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 ⑲ ‘투표의 기원’ 고대 그리스

632년 정월 신라 수도 서라벌. 왕궁 월성(月城)에서 정복군주 진흥왕의 장손 진평왕이 재위 54년째 승하했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남동생인 백반과 국반은 이미 죽었다.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 삼국사기에는 ‘나라사람들이 딸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삼국유사에는 ‘성골(聖骨) 남자가 없어 여왕을 세웠다’고 나온다. 최초 여왕은 성은 김(金)이요, 이름은 덕만(德曼), 선덕여왕이다. ‘성골’은 진흥왕 맏아들 동륜태자 직계를 가리키는 말로 진평왕이 만들었다. 선덕여왕도 후사 없이 647년 세상을 뜬다. 당태종의 침략을 고구려가 사력을 다해 막아내던 국제정세 불안기에 잠시도 왕위를 비워둘 수 없는 상황. 이때 작은아버지 국반의 딸, 즉 사촌 여동생 승만(勝曼)이 왕을 이었다. 키가 크고 아름다웠다는 진덕여왕이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누가 왕으로 뽑았을까? 화백(和白)회의다. 지난주 끝난 6·13 지방선거처럼 다득표제가 아닌 만장일치제다. 국민 전체가 아니라 귀족만 참여했다. 다시 궁금해진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투표풍습은 언제 생겼고, 요즘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18세 투표권 기원은 언제 어디인가? 선거와 공직 투표문화의 기원을 살펴본다.

▲ 시청 겸 의사당 기능을 가진 BC 4세기 터키 프리에네의 보울레우테리온. Ⓒ 김문환

◇터키 프리에네 보울레우테리온, 유구한 의회정치 증언

한국인이 많이 찾는 해외 역사 관광지 터키로 가보자. 터키에 남은 그리스 로마 최대 역사유적지는 에페스(Efes)다. 성경에서 말하는 에베소. 에페스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40여 분 내려가 석회암 산악지대를 헐떡이며 오르면 소나무 숲 사이로 고색창연한 그리스 유적지가 나온다. 프리에네(Priene)다. 이오니아 양식의 신전 기둥과 원형이 잘 보존된 극장 유적 사이로 낯익은 듯한, 그러나 한편으로 ‘고대 유적지에 어떻게 이런…’이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유적이 반겨준다. 직사각형 건물 잔해, 계단식 의자로 빙 둘러싸인 내부구조, 가운데 회의용 탁자…. 마치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뽑힌 의원들이 시장이나 군수를 불러 놓고 의정 질의를 펼칠 것 같은 의사당 분위기다.

맞다. 보울레우테리온(Bouleuterion).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비롯한 직접 민주주의에서 최고의결기구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회(民會·아테네의 에클레시아(Ekklesia))다. 하지만 민회를 개최하려면 안건상정을 비롯해 여러 준비해야 할 사안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를 위해 시청 성격을 갖는 의회를 만들었다. 보울레(Boule)라고 부른다. 보울레 의원들이 모여 회의도 열고 민회 안건을 준비하며 찬반 표결도 벌이던 장소를 그리스어 장소접미사 ‘온(-on)’을 붙여서 보울레우테리온이라고 부른다. 프리에네는 그리스인이 에게해를 건너 아나톨리아(터키의 아시아 쪽 땅) 해안가에 만든 도시 국가다. BC 4세기 이후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고, 보울레를 운영하며 보울레우테리온을 지었다. 그것이 2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프리에네 보울레우테리온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은 언제부터 민주주의를 생활화하며 투표 풍습을 이어온 것일까?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BC 5세기 그리스 도자기. 양 옆은 장기 두는 아킬레스와 아이아스이고, 가운데는 민주적 투표문화의 창시자 아테나 여신이다. Ⓒ 김문환

