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제천시 빈집 리포트① 인구 유출로 버려진 도심 빈집, 미관·안전 해쳐

충북 제천시 영서동 빈집 앞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김다연, 양혁규 기자
충북 제천시 영서동 빈집 앞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김다연, 양혁규 기자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 진녹색 가림막이 나왔다. 너비 20m, 높이 2m쯤 되는 가림막이 거대한 담장처럼 설치돼 있다. 그 아래 화단에는 철쭉이 한 뼘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잡초는 거의 보이지 않아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가림막 너머는 달랐다. 막 뒤편으로 돌아가면 낡은 기와집이 있다. 반쯤 허물어진 지붕엔 폭 1m 정도 되는 구멍이 뚫려 있다. 처마 바로 밑에는 부러진 나무 가닥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고, 떨어진 조각들은 바닥에 제멋대로 뒹굴고 있다. 그 옆으로 잡풀이 무성했다. 사람의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충북 제천시 영서동, 가림막 뒤에 숨겨진 빈집이었다.

흉물이 된 빈집, 임시 가림막이 최선

“어르신 돌아가시고 빈 거지. 지금 주인은 충주에 있고. 집 내놨는데 안 팔렸어요. 솔직히 이 동네 누가 와 살겠어.” 지난 4월 8일 <단비뉴스> 취재팀과 만난 영서동 5통 통장 지영환(61)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주인이 숨진 뒤 남겨진 집을 아들이 부동산에 내놨지만, 지금까지 매수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팔리지 않은 집은 수십 년 넘게 방치됐다. 지붕 한쪽이 주저앉으면서 마을의 골칫거리가 됐다.

지난 4월 8일, 취재팀과 만난 지영환(61) 통장이 가림막 설치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지 통장은 “쓰레기랑 지붕 기와가 무너진 것 때문에 보기 너무 지저분해서 가림막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양혁규 기자
지난 4월 8일, 취재팀과 만난 지영환(61) 통장이 가림막 설치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지 통장은 “쓰레기랑 지붕 기와가 무너진 것 때문에 보기 너무 지저분해서 가림막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양혁규 기자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가림막이 세워졌다. 지 통장은 그 당시 영서동에 새로 부임한 동장의 제안으로 가림막이 설치됐다고 했다. 빈집도 사유재산이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장이 직권 철거를 할 수도 있지만 그 권한을 쉽게 행사할 수는 없다. 다른 지자체처럼 빈집을 사들여 주민공용공간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제천시에는 그만한 예산이 없었다. 결국 조금이라도 주변 환경을 개선할 방법은 가림막뿐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림막만으로는 부족했다. 내려앉은 지붕, 부서진 기왓조각, 곰팡이 슨 벽면. 길 건너편에서 보면 가림막 너머로 흉물스러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 통장은 가림막을 쳤는데도 보기 흉해서 자기 집 마당에 있던 꽃을 가져다 심었다며 화단에 돋운 흙을 손질했다. 지 통장은 “안 그래도 낙후된 동네인데, 이거 때문에 동네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이 나서는 것 말고는 방법 없어

20년 넘게 방치된 제천시 영서동 빈집의 마당 앞에는 이수한(52) 씨가 직접 세운 울타리가 있다. 빈집의 창문과 벽면은 온통 나무판자로 덧붙여져 있다. 김다연 기자
20년 넘게 방치된 제천시 영서동 빈집의 마당 앞에는 이수한(52) 씨가 직접 세운 울타리가 있다. 빈집의 창문과 벽면은 온통 나무판자로 덧붙여져 있다. 김다연 기자

개인이 나선 곳도 있다. 영서동 5통 빈집에서 지하차도를 지나 교차로 건너편 골목으로 90m쯤 걸어가면 주민 이수한(52) 씨가 직접 정비한 빈집이 보인다. 20년 동안 방치돼 있던 이 집은 4년 전만 해도 미닫이문의 창이 깨져 미관상 좋지 않은 곳이었다. 외부인이 출입한 흔적도 발견돼 주민들의 불만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깨진 창문 위에 흰색으로 페인트칠 된 나무판자들이 가지런히 덧대져 있다. 마당에는 출입을 막는 초록색 울타리도 설치돼 있다. 모두 이 씨가 손본 흔적이었다. 건설업을 하는 이 씨는 “공사 중 남은 자재를 가져다 쓴 거라 따로 돈이 들진 않았지만, 추산하면 100만 원 정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도 처음부터 직접 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원래는 소유주와 연락해 철거를 요구하려 했다. 하지만 막대한 빚을 지고 도망간 집주인의 행방을 찾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제삼자가 철거할 수도 없었다.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자체장의 직권 철거 권한도 없었다. “이래저래 알아봐도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결국 이 씨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동네 어르신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이 집에 대해) 자꾸 말이 나오길래 그냥 제가 막겠다고 했죠.”

