌라고 

참가자들은 수백만이 살고 있는 울산, 경주, 부산 일대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대’가 됐고 지진 등 재난 가능성이 있는데도 핵발전소를 더 짓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장다울 그린피스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산과 울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는 2017년 기준 전 세계 186개국 원전 단지 중 이미 가장 큰 규모이고, 원전 인근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원전을 짓지 않아도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며, 향후 5~10년 내에 대체에너지의 경제성이 원전을 웃돌 것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정보시스템(IAEA PRIS)을 보면 건설 완료된 신고리 4호기가 가동될 경우 고리‧신고리 원전 단지는 캐나다 브루스 원전 단지와 함께 각 8기의 원전을 보유한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가 됩니다. 여기에 신고리5‧6호기를 포함하면 총 10기로 캐나다 브루스를 밀어내고 단독 1위가 됩니다.

초등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온 조영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위험은 우리 아이, 그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몫이 됩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탈핵을 해야 합니다."

서울에서 버스로 3시간을 달려왔다는 주부 곽이경 씨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계의 흐름이 탈핵인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나요.”

신고리5·6호기 건설지역인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의 이종원 상가발전협의회장은 이렇게 울분을 토했습니다.

“신고리 3·4호기가 건설되면 관광객이 연 1천만 명 들어올 것이라고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말했지만, 실제로는 발전소가 들어선 후 지역경제가 다 죽었어요.”

그럼에도 탈핵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은 데 대해 윤종오(새민중정당) 울산 북구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수원 등이 지역 언론을 매수해 여론을 호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부근의 섬나라 페로제도에서 온 케니스 폰슨(조선해양 엔지니어) 씨는 길 가다 집회를 지켜보는 중이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엔 원전이 없고 수력, 풍력 등을 사용합니다. 해로운 에너지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시민적 합의가 되어있어요. 가장 걱정되는 것이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인데, 처리하지 못할 거면 원전을 짓지 않는 게 맞습니다.”

찬핵 집회에선 삭발 결의까지

그러나 탈핵을 외치는 목소리만큼 찬핵 주장도 거셌습니다. 비슷한 시각 울산 남구 태화강역 광장에서는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었습니다. 한수원 노조원‧가족과 울주군 서생면 주민 등 7개 단체가 참여한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8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무대에 오른 김병기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전 시공사와 협력사, 원전을 자율 유치한 주민들 모두 나라를 생각한 죄밖에 없습니다. 원전을 없애면 에너지안보가 무너집니다.”

김 위원장과 이상대 서생면주민협의회장 등 4명은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저지를 결의하며 현장에서 삭발을 하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이후 ‘전기요금 폭등으로 국민요금 배가 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태화강역에서 터미널사거리까지 2.3km 구간을 행진했습니다.

생업 잃은 주민, 이주 무산될까 ‘건설 중단 반대’

찬핵 집회의 구호가 ‘에너지안보’나 ‘전기요금 폭등 우려’ 등이었던 것과 달리, 신고리5·6호기 건설 예정지인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리마을 주민 다수의 걱정은 ‘이주와 보상 무산’이었습니다. 2017년 9월 <단비뉴스> 취재진이 마을을 찾았을 때, 한 달여 전(7월 14일) 공사가 중단된 78만 평(257만4002㎡)가량의 부지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크레인 9대가 멈춰선 채 흙먼지만 일고 있었습니다.

공정률 30%에서 중단된 건설 현장은 땅바닥이 파헤쳐진 채 방치됐거나 파란색 비닐이 덮여 을씨년스런 모습이었습니다. 자줏빛으로 녹슨 철근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깨진 돌무더기와 잡초 사이로 물이 고인 웅덩이는 폐수에 녹조가 엉겨 거무죽죽했습니다. 농지와 집이 수용돼 이주한 골매마을 주민들에게서 한수원이 어업보상으로 사들인 어선 20여 척은 공사장 한편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인기척 없는 현장에는 세찬 파도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이미 신고리 1·2호기와 3·4호기가 있는 신리마을의 주민 500여 명은 원전으로 인해 일상이 거듭 무너졌습니다. 이곳이 고향이라는 정모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고리3·4호기 때부터 근 10년 간 공사 분진 때문에 빨래를 널면 새카맣게 먼지가 묻었어요. 호흡기도 좋지 않아요.”

2016년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시작되고부터는 매일 밤 돌 깨는 소리(기초굴착작업)에 잠을 못 이루었을 정도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마을 중간쯤에 있는 박봉남 씨의 식품잡화점은 곧 무너질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기초굴착작업 이후 지반이 흔들리면서 무너진 천장 틈으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내부 모서리마다 검푸른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물이 흘러내려 언뜻 보면 폐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박 씨는 집을 수리하지 못합니다. 이 마을은 2016년 집단 이주 및 보상을 조건으로 신고리5·6호기를 자율 유치했는데, 아직 협상과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이렇게 목청을 높였습니다.

