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⑥ 근본적 처리 방법 없는 핵폐기물

“대한민국은 지난 37년간 원자력발전을 가동해왔고 이와 함께 사용후핵연료도 쌓였습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임시저장시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더는 넣어둘 여유가 없습니다. 사용후핵연료가 옮겨 갈 새집이 당장 필요합니다.”

최소 10만년 격리해야 하는 치명적 물질

지난 6월 29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1년 8개월간의 논의 끝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최종권고안’을 발표했다. 국내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 처분 전 보관시설, 지하연구소, 최종처분시설을 한데 모아 건설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원회는 오는 2020년까지 부지를 선정하고 2051년까지 시설을 지어 운영하도록 권고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쓰고 남은 방사성 폐기물로 플루토늄, 우라늄, 세슘, 제논 같은 맹독성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최소 10만 년 동안 강한 열과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과 자연환경에 치명적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철저하게 격리해서 장기 저장해야 한다.

위원회는 전국 원전의 임시시설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각 시설의 설계수명이 다하거나 저장용량이 초과하기 전에 안정적인 저장고로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은 유일한 중수로형인 월성원전이 2019년에 초과하고, 경수로인 한빛원전은 2024년, 한울은 2026년, 고리는 2028년, 신고리는 2036년, 신월성은 2038년에 초과하게 된다. 특히 월성원전에 있는 건식저장시설의 설계수명이 앞으로 10년 연장된다고 해도 2051년에 끝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최종처분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권고안은 밝혔다.

환경운동단체들은 이 같은 위원회 의견에 대해 ‘갈등의 씨앗만 뿌려 놓은 최악의 권고’라고 반발하며 폐기를 요구했다. ‘원전을 계속 늘려도 좋은가’ 등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공론화 없이 원전확대를 전제로 그 뒤처리를 위한 권고안을 냈다는 비판이다. 또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에 19년이 걸렸는데 2020년까지 단 5년 만에 고준위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를 확정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물리적인 이유뿐 아니라 사회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서 그동안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라며 “5년이라는 기간은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성토했다.

나아가 우리 기술로 지을 능력이 있는지도 불확실한 상황에 2051년까지 최종처분장 건설을 못 박은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환경단체들은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원전의 비중을 앞으로 어떻게 가져갈지 폭 넓은 사회적 논의를 거친 뒤, 이를 토대로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법에 대한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욕조에 물이 넘친다면 수도꼭지부터 잠가야 한다”며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먼저 탈핵시기를 결정해서 핵폐기물 발생량을 확정한 뒤에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국내 원자력발전소 핵폐기물 발생현황. ⓒ 한국수력원자력

국내 24개 원전 핵폐기물, 기약 없이 임시 저장 중  

우리나라에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가 1978년 가동된 이래로 현재 총 24기의 원자력발전소가 돌아가고 있다. 원전 설비용량은 지난해 기준 총 2만716 메가와트일렉트릭(MWe)으로, 전체 전력 설비용량의 22%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원전을 17기정도 더 늘려 이 비중을 29%로 올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렇게 많은 원전에서 우라늄 핵분열을 통해 전기를 만드는 만큼 방사성 폐기물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보통 3~5년 정도 사용한 후 원자로에서 꺼내는 핵연료는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는다. 막 꺼낸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선량은 7시버트(Sv)에 달하는데, 사람이 1미터(m) 거리에서 17초 정도만 노출돼도 한 달 내에 100% 사망한다. 이 방사선의 세기가 천연 우라늄 광석 수준으로 낮아지려면 최소 10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난 2011년 3월에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가동 중이던 1~3호기에서 노심용융(멜트다운) 및 수소폭발이 일어난 것과 함께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중이던 4호기 수조에서도 냉각장치 고장으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많은 양의 방사선이 방출된 사고였다.