농촌 못지않게 늘어가는 도심 속 빈집

제천시 2021년 빈집실태조사 현황. 그래픽 김다연
제천시 2021년 빈집실태조사 현황. 그래픽 김다연

제천시 전역에 방치된 빈집은 2021년 기준 총 349채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라 제천시가 용역을 발주해 조사한 결과로, 일시적 빈집이나 공공임대주택은 제외하고 1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은 집만 따져 본 숫자다. 제천시는 5년마다 빈집 실태조사를 하는데, 법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자체가 공식 조사한 데이터는 2021년이 유일하다. 마지막 실태조사 후 2년이 지난 것을 감안하면, 제천시 안에 빈집은 현재 349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천시 도시ㆍ농촌 지역별 빈집 수 비교. 그래픽 김다연
제천시 도시ㆍ농촌 지역별 빈집 수 비교. 그래픽 김다연

버려진 빈집이 농촌 지역에만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제천시의 전체 9개 동지역에서 확인된 빈집은 모두 142채다. 전체 빈집의 약 40%가 도심에 있는 셈이다. 앞에서 본 두 빈집이 있는 곳도 동지역이다. 영서동은 제천의 대표적인 원도심이다. 이곳에 방치된 빈집은 모두 25채로, 읍면지역에 해당하는 한수면(19채)이나 금성면(17채)보다 더 많다.

등급별로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소규모주택정비법은 빈집을 노후 정도에 따라 1등급부터 4등급으로 구분한다. 상태가 양호한 1·2등급과 달리 3·4등급은 훼손 정도가 심해 안전 조치가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제천시 전체 빈집 가운데 3·4등급에 해당하는 곳은 모두 189채인데, 이 중 63채가 동지역에서 발견됐다. 낙후된 빈집 3채 중 1채는 도심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말이다. 제천시 빈집 실태조사 결과는 도심에서도 농촌 못지않게 빈집이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심 속 빈집은 농촌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주택이 밀집해 있다 보니 불이 나면 불길이 삽시간에 번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 씨가 직접 손을 본 영서동 빈집은 6년 전 노숙인이 몰래 침입해 불을 피웠다가 송두리째 탈 뻔한 적이 있다. 영서동은 한눈에 보기에도 집 수십 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다. 초기에 진화되지 않았다면, 피해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빈집 앞에 울타리를 쳤던 이 씨는 “그때 집 안에서만 불이 나서 다행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인구 자연 감소, 소재불명 등 빈집 방치 원인도 다양

취재팀이 조사한 제천시 빈집 방치 원인. 그래픽 김다연
취재팀이 조사한 제천시 빈집 방치 원인. 그래픽 김다연

제천에는 집주인이 고령으로 사망하면서 방치된 빈집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26일까지 무작위로 방문한 제천시 빈집 10채의 방치 원인을 조사한 결과, 고령으로 숨진 주민의 집이 5채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 3채는 주인 소재 불명, 2채는 불이 난 뒤 버려진 곳이었다.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에 있는 빈집. 상태가 양호해 겉보기엔 빈집처럼 보이지 않는다. 김다연 기자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에 있는 빈집. 상태가 양호해 겉보기엔 빈집처럼 보이지 않는다. 김다연 기자

고령 사망자가 남긴 빈집은 대부분 농촌지역에 있다. 취재팀이 조사한 빈집 10채 가운데 4채는 송학면에 있는데, 모두 고령으로 사망한 이들의 집이다. 이 중 2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귀촌한 노부부가 살았으나, 이사 온 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겉보기엔 새집처럼 깨끗했다. 노부부의 사망 이후 타지에 사는 자식들이 집을 내놨지만, 여태까지 사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맞은편 언덕 위에 사는 주민은 “지난번에 세 명이 왔다가 그냥 보고만 갔다”고 말했다.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주민 배복녀(75) 씨 집 뒤편에 있는 빈집의 모습이다. 김다연 기자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주민 배복녀(75) 씨 집 뒤편에 있는 빈집의 모습이다. 김다연 기자

다른 1채는 자식들이 처분할지 합의를 못 한 곳이고, 나머지 1채는 철거 의사는 있지만 자식이 서울에 살고 있다 보니 관리가 되지 않아 버려진 집이다. 포전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배복녀(75) 씨는 “(그 빈집이)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아들이 나보고 ‘철거 좀 해주세요’ 하는데 자식이 와서 해야 된다”고 말했다. 빈집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비닐과 먼지 쌓인 나무판자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에선 악취도 났다. 배 씨는 “(빈집 때문에) 저녁으로 서먹서먹하다. 비닐로 이렇게 해놓아서 바람 불면 막 소리도 난다”며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도심에 있는 빈집의 원인은 다양했다. 제천시 전체 9개 동 가운데 원도심에 해당하는 영서동, 청전동 일대를 중심으로 빈집 6채를 확인한 결과, 집주인의 소재불명으로 인한 방치가 3채로 가장 많고, 이어 화재 2채, 고령 사망 1채 순이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영서동 사례들도 포함돼 있다.