◇트로이 전쟁 때 아테나 여신 지시로 투표 통한 의사결정 시작

장소를 그리스 로마와 중동 지역 유물의 보고(寶庫) 파리 루브르박물관으로 옮겨보자. 유리 피라미드로 들어간 뒤, 오른쪽 드농관으로 가면 그리스 로마 유물이 기다린다. 그중 그리스 도자기 전시실로 가보자. 나무로 된 진열장을 가득 메우는 다양한 형태의 그리스 도자기는 우리네 도자기와 달리 표면에 다양한 역사적 사건 등의 에피소드를 그려 넣었다. 일종의 역사 풍속화첩인 셈이다. 그리스 미케네 문명시기(BC 17∼BC 13세기)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이야기를 다룬 도자기만 따로 모아 놨다. 여기서 붉은 바탕에 검은색으로 묘사한 인물 3명이 등장하는 도자기가 눈길을 끈다.

BC 5세기 화려하게 꽃핀 아테네 흑색인물기법(black figure) 도자기다. 가운데 선 여인은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을 지원한 전쟁의 여신 아테나다. 그 밑에 양쪽으로 투구를 쓰고 창을 든 채 앉아 장기를 두는 그리스 장수들은 최고의 용장으로 꼽히던 아킬레스와 아이아스다. 정답던 시간도 잠시, 아킬레스가 전투 도중 트로이 성벽을 기어오르다 파리스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때,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2명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 아킬레스의 시신과 무기를 들고나온다. 아킬레스의 무기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것으로 모두가 탐내던 터였다. 무기를 차지하기 위한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 역시 고대 예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에피소드다. 보다 못한 아테나 여신이 중재에 나서 병사들 투표로 무기 주인을 가릴 것을 명한다. 요즘처럼 세련된 투표용지가 아닌 조약돌로 의사를 표시했지만,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내린 인류 역사 최초의 민주주의 투표다.

◇BC 621년 그리스 최초 성문법, 무기 들고 싸우는 남자에 투표권

승리한 오디세우스를 머릿속에 담고 아테네로 가보자. BC 8세기 이후 그리스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역사 고도 아테네의 광장 아고라(Agora). 이곳에도 보울레우테리온이 남아 있을까? 당연하다. 아고라 남쪽 야트막한 언덕에 원형이 잘 보존된 도리아식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자리한다. 그 바로 밑에 보울레우테리온 터와 주춧돌이 탐방객을 기다린다. BC 6세기 초에 건축된 사각 형태의 건물이다. 프리에네의 것과 비슷했을 터이다. BC 6세기 이전부터 있던 건물을 헐고 재건축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래 있던 보울레우테리온 건물에서 BC 621년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스 최초의 법 제정이다.

당시 전통 토지귀족과 민중 사이에 정치적 갈등이 커지자, 아테네는 귀족 출신 드라콘(Drakon)에게 전권을 맡긴다. 드라콘은 관습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법을 만들어 정치와 행정, 기타 사회문제를 법치로 해결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혼란의 원인이 됐던 두 가지 사항. 누가 공직을 맡는가의 공무담임권과 누가 투표할 것인가의 참정권이다.

드라콘은 군대 고위직 공무담임권을 일정 재산 이상 소유자에게만 줬다. 금권정치를 완전히 도려내지 못한 거다. 참정권은? 유사시 무기를 들고 나가 싸우는 국민에게 투표권을 줬다. 대통령 뽑을 때 병역의무에 특히 민감한 우리네 정서로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당시는 징병제가 아니고 전쟁이 터질 때 일반 국민이 자발적으로 전장에 나간다. 이때 무기는 자기 손으로 마련해야 한다. 요즘으로 치면 M16 소총과 방탄조끼, 실탄은 물론 155㎜ 포, 군용차를 모두 군대 가는 사람이 사서 가는 식이다. 다시 말해 돈 있는 사람만 전쟁터에 나가니 투표권도 재산이 있는 사람만 보장받는 거다. 최초 성문법의 의미는 크지만, 불만은 다시 불거졌다.

