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초청특강]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

지록위마(指鹿爲馬).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바이든-날리면’ 사태와 관련해 거론된 고사성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중국 진나라 시황제의 환관 조고가 황제 사후 권력을 휘두르며 진실을 말하는 이들을 탄압했던 일에서 유래했다. 손관수(58) 한국방송(KBS) 보도본부장은 지난달 27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언론인 초청 특강에서 지록위마에 얽힌 고사를 설명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과 저널리즘연구소가 주최한 이날 특강의 주제는 ‘공영방송 KBS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이었다. 1993년 KBS 기자로 입사한 손 본부장은 정치부 등을 거쳐 중국 상하이 특파원으로 활약했고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사회주간과 광주방송총국장을 지냈다. 제8대 방송기자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바이든-날리면’ 사태 후 MBC에 쏟아진 탄압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저널리즘연구소 초청 언론인특강에서 ‘공영방송 KBS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저널리즘연구소 초청 언론인특강에서 ‘공영방송 KBS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며 2세 황제에게 바친 후) 사슴을 사슴이라고 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이유를 걸어서 제거해 버려요. 우리가 알아야 할 지록위마 사건의 핵심은 거기에 있어요.”

손 본부장은 바이든-날리면 사태 후 문화방송(MBC)에 쏟아진 압박을 ‘지록위마의 현재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통령이 미국에서 말실수를 한 다음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실수를 하고, 언론과의 관계에서 굉장한 위협적인 상황을 노출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은 윤 대통령이 비속어를 쓰는 영상이 방영돼 물의를 빚자 대통령실이 나서서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라고 한 게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했다”며, 이를 최초 보도한 MBC를 문제 삼은 일이다.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단에 MBC의 출입 정지 등 징계 방안을 논의해 달라고 요구했고,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위한 전용기 탑승에서 MBC 기자들을 배제했다. 또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MBC 보도에 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가 조정 불성립 결정이 나자, 박진 장관을 원고로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했다. 국세청은 정기 세무조사를 벌여 MBC에 52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했고, 고용노동부는 연차수당 등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해 특별근로감독을 단행했다. 

‘정순신 아들 학폭’ 보도 후 수신료 분리 징수 제기 

손 본부장은 KBS 수신료를 둘러싼 사회적인 논의에도 권력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KBS가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을 보도한 지 일주일 만에 대통령실이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한국전력에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에 권력이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수신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KBS는 지난 2월 검사 출신인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되자 정 변호사의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저질렀고, 정 변호사가 사건 처리 과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정 변호사는 임명 하루 만에 낙마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과 학부생, 지역 주민 등 수강생들이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의 강연과 질의응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청강생을 포함, 70여 명이 참석했다. 지수현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과 학부생, 지역 주민 등 수강생들이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의 강연과 질의응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청강생을 포함, 70여 명이 참석했다. 지수현 기자

손 본부장은 특히 대통령실이 대국민 소통창구인 ‘국민제안’을 통해 수신료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끌어가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국민제안 홈페이지에서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 징수하는 방안에 관해 한 달 동안 국민참여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 결과 전체 응답자 중 96.5%(5만 6157명)가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 본부장은 “인터넷 여론조사 방식인 국민제안을 통해 논의할 경우 수신료 제도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제안 누리집 갈무리
국민제안 누리집 갈무리

손 본부장은 대통령실의 주장에 사실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신료 통합 징수에 관해 헌법소원이 청구된 적이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전체 공익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일본 등에서도 수신료 폐지나 인하를 논의 중이라는 주장에 관해서는 “프랑스의 경우 수신료를 폐지하고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고, 일본은 위성방송 수신료 수입이 늘어 대신 지상파 수신료를 인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본부장은 수신료 분리 징수나 폐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면 ‘정공법’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휴대전화, 아이피티비(IPTV), 케이블 등 미디어가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수신료 통합 징수가 합리적인지 논의해 볼 필요는 있다”며 “그렇다면 연구자를 포함해서 사회적인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진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위기’에 공영방송 역할 더 중요해져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이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수강생의 질문에 답하며 활짝 웃고 있다. 지수현 기자
손관수 KBS 보도본부장이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수강생의 질문에 답하며 활짝 웃고 있다. 지수현 기자

손 본부장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의 부작용이 심각해질수록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수신료 수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영방송의 위기라고 하지만, 지금의 언론 현실을 보면 공영방송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검증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 본부장은 “공영방송 KBS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이 특별히 따로 있는 건 아니다”며 “저널리즘의 원칙에서 추구하는 기본,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과 맥락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한다면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영방송 KBS가 다른 상업방송과 다른 것은 소외계층,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박동주(27) 씨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한동훈 검사장’ 사건 관련 KBS의 오보 이후 데스킹(기사검수) 시스템에 변화가 있었는지 질문했다. 손 본부장은 “최근 저널리즘책무실을 만들어 더블체킹(이중점검)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답했다. 담당 부서의 데스킹과 별도로 고참 기자들이 보도에 사용된 개념과 맥락 등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시스템이 오류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강생 박동주 씨가 KBS의 데스킹 시스템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수강생 박동주 씨가 KBS의 데스킹 시스템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줌(Zoom) 화상회의로 참여한 취업준비생 장혜원(26) 씨는 ‘KBS가 기대하는 기자의 자질과 역량’에 관해 질문했다. 손 본부장은 “기자는 질의응답을 하는 직업이므로 짧은 시간에 말귀를 잘 알아듣고 맥락을 파악해 소통을 잘 해내야 한다”며 풍부한 독서를 통해 맥락을 파악하는 훈련을 할 것과 사회 문제에 관해 깊이 고민해 볼 것을 조언했다. 그는 또 “진실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성실해야 한다”며 면접에서 이런 점을 눈여겨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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