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업팀 과장 김민정씨(32·가명) 이야기회의를 하면 힘든 걸 얘기해요. 다들 이번 주 목표(회사에서 출시되는 제품을 판촉하는 활동)를 채우지 못한 사연이 있겠죠. 공감해요. 저도 그런 일을 겪었고요. 안됐지만, 그뿐이에요. 회의 끝나고 나오면 내 일에 내가 치여서 그 사람들 생각이 안나요. 그래도 예전에는 ‘대리님 힘내요’ ‘과장님 많이 힘드시죠?’ 이렇게 문자 한 통이라도 남기는 게 있었는데, 요즘에는 저조차 안 하고 있고, 그런 걸 서로 하는 분위기도 아니에요.영업은 경쟁이에요. 지금 자기가 힘든 걸 공개하는 것 자체가
<콰이강의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전쟁영화다. 여느 작품과 다르게 전쟁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간헐적인 총격전보다 눈길을 끄는 건 주인공 니콜슨 대령의 인물상이다. 그는 영국군 지휘관으로 뼛속까지 밴 군인정신을 보여준다. 일본군 포로가 돼 미얀마에 있는 수용소에 갇히지만, 대영제국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놓지 않는다. 관객이 니콜슨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은 그가 다리 건설을 지휘하고부터다. 철도를 통해 인도까지 손에 넣겠다는 적의 계획을 모를 리 없는 니콜슨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리 건설에 힘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키케로 형제는 선거의 달인이었다. 당시 최고 관직인 집정관 선거에 나온 형 마르쿠스 키케로를 위해 동생 퀸투스 키케로는 온갖 묘수를 고안해낸다. 귀족들에게는, 서민들의 환심을 사려 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서민들에게는 그들을 위해 한평생 노력해왔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강조하라고 말한다. 경쟁자의 인품과 관련된 추문을 퍼뜨리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형제는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로마 시대 선거 전략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총선을 3주 앞둔 시점에서
"오직 날 사랑한다면 내 곁에 있어 줘요. 너무 진해지면 주의하세요. 잠자고 있을 땐 깨우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물리고 말 거예요. 낙엽 밑에 숨은 회색 뱀처럼...사랑은 죽음인가요. 죽음이기도 하지만 천국이지도 하지요."달콤하지만 위험한 사랑의 역설. 영화 초반부에 흐르는 젤라딘(카밀라 를르슈 분)의 사랑 노래다. 사랑한다면 곁을 지켜달라고 하더니 너무 진해지지는 말라고 경고한다. 도대체 안전한 경계선은 어디란 말인가. 키스와 피폭의 공통점2010년 <디어 프루던스>를 연출한 프랑스 여성감
캔맥주 서너 개에 감자 스낵 한 봉지, 푹신한 소파 그리고 박지성. 10년 전, 신 주말 풍속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축구팬들은 토요일 밤마다 TV 앞에 앉아 박지성을 기다렸다. 그의 선발 출장 소식에 설레어 했고, 몸동작 하나하나에 숨죽이며 브라운관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몇은 ‘츄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동네 호프집에 모이기도 했다. 박지성이 공만 잡으면 “오, 박지성! 박지성! 박지서엉!”을 외쳐 댔다. 그 시절, 축구팬들에게 박지성은 영웅이었다.신문선•차범근에서 박지성•손흥민으로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의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바닷가에는 1300여 년 된 물속의 임금 무덤, 문무대왕릉이 있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의 문무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묏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700여 미터(m) 떨어진 울창한 수풀 아래에는 갓 지어진 거대한 지하 구조물이 있다. 지난 8월 말 준공해 운영을 시작한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현대 문명이 낳은 ‘맹독성 쓰레기’를 묻는 곳이다. 동굴처분 방식으로 지어진 이 방폐장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부지의 10배 규모로, 10만 드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수
“대한민국은 지난 37년간 원자력발전을 가동해왔고 이와 함께 사용후핵연료도 쌓였습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임시저장시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더는 넣어둘 여유가 없습니다. 사용후핵연료가 옮겨 갈 새집이 당장 필요합니다.”최소 10만년 격리해야 하는 치명적 물질지난 6월 29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1년 8개월간의 논의 끝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최종권고안’을 발표했다.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 처분 전 보관시설, 지하연구소, 최종처분시설을 한데 모아 건설하고 운영해야
따스한 5월 어느 날, 나는 무작정 아무 버스나 잡아탔다. 친구들 눈을 피해 서둘러 소풍 장소를 빠져 나온 직후였다. 한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 날은 고3 소풍날이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식은땀을 닦았다. 왼쪽 가슴 위 명찰을 찢어져라 잡아 제쳤다. 잘 뜯어지지 않았다. 속으로 외쳤다. “XX, 좀 뜯어지라고!” 차창에 어린 일그러진 내 눈동자를 봤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고교시절, 나는 종종 일진들과 어울렸다. 축구가 계기였다. 중학교 때부터 난 친구들 사이에서 ‘공 좀 차는 아이’였다. 축구동아리 활동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