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전혜원/서해문집/15,000원

전혜원 <시사인> 기자는 한국 언론의 노동 보도 행태에 갈증을 느꼈다. 평소 출입처를 오가느라 바쁜 기자들은 큰 사건이 나야 노동 현장을 찾았다. 고공 농성이나 대규모 파업이 있기 전까지는 보도하지 않았다. 사건 중심으로 보도하느라 사안의 배경과 경과를 생략하고 단편만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정파성도 강했다. 보수언론은 ‘귀족 노조’, ‘강성 노조’라고 노동계를 공격했다. 진보 언론은 노동자를 ‘연약한 피해자’로만 간주해 방어했다. 그렇게 한국의 노동 보도는 입체적인 논의를 비껴가고 있었다.

전 기자는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 노동 기사”를 쓰고 싶었다. 우선 다양한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서로 다른 입장에 귀를 기울였다. 문제의 핵심이거나 해결책이라고 생각되면 진영에 상관없이 깊이 다뤘다. 노동조합의 문제점과 모순까지 합리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서적과 논문, 해외 사례를 뒤져 가며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긴 기사를 쓰는 주간지의 호흡과 출입처에 얽매이지 않는 근무 환경도 도움이 됐다.

그렇게 진영을 넘나들며 깊고 정확하게 취재한 결실을 모아 책으로 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전 기자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쓴 23편의 기사를 엮은 책이다. 2013년 <시사인>에 입사한 전 기자는 2017년부터 경제부에서 노동 기사를 썼다. 산업재해, 비정규직, 호봉제, 기술 혁신 등 노동과 관련한 굵직한 논의를 두루 다뤘다. 책을 내면서 기존 기사를 보완하고 취재 후기도 새로 썼다.

전혜원 시사인 기자가 3년 여 동안 작성한 노동 관련 기사를 엮은 이 책은 2021년 11월 출간됐다. 소설가 김훈이 추천사를 썼다. 출처 서해문집
전혜원 시사인 기자가 3년 여 동안 작성한 노동 관련 기사를 엮은 이 책은 2021년 11월 출간됐다. 소설가 김훈이 추천사를 썼다. 출처 서해문집

원청이 책임질 수 없는 노동 현실

이 책에는 전 기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노사 양측의 입장이 공존한다. 관리대상 유해물질 사망 사고 보도도 그런 사례다. 2018년 5월 28일, 인천 남동공단의 한 영세 도금업체에서 23세 김정민 씨가 사망했다. 사인은 유해 화학물질 급성 중독이었다. 공장 안에는 산안법에 따라 설치됐어야 하는 환기 시설이 없었다. 유해가스 노출 방지를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송기 마스크는 물론이고 어떤 종류의 마스크도 김 씨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찾아간 남동공단에서 전 기자는 면 마스크를 끼고 작업하는 어느 노동자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전 기자는 유해물질에 노출돼 급성중독으로 사망한 다른 사건도 분석했다. 공통점이 있었다. 사망자 모두 파견 노동자나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하청·파견업체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전 기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청년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돼 사망한 사건의 특성을 항목별로 분석하여 2018년 시사인 564호 기사에 실었다. 사망자 모두 하청 업체 소속이었다. 출처 시사인
전 기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청년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돼 사망한 사건의 특성을 항목별로 분석하여 2018년 시사인 564호 기사에 실었다. 사망자 모두 하청 업체 소속이었다. 출처 시사인

김 씨가 일하던 곳도 6명이 일하는 영세 하청업체였다. 원청-하청 구조에서 비롯한 산업재해 사망인 만큼 원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 기자는 현장에 갔다가 어느 하청 업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원청 책임’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기자들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하청 업체 및 그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의 보도를 그가 비판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원청 이름이 적힌 수십 개 파일철을 보여줬다. 그가 대표로 있는 원청 업체만 80개였다. 김 씨가 사망한 업체의 직원도 “원청이 누군지 모른다”고 말했다. ‘원청 책임’이 온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전 기자는 현장 취재를 통해 알게 됐다.