핵폐기물은 고준위인 사용후핵연료가 가장 치명적이지만 중·저준위폐기물도 만만치 않은 위험성을 갖고 있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원전에서 사용된 작업복, 장갑 등 비품과 각종 기계부품, 냉각수 등을 아우른다. 여기서 나오는 방사선도 암 등 중증질환과 유전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각 원전과 원자력연구원 부지 안의 저장시설에 보관해 왔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지난 8월 말 준공된 경주시 양북면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순차적으로 옮겨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국내 방사성 폐기물 누적 발생량은 사용후핵연료가 42만560다발(2015년 3사분기 기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9만3800드럼(2015년 10월 말 기준)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1만9885드럼(2015년 9월 말 기준)이 있다. 1톤 트럭 1만 4000여 대와 200리터(L)들이 김치냉장고 11만 3000대를 합한 것보다 많은 분량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를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아직까지 개발되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나라처럼 원전 내의 수조(물탱크) 등에 임시저장한 상태에서 장차 땅속 깊이 파묻을 수 있는 처분장 등을 찾고 있다. 이 중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만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2002년 네바다주 유카 산(Yucca Mountain)을 영구처분시설 후보지로 정했지만, 지역 주민의 반발로 무산됐고, 2010년 오바마 정부가 재검토에 착수한 끝에 2048년까지 심지층처분장을 짓기로 했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지하 500~1000m에 묻을 처분장을 건설할 계획이지만 아직 부지를 찾지 못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이처럼 근본적 대책 없이 핵폐기물을 쌓아두고 있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에 비유한다. 버리지 못한 오물을 집안 구석구석 쌓아놓고 있는 고급아파트와 같다는 것이다.

핵연료 재처리는 기술적 난관 크고 경제성 없어

원전전문가들 중에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재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처리) 등을 통해 우라늄을 회수해서 4세대 원자로인 고속로나 중수로 연료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경우 사용후핵연료의 부피가 20분의 1로 줄고, 독성감소 기간인 반감기는 1000분의 1까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박원재 전문위원은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 과제와 향후 방안> 보고서에서 “화학적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재사용이 가능하고 고준위 폐기물의 방사능과 부피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그러나 “재처리 기술에 경제적 이득이 있지만 실제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재처리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재처리가 천문학적인 비용만 들뿐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방사성물질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환경운동연합은 2013년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의와 관련한 성명서에서 “그동안 재처리를 추진해온 어떤 국가도 경제성을 확보하거나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재처리 시설에서 방사성물질이 유출되거나 작업자들이 피폭되는 등 위험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안재훈 탈핵팀장은 “재처리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고속로가 있어야 하는데 관련 기술이 온전하게 개발되지 않은 상태”라며 “앞서 재처리를 추진해왔던 일본, 프랑스 같은 나라들도 안전성,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해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처리를 한다고 사용후핵연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거기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또 처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래 인류가 봉인 열면 어쩌나

“미래 인류가 핵폐기물의 봉인을 열지 않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경고 메시지를 남겨야 할까요, 아니면 아예 관심을 안 갖게 폐기장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는 것이 나을까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의 합작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은 핀란드 올킬루오토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핵폐기물 저장소 ‘온칼로’ 이야기를 다뤘다. 이 다큐에서 핀란드의 각 분야 전문가들은 언어소통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수천년, 수만년 이후의 인류에게 핵폐기장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좋을지, 알린다면 어떤 표기법을 사용할 것인지 등을 놓고 토론한다. 한편으로는 단단한 암석지대에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고 차분히 공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고려사항을 토론하는 핀란드방식을 부러워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0만년 이상 관리해야 하는 위험물질을 후대에 넘기는 게 옳은가’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영화다.

▲ 핀란드 온칼로는 2020년부터 최종처분이 시작되고 2100년에 콘크리트로 봉인된다. ⓒ <영원한 봉인> 화면 갈무리

핀란드는 1970년대 후반 처음으로 원전을 시운전하면서 곧바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을 준비했다. 1983년 영구처분 일정을 확정한 이래 장기간 예비부지 조사를 거쳤고, 2000년에 올킬루오토를 최종부지로 선정했다. 최종처분은 오는 2020년 시작되고 2100년에 처분장을 영구 폐쇄할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1호 원전이 지어진 지 6년이 된 1984년에야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만들었는데, 이마저도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한 반쪽짜리였다. 1988년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짓겠다는 방침을 정한 뒤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에서 부지선정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었다. 논란 끝에 경주에 중·저준위방폐장이 건설됐지만 지하수 차단이 어려운 지반에 건설됐다는 것 등 안전성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부지를 과연 우리나라 지질조건에서 찾아낼 수 있을지, 찾아내더라도 지역 주민이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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