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광장에서 밤을 새운 건 우연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같이 가자고 한 친구가 집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댄 탓이었다. 친구 없이 혼자 의경들 사이를 비집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벽에 길바닥에 빈 상자를 깔고 웅크린 채 꾸벅꾸벅 졸았다. 아침이 되자 살수차는 우리에게 물을 뿌려댔다. 대학생 언니 3명은 ‘애기들’이 다치면 안 된다며 우리 앞에 섰지만 물대포에 속절없이 뒷걸음질만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목숨만 겨우 건진 패잔병 같았다. 정강이에 시퍼런 멍을 달고 구겨진 교복
“여러분은 내각제로 바꾸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시나요?”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정치개혁의 과제와 현실’을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10여 명이 손을 들었다.최근 개헌 논의에서 내각제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이 의제를 던지고 상황을 주도해 입법부와 사법부 등 정치의 다른 주체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나 무기력했다. 대통령의 독주 탓에 내각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내각제는 거의 모든 정책 결정을 의회에 맡겨 최고 권력자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HLN '낸시 그레이스'의 평균 시청자가 28만3천 명이야.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인 '뉴스나이트'는 96만 명이지. 일주일 전, 케이시 앤서니 재판을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낸시 시청자는 150만을 넘었어. 반면 '뉴스나이트'는 46만 명이 돼버렸지. 5일 만에 2등에서 5등이 된 거야."2011년 미국은 케이시 앤서니 사건으로 들끓었다. 미혼모인 케이시는 두 살짜리 자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부쳐졌다. 언론사들은 술과 파티를 좋아하고, 아이의 죽음에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 케이시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반면 ‘뉴스나이트’ 제작진은
“지금부터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장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곧 사라질 신생 단과대학의 영정사진을 바라봐 주십시오. 학교는 학우들의 꿈이자 미래였던 우리의 학과, 그리고 단대를 일방적으로 폐지하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신규 과들을 개설하려고 합니다. 이에 구조조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을 담아 절하겠습니다. 일동, 절.” 교육부 지원금 받으려 취업 부진 학과 통폐합 추진 2016년 새 학기 개강 첫날인 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동선동 성신여대 잔디밭에서 ‘단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 프롤로그 제목이다. 열두 살인 주인공이 어른들을 관찰하는 게 주 내용이다. 나는 소설의 그와 다르게 열두 살 이후에도 한참 더 성장해야 했지만, 이때 세상살이의 핵심 한두 가지를 깨치긴 했다. 무조건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이롭다는 것을.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 힘세고 덩치 큰 여자애가 있었다. 남자애들과 어울려 축구를 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반 아이들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우리끼리 놀 때면 모두 그 애 눈치를 살폈고, 그의 뜻대
‘여자가 군대에 간다면?’네이버에 2015년 2월부터 매주 월요일 정식 연재하고 있는 웹툰 <뷰티풀 군바리>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은 남성만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이는 남자가 차별받는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 차별은 군 가산점제로 보상하거나, 여성도 똑같이 군대에 가서 없애야 한다. 후자의 경우, 문화방송(MBC)은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 편을 만들어 높은 인기를 끌었다.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도 주변국 위협 증가와 인구 감소로 여성이 군대에 가는 상황을 가정한다. <뷰티풀 군바리>는 10대, 20대,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진다.’조선 시대 영남과 충청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문경새재를 넘어 배를 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추풍령을, 세 번째는 죽령을 지나 단양 장회나루에서 남한강 물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선비들 중에는 죽령을 지나면 과거에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죽령을 피해 다닌 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시험을 보러 가는 유생들은 단양 길을 피했다지만, 관직에 오른 선비들은 단양을 찾는 이가 많았다. 남한강과 산이 만드는 절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율곡 이이,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구운몽을
‘나는 존엄하다.’ 이를 악물고 수십 번 속으로 되뇌었다. 조금만 더 가면 지하철역 화장실이 나온다. 변기에 앉기 전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순간의 실수로 내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화장실에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 때마다 뱃속도 부글거린다.휴-. 요란하게 거사를 끝내자 엄청나게 긴장해있던 항문 주위 괄약근이 드디어 풀린다. 여유가 생기니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온하게 들리는 음악의 정체는 사람들이 ‘클래식’이라 부르는 서양 고전음악이다.공중화장실에서 클래식 감상하기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저는 무역회사 사장이 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면 세계여행도 가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나라도 하고 싶어요. 아프리카 국가나 파키스탄 같은 어려운 나라에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기술학교를 만들고 싶어요.”검은 곱슬머리 사내아이가 어눌한 한국어로 다부지게 ‘꿈’을 발표했다. 알리우스만(설비과 1학년)은 3년 전 파키스탄에서 온 중도입국 청소년이다. 파키스탄에 ‘다솜학교’와 같은 기술학교를 짓는 꿈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말간 얼굴의 짧은 머리 소녀가 무대 위로 올랐다. 7년 전 몽골에서 입국한 이진아(전기과 1학년)는