혁신과 약탈은 함께 온다

거의 모든 노동 이슈가 이렇듯 복잡하다. 2020년 3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속칭 ‘타다 금지법’이었다. ‘타다’는 렌터카 서비스다. 다만, 차량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기사가 딸린 차량을 빌려 준다. 많게는 몇 억 원을 내고 택시 면허를 사서 영업하는 개인택시와 큰 차이가 없다. 개인택시 기사들 입장에서 ‘타다’는 약탈이었다. 자신들은 몇 억 원을 내고 택시 면허를 얻었는데, 타다 기사들은 면허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손님을 빼앗아가면서 시장을 교란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언론은 택시 기사와 타다의 편으로 갈려 이분법적인 보도를 내놓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전 기자는 택시가 왜 불편한 서비스로 전락했는지 물으며 시작한다. 사측은 택시 기사들에게 사납금을 책정해 왔다. 기사들이 성실하게 노동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택시 기사들로선 매일 채워야 하는 금액을 벌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택시 기사들이  장거리 손님을 골라 태우는 관행이 생겼다.

반면, ‘타다’는 사납금을 책정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타다 기사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위치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타다 기사들로선 손님을 골라 태울 필요도 없었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수요가 몰리는 특정 시간에 높은 가격을 책정하니, 굳이 먼 거리를 운행할 필요가 없었다. 손님의 수요에 맞춰 기사들의 운행 공급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타다’는 데이터를 활용해 승객과 기사의 어려움을 동시에 해결하는 혁신이었다.

이러한 양면성은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기술 혁신으로 누구나 택시를 몰 수 있게 된 것처럼, 식당 운영에도 이제 숙련이 필요하지 않다. 대기업은 프랜차이즈 점주에게 노동을 외주 주고, 상품 선정과 조리 같은 숙련을 표준화해 제공한다. 점주들은 사실상 피고용자가 돼 돈을 번다. 다만, 숙련의 해체로 노동의 대가가 줄었다. 프랜차이즈 점주가 버는 돈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자영업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선택지다.

산업 구조의 변화에는 소비자를 위한 혁신과 노동자에 대한 약탈의 요소가 공존한다는 점을 전 기자의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혁신을 유지하면서도 약탈을 방지하려면, 전체 노동시장이 더 많은 노동자를 책임지는 등 사회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 기자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저숙련 자영업의 확대를 통해 분석한 기사 ‘백종원 현상과 자영업의 덫’을 시사인 580호에서 보도했다. 출처 시사인
전 기자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이유를 저숙련 자영업의 확대를 통해 분석한 기사 ‘백종원 현상과 자영업의 덫’을 시사인 580호에서 보도했다. 출처 시사인

노동조합이 나서서 합의한 미래

앞으로 기술 혁신이 빨라지면 숙련 노동의 가치도 덩달아 낮아질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전 기자는 노동자, 사용자, 정부가 노동 시장 전체의 규약을 새로 만든 해외 사례를 대안으로 소개했다.

프랑스에서는 산별 협약이 일반적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체 노동 인구의 10% 미만이지만, 산업별 사용자를 대표하는 단체의 조직률은 7~80%에 이른다. 이 때문에 산별 노사가 합의한 사항은 정규직이나 특정 업종, 특정 기업이 아닌 산업 전체에 적용된다. 그 결과, 노조에 가입한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까지 노사 합의에 따른 보호를 받는다. 이런 구조에 의해 대기업 임금을 억제하면서 하청 업체의 임금을 올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스웨덴은 정부 주도로 노동 시장의 불평등과 불안정을 해소한다. 특정 산업을 넘어 사회 전체적인 규약을 노·사·정이 함께 만드는데, 특히 실업 이후 재취업까지 직업교육 및 실업급여를 정부가 제공한다. 노사가 함께 이를 정부에 요구했고, 이에 필요한 복지 재정 확보를 위해 노와 사는 적절한 수준의 세금을 감당한다. 안정적 노동시장을 만들려면, 사회 전체의 미래를 바라보는 노·사·정이 숙의하여 타협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 기자는 ‘배달의 민족’ 노사의 협약 체결을 업종별 협약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출처 시사인
전 기자는 ‘배달의 민족’ 노사의 협약 체결을 업종별 협약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출처 시사인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 기자는 지난 2020년 11월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이 체결한 노사 협약을 주목했다. 플랫폼 노동 업계에서 처음으로 노사 자율 협약을 체결하면서, 협약 내용에 “정확한 사회보험료 징수를 위해 국세청이 역할을 하라”는 문구를 넣어 정부에 건별 사회보험 징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와 협약이 늘어나려면, 현장을 담고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며 대안을 제공하는 좋은 노동 기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좋은 노동 기사가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전혜원 <시사인> 기자의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을 읽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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