▲ 레바논 베이루트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로마시대 모자이크. BC 594년 무일푼 노동자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한 아테네 민주개혁가 솔론의 모습이다. Ⓒ 김문환

◇BC 594년 솔론, 무일푼 노동자에게도 투표권 부여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국립박물관으로 가보자. 1층 전시실 바닥을 수놓는 거대한 로마시대 모자이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7현(七賢). 3세기 중국 위(魏)나라 말기 권신 사마씨 집안 독재에 염증을 내며 현실을 떠난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현자들이 아니다. 그보다 800여 년 앞서 그리스 문명권에 살았던 7명의 현인을 가리킨다. 그중 한 명이 아테네의 솔론(Solon)이다. 모자이크 속 솔론은 백발에 긴 수염을 달고, 어깨 왼쪽 위에 그리스문자로 솔론이라는 자기 이름표를 붙였다. 로마시대지만 라틴문자가 아닌 그리스문자로 새긴 것은 로마시대 그리스문화를 숭상한 풍토를 말해준다. 솔론은 무슨 일을 해서 그리스 문명권 7현의 한 명으로 불리는가? 정치 개혁이다. 공무담임권은 드라콘보다 완화해 농민 이상의 계급에는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줬다. 참정권은 비록 단 한 평의 땅뙈기가 없어도 부여했으니, 하루 벌이 날품으로 사는 무일푼 노동자에게도 투표권을 안긴 거다. 민주주의의 은인으로 불릴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BC 508년 클레이스테네스 18세 남자 투표권과 공무담임권

BC 508년 아테네 민주주의 지도자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는 민주주의의 핵심과제 공무담임권과 참정권 발전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토지를 소유했는지 여부, 기타 재산의 유무, 전쟁 참전 여부를 가리지 않고 지역구 데모스(Demos)에 등록한 국민 모두에게 공무담임권과 참정권을 줬다. 물론 이때도 한 가지 조건은 붙였다. 나이 제한. 18세가 조건이다.

그러니까 18세 이상 남자라면 누구든지 민회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농민들이 투표권을 가진 것이 1849년 2공화국 때고, 영국에서 무일푼 노동자들이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이 1900년인 점을 감안하면 클레이스테네스의 아테네 민주개혁이 얼마나 앞선 조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 19세 투표권을 고집한다. 일본도 2017년부터 18세에 투표권을 줘 고등학생도 공직투표에 나선다.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민주주의다.

◇로마는 BC 509년 공화정, BC 287년 18세 남자 투표권 권력 핵으로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보자. 고대 로마 공화정의 산실이던 로마 포럼 위로 카피톨리니 언덕에 박물관이 자리한다. 여기서 만나는 인물 흉상. 검은 대리석 주인공은 브루투스(Brutus). BC 509년 시민혁명으로 에트루리아인의 왕정을 몰아내고, 민주정을 창시한 로마 공화국의 아버지다. 왕정을 되찾으러 침략해온 전임왕의 아들과 1대 1 결투를 벌이다 숨질 만큼, 목숨 바쳐 로마의 공화정을 지킨 인물이다.

브루투스의 정신을 이어 로마는 BC 451년 12표법을 만들어 성문법 시대를 연다. 이어 단계적인 개혁을 거쳐 마침내 평민의회인 콘킬리움 플레비스(Concilium Plebis)를 통과한 법안도 국법의 효력을 갖도록 한다. 아테네보다는 다소 늦지만, 투표권을 가진 18세 이상 평민의 세상이 열렸다. BC 287년 호르텐시우스법안이 통과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로마는 BC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실질적 황제로 등극하면서 지역별로 편차가 있지만, 공화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후 로마제국과 중세 천 년 지구촌 암흑의 왕정시대였을까? 선거문화가 없어졌을까? 그렇지 않다. 중세 민주정치 풍속과 문화는 다음 기회에 다룬다. (문화일보 5월 29일자 24면 18회 참조)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반수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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