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알지만, 남자라서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세계, 소년의 내상(內傷)이 있다. 여자라면 많은 말을 하지만, 말이 문제 그 자체임은 모르는 세계, 소녀의 내상이다. 사춘기 소년∙소녀의 번민과 성장을 치열하게 그린 영화가 있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는 애 딸린 과부와 결혼한 료타가 아버지 집에 찾아가 하룻밤 묵고 오는 이야기다. 늙은 아버지, 장년의 아들 료타, 의붓아들 3대가 나오지만, 이야기는 료타의 소년 시절 위주로 전개된다. 료타가 어린 시절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데다, 집 주인이 여전히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설렌다는 건 생각해보면 기묘한 일이다. 디지털 시대에 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면 익숙한 감정이기도 하다. 두 눈으로 스타를 직접 보지 않고도 충분히 ‘팬질(팬 활동)’을 할 수 있다.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는 스타의 모습은 현실의 그것보다 더욱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스크린은 텔레비전과 PC를 거쳐 모바일로 발전해나갔다. 팬질의 역사는 곧 미디어 발달의 역사다.내가 가수 이센스를 좋아한 궤적도 그와 일치한다. 2009년 그가 데뷔했을 때 텔레비전으로는 음악방송 ‘엠 카운트다운’을, PC웹으로는 ‘보이는 라디오’를 챙
‘고등래퍼2’ 김하온의 스타성이 미친 스타성은 뭐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순진함과 나이보다 많아 보이는 성숙함을 동시에 갖추다니! 역설적 진리라는 말이 있듯이 모순되는 두 면이 상충하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얼마 전 종영한 <고등래퍼2> 우승자, 김하온이 그렇다. 명상을 통해 내면의 욕심이나 증오를 비워낸다는 하온은 수상쩍긴 하지만 열아홉 살이다. 힙합에서 노자 <도덕경>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왜 랩을 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랩의 매력은 무아의 경지로 이끌어준다는 거예요. 제 입으로 뭔가 뱉어내고 있는데 저는
632년 정월 신라 수도 서라벌. 왕궁 월성(月城)에서 정복군주 진흥왕의 장손 진평왕이 재위 54년째 승하했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남동생인 백반과 국반은 이미 죽었다.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 삼국사기에는 ‘나라사람들이 딸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삼국유사에는 ‘성골(聖骨) 남자가 없어 여왕을 세웠다’고 나온다. 최초 여왕은 성은 김(金)이요, 이름은 덕만(德曼), 선덕여왕이다. ‘성골’은 진흥왕 맏아들 동륜태자 직계를 가리키는 말로 진평왕이 만들었다. 선덕여왕도 후사 없이 647년 세상을 뜬다. 당태종의 침략을 고구려가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그는 이제 MBC의 수장이 되어 <뉴스데스크>를 연출한다. <공범자들>과 <뉴스데스크>는 한 사안을 공통으로 다룬다. 그것은 MB다. 스토리텔링에서 <뉴스데스크>와 <공범자들>은 닮았다. 스토리는 도입, 전개, 클라이맥스, 정리에 따라 전개된다.우선 도입에서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가 속한 시간과 장소가 드러난다. 이 정보는 작품 전체를 암시한다. <공범자들> 도입은 다음 내레이션으로 집약된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다. 그는 언론에 대해 전임자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언론인들은 미처 그것을 알지 못
미투를 고백하기에 가장 적절한 언론은 어디일까. 결과로 보면 그 언론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JTBC다. 서지현, 김지은, 최영미, 엄지영 씨는 모두 JTBC 뉴스룸을 택했다. 김지은 씨는 뉴스룸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했다, 방송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고 국민이 자신을 지켜주면 좋겠다고. 절박한 개인이 기본적인 생명권을 보호받고자 찾아가는 곳이 공영방송도 아닌 JTBC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우리사회 미디어 지형에서 JTBC가 자리잡고 있는 지점을 생각해보게 한다. JTBC는 어떻게 자신을 약자들의 쉼터로 포지셔닝 했는가.J
앞선 현자가 생각으로 지은 집에 내가 들어가 사는 것이 철학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내는 월세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월세를 냈다. 선행하는 현인에게 꽤 오랜 기간 월세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은 월셋집이 결국 남의 집이고 빌려야만 하는 삶은 피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세에 시달린 끝에 그들은 기존 집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자기 집을 지었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힙합 음악에 ‘플로우’라는 말이 있다. 자신만의 랩 스타일을 총칭하는 것이다. ‘흐름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