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울 대림동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동네 사는 친구 집에 함께 가던 길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릴 때가 되자 녀석이 “여기서는 몸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갸웃하며 대림역을 나서는 순간, 허름한 차림으로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조선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여기가 국내 최대 조선족 밀집지역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왠지 모를 긴장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친구는 대림동을 가로지르는 도림천을 가리키며 “저리로는 넘어갈 생각도 하지 마라”고 단속하듯 말했다. 도림천 너머엔 조선족 생활구역인 대림중앙시장이
촛불을 든 그들의 얼굴은 ‘가이 포크스(저항의 상징 인물)’ 가면과 모자, 마스크 등으로 가려져 있었다. 지난 5월 서울 광화문 등에서 네 차례 열린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모습이다. 2016년 겨울,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을 외친 촛불 시민들은 당당히 얼굴을 내놓았지만 ‘회장 일가 퇴진’을 외치는 대한항공 직원들은 그럴 수 없었다. 임기도, 탄핵절차도 없는 ‘회장님’의 보복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가면 쓴 대한항공 직원들, ‘MJ'가 된 삼성 노동자들 대한항공 사주 일가가
외출⋅외박구역 제한으로 2⋅3중 희생 강요강원도 양구군 전방부대에 복무중인 ㄴ상병은 외출 외박을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들뜬 마음으로 신고를 하고 부대 정문을 나서지만, 양구읍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군 장병 외출⋅외박 제한구역인 위수지역이 양구읍까지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양구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춘천 시내로 나갈 수 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친구나 부모가 승용차를 몰고 오면 두 시간 남짓 거리인 서울도 갈 수 있지만, 그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그나마 군 소재지인 양구읍까지 나갈 수 있는 ㄴ상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것은) 국민감정으로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속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 많이 하거든요.”민간인 최초의 공정거래위원장이자 ‘원조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린 강철규(72)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8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부패추방과 재벌개혁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강 전 위원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2심 재판부가 수십억 원의 뇌물제공을 인정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 대해 ‘유전무죄’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동양에서는 세금을 피에 비유하는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 고전 속 세금은 백성의 기름이나 피와 같다는 의미로 '고혈(膏血)'로 표현되곤 했고, 지금도 '혈세(血稅)'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런 비유와 표현이 흔히 쓰이는 이유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고사가 잘 말해준다.‘혈세’라는 표현의 유래가 서양이라는 설도 있다. 중세 유럽 오스만제국이 '데브시르메(Devşirme)'라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기독교 가정 남자 아이를 이슬람교로 개종시켜 관료, 군인, 성직자 등으로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때
한국은 분노 사회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분노가 너무도 작은 것들에서 싹튼다. 가족은 물론이고 동료나 친구, 처음 보는 이에게도 사소한 이유로 화를 낸다. 의학, 과학적으로 정의된 개념이 없는 ‘분노조절장애’가 한국에서는 하나의 ‘질병’으로 여겨진다.조절되지 않는 분노는 ‘비정상적 폭력’으로 둔갑해 대개 강자가 아닌 약자를 향한다. 아파트 주민이 밧줄을 잘라 건물 외벽노동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밧줄에 생명을 의지한 채 아파트 외벽에 매달렸던 노동자는 이 비정상적 폭력의 피해자였다. 10대의 잔인함에 전 국민이 경악한 부산여중생
BC 720년. 제15회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olympia) 경기장. 스파르타 출신 아칸토스가 장거리 달리기(오늘날 5000m) 돌리코스(dolichos)에 참가해 발가벗고 달려 1등을 거머쥐었다. 이후 올림픽 선수들이 페리조마(perizoma)라고 불리는 샅바 비슷한 허리옷(loincloth)이나 팬츠를 벗는 나체 경기 풍속이 생겼다고 BC 1세기 로마 시대 그리스 역사가 디오니시오스는 적는다. 200년 뒤 2세기에 활약했던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BC 720년 올림픽 경기 나체 달리기의 주역이 단거리 달리기(오늘날 2
정보기술(IT) 기반의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뜻하는 핀테크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 분야 중 하나로 꼽히며 주요국에서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알리페이, 미국의 렌딩클럽, 영국의 트랜스퍼와이즈 등은 등장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고, 금융의 판도를 바꿔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 세계 1위의 ‘IT강국’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기록은 아직 초라하다. 삼성페이 등 지급결제, 토스 등 간편 송금,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용은행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투자금액, 소비자 체감도 등에서 아직 ‘시