제천시 영서동의 한 골목에 있는 작은 빈집. 신순옥 씨(70)는 “노숙인이 안에 들어와 불을 피우길래 우리가 물건을 가져다 놓고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다연 기자
제천시 영서동의 한 골목에 있는 작은 빈집. 신순옥 씨(70)는 “노숙인이 안에 들어와 불을 피우길래 우리가 물건을 가져다 놓고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다연 기자

집주인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는 빈집 중 1채는 영서동의 한 세탁소 옆에 있는데, 20년 넘게 주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버려진 집이다. 다른 1채는 남당초등학교 인근 좁은 골목에서 발견됐다. 옆에서 밭을 매고 있던 신순옥(70) 씨는 “여기 딸이 우리 딸이랑 동창인데, 다른 도시에서 가끔 오다가 몇 년 전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겨울에 집 없는 분들이 여기다가 불을 막 해놓더라고요. 조금 피웠으니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제천시 영서동에 있는 화재로 방치된 빈집. 김다연 기자
제천시 영서동에 있는 화재로 방치된 빈집. 김다연 기자

화재 때문에 방치된 집 중 1채는 가림막이 세워진 영서동 빈집 근처에 있다. 가림막을 끼고 골목으로 100m 정도 걸어가면 남색 기와지붕 집이 보이는데, 이 집은 몇 년 전 화재가 발생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벽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고, 깨진 유리창 사이로는 잿더미로 변한 내부 모습이 훤히 보였다. 지영환 통장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불 나고 집주인한테 뜯으라고 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못 하겠대요. 집은 내놨는데, 여기 2억 주고 들어가서 리모델링까지 하면 3억이에요. 아니 누가 미쳤다고 이 동네 와서 그 돈 주고 사요. 3억이면 청전동 건물을 사요, 건물을.”

나머지 1채는 청전동에 있다. 청전현대아파트 입구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편의점이 보이는데, 그 옆에 있는 집이 화재로 버려진 곳이다. 지난 4월 26일 빈집 주인 정정순(72) 씨는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불이 났는데 고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내놨지만 이 동네 경기가 안 좋아서 매매가 안 된다. 우리도 팔고 싶다”고 답답해했다.

산업 쇠퇴로 쇠락하는 지방 소도시

빈집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구의 자연 감소에 있다. 고령자가 사망해 빈집이 생겨도 들어올 사람은 없다 보니 빈집이 늘어나는 구조다. 앞서 취재팀이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에서 발견한 빈집은 모두 인구의 자연 감소로 발생한 경우였다.

하지만 인구의 자연적인 감소가 빈집이 생기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특정 지역의 산업이 쇠퇴하면 다른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기 때문에 빈집이 증가하기도 한다. 충북연구원 정삼철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4월 24일 단비뉴스와 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인구의 자연 감소 때문에 생겨나는 빈집도 있지만, 산업구조 변화 때문에 인구가 빠져나가 생겨나는 빈집도 있다. 두 가지가 맞물려 생긴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제천시도 산업이 쇠퇴하면서 인구가 줄어든 도시다. 1970년대만 해도 제천시는 인구가 몰리는 지방 소도시였다. 석탄 산업이 발달한 태백, 영월, 정선 등 태백권의 대표 상업 도시였던 데다, 중앙선과 태백선을 잇는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9년에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촌이 몰락하고, 영동·중부 고속도로가 신설되면서 제천시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1975년 이후 제천시 인구 감소 추이. 그래픽 김다연
1975년 이후 제천시 인구 감소 추이. 그래픽 김다연

정 연구위원은 “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태백 등 인근 도시의 인구가 빠지니까 제천의 상권 경기도 같이 위축되고, 일자리도 줄어들고, 사람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동시에 영동, 중부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원주 문막에 산업단지가 들어가게 됐다. 그때부터 인구가 문막으로 몰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천시 인구는 1975년 당시 16만 9925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1990년에 13만 9928명으로 급락한 뒤 지금까지 13만 명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만큼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같은 제천시 내에서도 가장 타격을 입은 곳은 영서동이었다. 영서동은 한때 제천역을 끼고 있어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었다. 영서동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은 “옛날에는 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많이 살았다”고 말했다. 철도 산업이 쇠퇴하면서 영서동도 빠르게 몰락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고, 버려진 집들이 속출하면서 동네는 슬럼화됐다. 주력 산업의 쇠퇴가 지방소도시 구도심의 쇠락으로 이어진 셈이다.

2편에서는... 빈집 문제 해결, 왜 속도 못 내나?

빈집은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심에도 곳곳에 방치된 빈집이 많은 데다 빈집의 낙후 수준도 농촌 못지않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도심 속 빈집은 안전사고의 위험도 크고, 슬럼화를 초래해 도심 전체의 쇠락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하지만 빈집 문제의 해결은 더디기만 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2편에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빈집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제천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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