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㊳ 발전소·회처리장 지역주민 건강피해

“비 안 올 때 땅을 이렇게 손으로 쓸면 새까매. 사시사철 그래. 큰 차도 엄~청 지나다니고, 말도 마. 요새는 그래도 비 와서 덜한 거지. 안 아픈 양반들이 없어. 다들 심장 같은 데도 시원치 않고, 죽었다 하면 다 암이지 뭐. 여기도 지금 항암 주사 맞으러 병원 다니는 사람이 많어.”

2017년 8월 21일 오후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2리 주민회관. 빙 둘러앉아 심심풀이 화투를 치던 할머니들이 오영혜 씨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들은 주민회관에서 2킬로미터(km) 거리에 1983년 보령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 마을에 살던 토박이들입니다. 발전소가 가동된 후 공해 탓에 목이 아프고 눈이 따가워 괴롭다는 경험담을 앞다투어 쏟아냈습니다.

주민 건강과 생계 위협하는 석탄발전소

50여 가구가 대부분 조개, 굴, 게를 채취해 생계를 꾸리고 있는 고정2리에서 발전소는 주민 생업에도 어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발전소와 회처리장(석탄재를 묻는 곳)이 가동된 후 조개 채취량이 줄고 조개알의 크기도 줄었기 때문입니다. 최삼순 씨는 옛날을 떠올리며 한탄했습니다.

“(발전소 들어서기 전) 바다에서 조개가 얼마나 많이 났는데. 옛날에는 호미만 가지면 애들도 갈치고(가르치고) 나 먹고살고 다 했는디, 공해 때문에 다 썩어서 조개 캐면 막 새까맣게 돼가지고 수도 줄고 씨알도 없고. 이제는 경운기 타고 멀리 떨어진 데 가서 잡어.”

고정2리와 이웃한 고정1리 주민들도 발전소가 하나둘 늘 때마다 갯벌에서 잡은 게가 정체 모를 검은 물질에 점점 더 많이 오염돼 갔다고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최경열 씨는 집으로 찾아간 <단비뉴스> 취재진에게 게 껍데기를 까서 보여주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여기 발전소 들오기 전에는 조개, 굴이 천지사방에 있어서 조개를 잡으려고 가마니를 가져왔어. 근데 시방 바카지(게) 같은 것도 하나도 못 먹어. 속에 새카만 뻘이 다 끼어갖고 팔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잡아놓고 그냥 냉장고에 있어.”

2017년 기준 61개 석탄화력발전소 중 30개가 충남에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통계연보2016’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은 2015년 핵발전(36.7%)을 제치고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48.3%,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충남에는 2017년 기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61기)의 절반에 가까운 30기가 몰려 있습니다. 서해를 끼고 있어 중국, 호주, 러시아 등에서 배로 석탄을 수입하기 쉽고, 전력 최대 수요지인 수도권과도 가깝기 때문입니다. 2017년 7월 영구 폐쇄된 서천1・2호기를 빼고 당진에 10기, 태안에 10기, 보령에 10기가 있습니다.

환경부가 2017년 7월 공개한 전국 주요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573곳의 2016년 배출량을 보면 충남의 발전소와 현대제철 등에서 뿜어낸 오염물질이 10만8천 톤(t)으로 전국 배출량의 27%를 차지했습니다.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전국 1위 기록입니다. 이 숫자는 굴뚝 자동측정기에 입력된 대기오염물질만을 감안한 것이며, 측정 대상이 아닌 미세먼지와 회처리장의 비산먼지 등을 감안하면 실제 배출량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중 이산화질소는 만성기관지염, 폐렴, 폐출혈, 폐수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또 이산화황은 기관지, 눈, 코에 염증을 일으키고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폐렴, 기관지염, 천식, 폐기종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두 성분을 포함하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은 대기 중에서 화학작용을 통해 세계보건기구(WHO)가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미세먼지를 생성합니다.

충남 호흡기 질환 사망률 전국의 1.5배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은 호흡기 질환 사망률이 전국평균의 1.5배에 이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 전국의 호흡계통 질환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57.5명입니다. 그런데 충남은 10만 명당 84.1명이나 됐습니다. 지역별로 존재하는 연령 차이를 통계적으로 제거한 ‘연령표준화 사망률’을 봐도 충남은 폐암 사망자가 10만 명당 23.3명으로 전국 평균인 21.9명보다 1.4명 더 많고, 폐렴 등 호흡계통 질환 사망자도 전국평균 31.2명보다 3.1명 많은 34.3명이었습니다.

<단비뉴스>는 2017년 9월 서천화력발전소에서 가까운 충남 보령시 미산면 주민들의 최근 5년간 사망원인 1~5위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중 2014년을 뺀 4년간의 사망원인 1위가 폐렴이었습니다. 이는 2016년 전국 사망원인 1~5위가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폐렴, 자살 순이었던 것과 비교됩니다. 미산면 주민들의 사망원인 상위권에는 폐렴 외에도 폐암, 진폐증, 호흡부전 등 호흡기 관련 질병이 두드러졌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내뿜는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 피해는 충남지역 주민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서해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들은 남서풍을 타고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2016년 5~6월 실시된 ‘한미대기질합동연구(KORUS-AQ)’ 예비종합보고서는 경기도 화성, 수원 등 서울 남쪽 지역이 충남 석탄화력발전소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석탄회처리장