신라 제38대 임금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은 ‘괘릉(掛陵)’이라는 독특한 이름만큼 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뽐낸다. 더욱이 사악한 기운을 막고 능을 수호한다는 의미로 세운 석물들은 원성왕릉의 문화사적 가치를 한껏 높여준다. 진묘수와 문인석 조각도 멋스럽지만, 특히 무인석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굵고 숱이 풍성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얼굴을 둘러싸며, 짙은 쌍꺼풀에 큰 눈이 두드러진다. 마치 벨기에의 유명 만화 스머프(the smurfs)에 등장하는 파파 스머프의 모습과 닮았다. 손에 쥐고 있는
지난 8일 지상파 3사(KBS, MBC, SBS) 모두 재허가 심사에서 탈락 점수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한겨레> 보도를 통해서 알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 재허가 심사위원회 심사결과 SBS 647점, KBS1 646점, KBS2 641점으로 재허가 기준 점수인 650점을 넘지 못했고, MBC는 가장 낮은 점수인 616점을 받았다. 지상파 3사 모두 탈락점수를 받은 것은 역대 최초의 일로 지상파 방송의 추락한 위상을 보여주는 소식이었지만, 해당 내용을 보도한 방송사는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JTBC, TV조선, 채널A,
지난겨울 광장엔 민주주의를 외치는 촛불이 뜨거웠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혐오’가 넘실대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한 게 기폭제였다. 기대했던 후보에게 상처받은 성 소수자들이 반발하자 자칭 촛불 시민 중 일부는 그들을 공격했다. “문재인이 만만해 보이냐”, “저들의 행위는 테러다” 등의 독기 서린 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문 후보 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요구사항을 외친 성 소수자들에게 쏟아졌다. 인터넷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
지난 21일 토요일 오전, 김천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자 ‘사드배치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왕복 2차선 도로 양옆은 플래카드로 가득 찼다. 빼곡한 플래카드 너머로 수확기 황금 들녘이 가을바람에 출렁였다. 9월 7일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임시배치가 단행되던 날. 소성리 주민과 경찰 8천여 명이 밤새워 대치하던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갈등의 현장 소성리 보건진료소 앞에 도착하자 2명의
대통령을 보좌하는 여러 임명직 공무원 중에는 어공과 늘공이 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치러 서로 잘 알거나, 소위 ‘코드’가 맞아 행정부 밖에서 영입된 이들을 가리킨다. 늘공(언제나 공무원)은 청와대 근무를 위해 파견되거나 혹은 정부 주요 직책에 임명된 관료들이다. 이번 리스티클 역시 1편과 마찬가지로 ‘어공’에 초점을 맞춘다. 국민의 손으로 뽑는 공직자가 아니므로, 그들의 평소 생각은 검증이 필요하다. 촛불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니 더욱 그렇다. 청와대 비서실 수석비서관급과 정부의 18부처 5처 17청
대통령을 보좌하는 여러 임명직 공무원 중에는 어공과 늘공이 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치러 서로 잘 알거나, 소위 ‘코드’가 맞아 행정부 밖에서 영입된 이들을 말한다. 늘공(언제나 공무원)은 청와대 근무를 위해 파견되거나 혹은 정부 주요 직책에 임명된 관료들이다. 이번 리스티클은 ‘어공’에 초점을 맞춘다. 국민의 손으로 뽑는 공직자가 아니므로, 그들의 평소 생각은 검증이 필요하다. 촛불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니 더욱 그렇다. 청와대 비서실 수석비서관급과 정부의 18부처 5처 17청 / 2원 4실 6위원회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평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이 평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상 아닙니다.”한국전쟁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온 성공회대 NGO대학원장 김동춘 교수는 저서 <전쟁정치>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비상체제라는 극단적 형태의 계엄체제가 한국사회 지배 관계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적대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법에 의거하지 않고 감시
“우리는 누구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작은 영향들이 모여서 언젠가 선한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이게 저희 슬로건입니다. ‘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죠.”서울 신림동 신원시장 끝자락의 후미진 골목. 세세한 길 안내가 없으면 찾기도 어려울 듯한 허름한 건물 지하에 이런 생각을 가진 청년들의 아지트(근거지)가 있다. 복합문화공간이자 ‘문화예술혁명단체’라고 자부하는 ‘작은따옴표’다. 지난 2014년 2월 스물두 살
최초 제목은 ‘N프로젝트’. 혹시나 내용이 새어나갈까 걱정돼 ‘노무현’ 이름 세 글자를 담지 못했다. 제작 과정은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야말로 ‘몰래 만든 영화’였다. 제작진 전원 극장 개봉조차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봉이 어려우면 영화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자취를 감출 계획도 세웠다. 극우단체의 고소, 고발과 세무조사에도 대비했다.그런데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거쳐 구속됐고, 대선이 앞당겨 치러졌다. 개봉 타이밍도 절묘했다.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