“집이며 농지며 다 가격 책정을 해 놓은 상태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지금껏 참고 살아온 대가로 이주비용을 대주겠다고 했는데 건설 중단이 웬 말입니까.”

“원전 옆 40년 거주, 합당한 보상 필요”

“신고리 1~4호기가 들어설 때는 우리 지역 주민들이 생업 전폐하고 매일 반대 시위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였잖아요. 우리는 40년간 원전을 끼고 살면서 피해 본 사람들입니다.”

2013년 신고리5·6호기 자율유치에 앞장섰다는 이상대 서생면주민협의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지어질 원전이라면 1500억 원의 ‘자율유치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솔직히 원전 8개 있으나 10개 있으나 뭐가 다릅니까. 우리 주민들 좀 잘 살게 하려고 했습니다. 주민들 설득해서 자율 유치하는 데 5년 걸렸는데, 공론화위원회에서 3개월 만에 신고리5·6호기 건설중단(백지화)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니까 납득이 가겠냐고요. 신고리5·6호기는 예정대로 건설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2017년 신고리5·6호기 건설중단 반대 울주군 범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반대집회를 주도했습니다. 2017년 8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등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공론화위원회 활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습니다.

땅도 바다도 잃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신리마을은 ‘반농반어(반은 농업, 반은 어업)’이에요. 배 과수원을 비롯해 농가 소득이 괜찮았는데, 3·4호기부터 5·6호기까지 지으면서 부지에 과수원, 농지가 거의 다 편입됐어요. 바다 역시 마찬가집니다. 현재 우리 주민 생계수단이 없는 거예요. 이주 준비를 거의 다 했는데, 먹고 살 방도가 없어요.”

최해철 신리마을 임시 이장의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마을에는 ‘먹고 살길이 없어진’ 주민들이 많습니다. 최성근 씨는 1970년 고리 1호기가 들어서면서 고리에서 골매로, 신고리 3·4호기가 들어서면서 골매에서 신암으로 이주했습니다. 고기 잡던 배를 한수원에 팔아 어업보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바다에 어망 몇 개를 던져두는 것 외에 벌이가 없어 “있는 돈을 까먹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40여 년째 해녀 일을 해온 장금자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엔 바다에 전복, 해삼 등 해물이 많아서 돈을 잘 벌었어요. 하지만 신고리 3·4·5·6호기 유치 이후로는 발전소에서 8km 거리의 바다에 울타리를 쳐 못 들어가게 막아요. 물질할 수 있는 해역이 줄어 생계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발전소를 마저 지어서 이주와 보상을 해주면 좋겠어요.”

“원전 옆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데 있노”

그렇다고 신리마을 주민들이 원전의 안전성을 믿는 건 아닙니다. 3대째 신리 마을에 산다는 이병철 씨는 기자에게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정부가 탈핵을 추진하려면 먼저 원전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살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일본 원전사고 지역 사람들도 방사능 묻었다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근처에 못 오라 한단다. 원전 옆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데 있노? 경북에서 쓰는 발전소 경북에다 짓고, 전국에 쓸 발전소 전국에 지어야 하는 거 아니가. 3·4호기 들어올 때 반대 시위도 했는데 안 되더라. 정부 정책이니 별수 있나. 우리 주민들도 같은 나라 사람인데, 대책을 내줘야지.” 

한편 2017년 10월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건설이 재개됐습니다. 현재 공사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각각 2024년과 2025년 상반기에 준공될 예정입니다.

출연: 유지인 김은송 정승현 박시몬 최은솔 기자

편집: 김은송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 (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⑪ 거리엔 자전거 물결, 국민 건강은 '쑥쑥'

⑫ 태양열과 소금으로 밤에도 전기 생산

⑬ 금융위기에 흔들린 재생에너지 강국 스페인

⑭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의 실험

⑮ ‘주민 배제’가 ‘결사반대’ 낳았다

⑯ 해상풍력 잠재력, ‘조선업 이상’

⑰ '원전 줄이기' 시동 건 햇빛발전협동조합

⑱ 의도적 허위정보가 반감 조장

⑲ 옥상·주차장·도로 등 태양광 설치할 곳 수두룩

⑳ 무심코 쓴 일회용품이 기후재난 재촉한다

㉑ 플라스틱 등 자원 순환에 인공지능도 출동

㉒ 내가 버린 플라스틱, 내 식탁으로 돌아온다

㉓ 태양광 전기, 지열 냉난방으로 에너지 자립한 집

㉔ ‘에너지 덜 쓰고 전기 만드는 건물’ 속속 의무화

㉕ 태양광발전, 빗물 순환으로 ‘친환경 건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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