보령화력발전소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 달리면 주교면 고정리와 송학리에 걸친 해안가에 남부회처리장이 있습니다. 보령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고 남은 재를 물과 섞어 파이프로 흘려보낸 뒤 매립하는 곳입니다. 1536만 제곱미터(약 460만 평)에 달하는 남부회처리장은 간석지를 제방으로 둘러막아 바닷물을 가둔 곳입니다. 재를 바닷물 속에 가라앉혀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017년 8월 21일과 12월 21일 두 차례 찾은 남부회처리장 곳곳에는 검은 석탄재가 사람 허리 높이의 언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로와 회처리장을 가르는 철조망 뒤로 석탄재를 나르는 파이프가 놓여있었고, 파이프의 끝에서는 석탄재가 물과 섞여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파이프 주변으로 석탄재가 바닷속을 꽉 채우고 수면위로 드러난 듯한 부분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회처리장까지 물과 함께 파이프로 이송된 석탄재가 바닷물 아래에 쌓이다 수면 위로 올라올 만큼 포화하면 규정상 그 위에 일반 흙을 덮어 복토하거나 덮개로 덮어 석탄재가 날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석탄재에 섞인 ‘6가크롬’ 등 발암성 유해 물질이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에너지기후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석탄재에는) 유해 중금속 물질이 많이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유출됐을 때는 먹이사슬에 의해 생물체 내에 중금속 축적이라든지 농축이 일어날 위험성이 있습니다.”

보령시청 환경보호과의 오용주 주무관은 2017년 8월 28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파이프 출구 부분에서는 석탄재가 수면 위로 쌓일 수 있지만 석탄재가 점차 물이 많은 곳으로 퍼져나가며 가라앉는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발전소 측에서 회가 마르면 날리지 않게 살수를 시켜주고 표면에 약재를 뿌려줍니다. 수분을 머금고 있는 석탄재가 바람에 날릴 가능성은 작습니다.”

그러나 회처리장 인근 마을 주민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고정2리 주민 나순정 씨는 “까만 게 묻어나서 빨래를 밖에다 못 넌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할머니들도 이구동성으로 석탄재가 날린다고 증언했습니다.

<단비뉴스>가 촬영한 사진을 통해 회처리장 상태를 살펴본 손민우 그린피스 기후 에너지 캠페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당 회처리장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오래 방치할 경우, 지역주민 생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며,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석탄회에 포함된 중금속 때문에 다양한 질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보령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중부발전의 남부회처리장 담당자는 2017년 12월 20일 관리현황에 대한 <단비뉴스> 전화문의에 “지역협력팀으로 공문을 보내 정식으로 질문을 접수하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이틀 후 지역협력팀에 문의하자 언론 담당자는 자리에 없었고, 남부회처리장 담당자는 재차 연락했을 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남부회처리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사토장(공사장에서 나온 토사 등을 버리는 곳)에서도 별다른 조처 없이 야적된 석탄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석탄발전소가 증설되고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석탄재 처리장도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설 자재로 일부 재활용하고는 있지만, 석탄재 같은 고체 폐기물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부족한 걸로 보입니다.”

전체 발전량에서 석탄화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1위입니다. 한국전력공사의 2022년 9월 전력통계월보를 보면 석탄화력 비중은 34.1%로 원자력(30.4%), LNG(24.6), 신재생(9.6%)보다 큽니다. 2022년 현재 국내에는 석탄화력발전소 57기가 가동 중입니다. 충남 지역에는 태안 10기, 당진 10기, 보령 8기, 신서천 1기로 총 29기가 있습니다. 2020년 12월 보령화력 1, 2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1018메가와트(MW) 규모의 신서천화력발전소를 신설한 것입니다.

한편 이미 6기의 석탄발전소가 가동 중인 강원 지역에는 4기(강릉안인 1, 2호기, 삼척블루파워1, 2호기)가 추가로 건설 중입니다. 이 발전소 건설을 막기 위해 최근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5만 명이 서명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됐습니다.

출처: 마지막 비상구(제정임 엮음)

목소리 출연: 목은수 정승현 기자 서현재 PD

영상편집: 목은수 기자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⑪ 거리엔 자전거 물결, 국민 건강은 '쑥쑥'

⑫ 태양열과 소금으로 밤에도 전기 생산

⑬ 금융위기에 흔들린 재생에너지 강국 스페인

⑭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의 실험

⑮ ‘주민 배제’가 ‘결사반대’ 낳았다

⑯ 해상풍력 잠재력, ‘조선업 이상’

⑰ '원전 줄이기' 시동 건 햇빛발전협동조합

⑱ 의도적 허위정보가 반감 조장

⑲ 옥상·주차장·도로 등 태양광 설치할 곳 수두룩

⑳ 무심코 쓴 일회용품이 기후재난 재촉한다

㉑ 플라스틱 등 자원 순환에 인공지능도 출동

㉒ 내가 버린 플라스틱, 내 식탁으로 돌아온다

㉓ 태양광 전기, 지열 냉난방으로 에너지 자립한 집

㉔ ‘에너지 덜 쓰고 전기 만드는 건물’ 속속 의무화

㉕ 태양광발전, 빗물 순환으로 ‘친환경 건물 시대’

㉖ ‘주민 안전’과 ‘일자리’, ‘이주권’ 맞섰던 원전 논쟁

㉗ 체르노빌·후쿠시마도 ‘안전’ 자만하다 터졌다

㉘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㉙ ‘큰 지진’ 가능한 연약지반에 줄줄이 들어선 원전

㉚ 대피계획 허술하고 훈련도 없다

㉛ 시험성적 위조한 불량부품은 다 교체됐을까

㉜ 사용후핵연료, 불안한 ‘임시저장’ 언제까지

㉝ 미래 세대에게 ‘핵쓰레기통’을 물려줘도 되나

㉞ 각국 포기한 파이로프로세싱, 한국은 거액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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㊱ ‘원전 옆에 사는 죄’로 암 걸렸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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