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⑦ 경주 중·저준위 처리장 안전성 논란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바닷가에는 1300여 년 된 물속의 임금 무덤, 문무대왕릉이 있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의 문무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묏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700여 미터(m) 떨어진 울창한 수풀 아래에는 갓 지어진 거대한 지하 구조물이 있다. 지난 8월 말 준공해 운영을 시작한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현대 문명이 낳은 ‘맹독성 쓰레기’를 묻는 곳이다. 동굴처분 방식으로 지어진 이 방폐장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부지의 10배 규모로, 10만 드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다. 폐기물은 지하 1.4킬로미터(km) 터널 끝, 80~130m 깊이에 있는 높이 50m, 지름 25m의 사일로(콘크리트 처분고) 안에 저장된다.

▲ 경주방폐장 조감도.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마을 잘 살게 해준다는 말에 찬성했던 주민들

경주시 양북면과 양남면에 걸쳐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처음에 이 폐기물처분장 건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원전과 방폐장의 위험성에 대해 잘 몰랐고, 이런 시설이 들어오면 경주시가 잘살게 될 것이라는 정치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내는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래가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내가 그게 한이 돼가 자식들은 꼭 교육 잘 시키고 싶더라고. 근데 돈이 없어가 우리 애들도 제대로 교육을 못 시켰지요. 내 후손들에게는 이런 가난한 삶을 물려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방폐장 들어오면 경주시가 잘살게 될 거라는 말을 믿었지요.”

월성원전이주대책위원회 김정섭(70·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위원장은 지난 2005년 방폐장 유치를 위한 주민투표 당시 경주 지역의 유치위원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에 반대하며, 원전 인근 지역 주민의 이주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경주 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의심하면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부와 정치권을 성토하고 있다. 월성원전 안에 임시로 저장해 놓은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도 걱정스럽고 새로 지은 중·저준위 방폐장의 안전성도 의심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

▲ 월성원전 안에 임시 저장된 고준위 핵폐기물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 박장군

정부는 2005년 3월 제정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유치지역에 3000억 원의 특별지원금을 지급하고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와 한국수력원자력의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역에 돈이 들어온다’는 기대는 경주시민들이 방폐장 유치에 찬성표를 던지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경주시의회 분석에 따르면 지원금의 80% 이상이 도로 확·포장과 하천정비에 투입됐고, 방폐장 인근 주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별로 없었다.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주민들이 애초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방폐장 자체의 안전성이다.

방폐장 건설 부지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원자력환경공단이 공기를 30개월 연기한 지난 2009년 6월부터다. 그 전해 8월부터 공사가 시작됐는데 진입동굴 시공단계에서 암질 등급이 예상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 공사일정을 늦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현 정의당)과 환경단체들은 부지 선정을 위한 공단의 1차 조사에 오류가 있어 폐기장 건설에 부적합한 암반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사전에 지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방폐장에 지하수가 들어가면 사일로 방벽 수명에 따라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될 수 있는데, 해당 부지에는 샘물 공장을 세워도 될 만큼 지하수가 풍성하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공단 측은 이에 대해 지하수가 많은 지대가 처분고 설치 부분이 아니며,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에 녹아 이동하더라도 핵종의 이동속도가 지하수 이동속도보다 느리므로 문제가 없다는 등의 해명을 내놓았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수백 년 이상 안전하게 버텨내야 할 방폐장이 이처럼 암반이 약하고 지하수가 많은 지대에 건설된 것은 크게 우려스런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의 위치에 관한 기술기준 고시’에 따르면 처분장은 구조적으로 동굴이 안정되고 강도가 큰 기반암에 위치해야 하며, 처분장 주위 지하수의 유량과 유속은 가능한 한 작아야 한다. 경주 방폐장에 대해서는 이 밖에도 해수면 100미터 아래에 있는 사일로가 장차 바닷물에 잠길 가능성,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의 존재 등을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공단 간에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부족했던 부지선정 과정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41) 사무국장은 애초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가 졸속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처럼 부적절한 위치에 방폐장이 건설됐다고 지적했다.