“수습 기간에 동기들이랑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자살하고 싶다’였다.”작년 12월 한 종합일간지에 입사한 A 기자가 수습기간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초반 한 달은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요령이 붙고 나서 큰 사건이 없는 날에는 네 시간쯤 잤다. 온종일 경찰서와 법원,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선배에게 보고할 기삿거리를 찾았다. 보고 간격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다른 언론에서 쓴 기사를 놓치거나 선배 마음에 들게끔 취재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자정이나 한 시에 마지막 보고를 마치고 나면 경찰서 안에 있는 기자실에서 잠든
메마르지만 행복한 땅지난 7월 20일 세명대 해외봉사단 ‘몽콜리아’는 8박 9일 일정으로 몽골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재학생 15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자르갈란트 지역에 머무르며, 마을 시설 보수, 한국어 교육, 나무 심기, 에코백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몽골어로 ‘자르갈란트’는 ‘행복의 땅’이라는 뜻이다. 자르갈란트는 수도 울란바토르에 속하지만, 중심지에서 약 60km 떨어져 있다. 초원 지대이다 보니 주민은 대부분 목축으로 생계를 잇는다. 길을 가다 보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와 양 등 가축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하늘을
[포토뉴스]지난달 30일 서울시는 한강 하류 지역인 양화대교~행주대교 구간에 조류경보를 내렸다. 2000년부터 경보 제도를 도입했지만, 조류경보가 발령된 것은 처음이다. 3일에는 녹조가 점점 심해져 양화대교~동작대교 구간까지 경보를 확대했다. 하류에서는 독성 물질이 있는 조류가 검출되기도 했다. 시는 녹조 현상의 원인으로 가뭄과 팔당댐 방류량 감소를 꼽았다. 시민단체 환경운동연합은 한강 하류의 신곡수중보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게이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합니다."무대에서 춤을 마친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남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쓰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잠시 후 등장한 사회자 두 명도 '이상한' 모습이긴 마찬가지였다. 남자 사회자는 하늘거리는 검정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여자 사회자는 파랗게 염색한 짧은 머리를 왁스, 스프레이 등으로 바싹 세웠다. 성소수자를 일컫는 영어 단어인 ‘퀴어(queer)’는 기묘하다, 괴상하다는 뜻인데,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이 개념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국내 성소수자들의 집회인 제 16회 퀴어
"처음엔 반짝반짝 불도 들어와서 예쁜 건물이라고만 생각했지, 경마장인 줄 몰랐어요. 다 지어지고 나서 알았죠. 학교 앞에 도박장이 말이 되나요?”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임시 개장했다 문을 닫았던 서울 한강로3가 용산장외마권발매소(화상경마장)가 지난달 31일 정식 개장했다. 화상경마장은 실제 경주가 이루어지는 야외경마장보다 도박중독자 비율이 더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건물의 반경 500미터(m) 안에 유치원과 초중고 등 6개 교육시설이 몰려 있어 주민들의 반대가 격렬하다. 지난해 1월부터 경마장 건물 옆에 농성장을 차리고
세금을 들여 지은 청주시 노인전문병원이 위탁경영자도 구하지 못해 폐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폐업을 앞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환자 이탈도 가속화해 13일 하루에만 9명이 퇴원했다, 14일 현재 남은 환자수는 91명이다. 한때 160여 개 병상이 가득 차 입원 대기자가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환자들이 모두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 텅 빈 병실도 생겼다. “5명이 한 방에 있는데 오늘(13일) 한 명이 나가고 내일모레 둘이 나가서 둘밖에 안 남는대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가요. 자꾸
"정부 정책은 대농, 기업농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전 그건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농 중심으로 가는 것도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비전은 제시해줘야 합니다. 3,000평 이하 빈농들에게 도시의 최저임금제처럼 기본소득을 주는 겁니다. 농업만으로 해결할 순 없어요.”2013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사료용을 포함해 23.1%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한다. 같은 해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은 5.7%였다. 이 중에서 37.3%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산업화를 위해
◀ 도박 추방의 날 기념 행사 현장 ▶“도박 중독 양산하는 마사회는 각성하라”◀리포트▶지난 5일 용산 화상 경마장 앞에서 도박 추방의 날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용산화상경마장 추방 대책위 등 5개 시민단체는 도박의 폐해를 지적하며 화상경마장 폐쇄를 요구했습니다. 이 날 행사에는 주민과 성심여고 학생 1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용산 화상 경마장을 둘러싼 갈등은 2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마사회가 용산역 부근에 있던 기존 화상경마장을 성심여중고 옆으로 이전하려고 하자,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습니다. 학생들에게 해를 끼치고 주거 환경이 훼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