“주민투표가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경주 방폐장 부지 자체의 적합성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요. 졸속으로 조사가 됐고, 그 조사결과마저 경주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죠. 2009년 6월에 방폐장 공기가 연장되면서 지역 사회가 시끄러워지자 정부는 그제야 2005년 당시 부지 적합성 조사결과를 공개했어요.” 

정부는 2005년 3월 방폐장 부지선정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같은 해 6월 부지선정 공고를 냈다. 유치를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주민 1/3 이상의 투표와 유효 투표수 과반의 찬성을 얻은 지역 중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경북의 영덕과 포항, 경주, 그리고 전북 군산 등 4곳이 신청했다. 부지선정위원회는 고작 이틀간 해당 지역을 방문한 뒤 일주일 만인 9월 15일 부지 안전성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4개 지역 모두 지층이 약하거나 석회암으로 구성된 지대가 아니고, 지진 우려가 있는 활성단층 지역도 아니어서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1월 2일 주민투표를 거쳐 89.5%로 찬성률이 가장 높았던 경주가 방폐장 부지로 선정됐다. 부지선정 방식이 결정되기까지는 19년의 논란이 있었지만 선정 공고부터 유치 신청, 현장 방문, 조사결과 발표, 주민투표까지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방사능 핵종에 대해 설명하는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 ⓒ 박장군

“경주시의 경우 부재자 신고 비율이 38%에 육박했고, 부재자투표도 각 가정에서 진행된 후 마을 이장이 투표용지를 수거해 갔고, 어떤 곳은 이장이 찬성표를 찍어서 우편함에 넣은 사례도 있었어요. 선거 자체가 광범위하고 계획적인 부정선거였죠.”  

이 사무국장은 주민투표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전선거운동, 향응제공, 공무원의 선거개입, 부재자 신고 조작 등 양상도 다양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주민투표 일주일 전에 있었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기자회견에 따르면 접수 기간 이전에 부재자 신고를 하거나, 사회복지사가 복지수급자에게 부재자신고를 강요하거나, 신고하지도 않았는데 부재자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안전관리 대책 세우고 탈핵 시점부터 정해야

경주 방폐장은 현재 10만 드럼의 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는 1단계 시설이 준공됐고 앞으로 총 80만 드럼의 폐기물을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이 단계적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지표에서 약 30m 이내의 깊이에 방폐물을 처분하는 방식)은 12만5천 드럼 규모로 2019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전에서 사용된 작업복, 장갑 등의 비품과 각종 기계부품 등을 아우르는 중·저준위 폐기물들이 월성원전, 한울원전 등지에 임시 저장돼 있다가 이곳으로 속속 옮겨지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10만 드럼이면 지난 30여 년간 발생한 모든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지적하며 앞으로 공사를 확장할 필요가 없도록 탈핵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무국장은 특히 원전과 방폐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지역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구조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쪽에서는 계속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면서 또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의, 특정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 처리방법을 찾는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가 핵발전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지금부터 원전을 어떻게 폐쇄해 나갈 것인가, 이런 것들이 확정이 돼야 해요. 그리고 그 전제하에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죠.”  

동시에 경주 방폐장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방폐장을 폐쇄한 후에는 사일로에 들어오는 물을 더 이상 퍼내지 않게 돼 사일로가 몇 달 내로 지하수로 가득 차고, 이를 통해 방사성 물질 누출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주탈핵연대는 지난 8월 방폐장 준공식 때 발표한 성명서에서 “방폐장의 제도적 관리 기간을 선진국 수준인 300년으로 확정하고, 관리 기간 동안 계속 지하수를 퍼내라”고 주문했다. 또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활성단층의 존재 등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 진단하고, 2단계 표층처분 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한 토론회를 열자고 요구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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